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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Sep 16. 2019

아무도 없느냐, 정말 주위에 아무도 없느냐?

  

출처,  Pixabay


 “너의 글 참 답이 없구나, 올해는 안 되겠다. 이제 나가렴”     

 

 그 말 한마디가 끝이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20대 초반,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던 때 겪었던 일이다. 대학원을 가기 위해 자기소개서를 썼다. 이에 대해 평가를 받으러 갔을 뿐이다. 싸늘한 말 한 마디가 전부였다. 피드백을 해 준 사람은 자기소개서를 내용으로 인터넷 강의를 하던 사람이었다. 인터넷 강의 때는 상세하게 설명했다. 도움이 되는게 많았다.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직접 받는 피드백은 더욱 자세할 거라 여겼기에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정 반대였다.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주기는커녕, 비난만 했다. 올해는 안 되겠다고 말하면 '안 될 거 같은 이유'에 대해서 말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말 전혀 없이 나가라고 하니 기가 찼다. 아무 말도 안 나왔다. 숨통이 막혔다. 그 방에서 나갔다. 정말 화가 났다. 가슴이 답답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이 문제인지는 왜 가르쳐 주지 않은 건가!

     

 이 이야기는 5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 동안 잊고 지냈다. [책만 보는 바보]를 읽다가 이 때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다듬이 소리, 남쪽은 느리고 북쪽은 잦아

가만히 들으니 온 이웃이 엄숙하네.

난간에 머무른 작은 달은 아담한 선비인 듯

베개에 들리는 샘물 소리는 정든 사람인 듯.

- 책만 보는 바보 166쪽 -     


 나는 이 시가 좋았다. 시를 읽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담하고 고요한 시골마을에서, 달이 뜨는 밤에 찾아오는 다듬이 소리! 이 소리를 상상만 해도 내 마음이 언제든 안정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좋았다.

      

 물론 이 시에 대해서 다양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작정 비웃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덕무의 시를 읽은 일부가 이렇게 말했다.

     

“형편없지 않습니까, 이덕무의 됨됨이라는 게? 옛글을 읽고 옛사람을 배웠다면서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들의 촌스러운 생활과 자질구레한 세상일들을 노래하고 있으니, 어찌 제대로 된 시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들의 품격을 담은 시가 아닙니다. 닮은 구석이 조금도 없습니다.”
- 책만 보는 바보 166, 167쪽-       

 나는 화났다. 제대로 된 피드백이 아니기 때문이다. 품격이 담긴 것만 시다? 이것은 자신의 개인적 취향이다. 시도 종류가 다양할 수 있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낀 바를 표현하는 게 시다. 눈으로 본 것이 아름다운 풍경일 수도 있지만, 평범한 생활일 수도 있다. 그렇다보니 시가 다양할 수도 있는데, ‘니가 쓴 건 시가 아니다’라고 무작정 말하는 것은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일반적인 비난 일 뿐이다.     


 이덕무가 겪었던 일에서 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무작정 비난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의학전문대학원 지원 당시, 나는 정말 간절했다. 정말 의사가 되고 싶었다. 꼭 가고 싶었다. 그러나 성적이 애매했다. 학점, 영어 둘 다 조금씩 부족했다. 그러면 결국 답은 한 가지였다. 자기소개서! 자기소개서를 탁월하게 잘 써서 학점과 영어 점수가 뛰어난 사람들을 이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글을 잘 쓰지 못했다. 정확히 어떻게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려고 찾아갔던 것뿐이다. 결과는 처참했다. 억울했다. 울고 싶었다. 이덕무도 나와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이덕무의 비난에 대해, 누군가 이렇게 반박을 했다.      


 “아니, 옛사람들의 글과 닮지 않은 것이 어째서 흠이 된단 말인가? 도대체 우리에게 옛날이란 무엇인가? 옛사람들은 과연,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던 그때를 ‘옛날’이라고 생각했겠는가? 그 당시에는 그들도 역시 ‘지금’ 사람이었을 게야. 언젠가는 우리도 그들처럼 ‘옛’ 사람이 될 터이고. 그러니 자네의 말처럼 그 때 그들의 시가 훌륭하다면, 지금 이덕무의 시도 뒷날 사람들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책만 보는 바보 167쪽 -     

 이덕무의 스승, 연암 선생이었다. 그는 얼토당토 하지 않은 비난을 나무라면서 이덕무를 감쌓다.     

출처, Pixabay


 이덕무 곁엔 진정으로 도와주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덕무의 글을 제대로 바라봐 준 연암 선생이 있었기에, 이덕무는 글을 쓰는데 용기를 얻었다. 또한 위안이 되기도 했다.


 나의 곁에도 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의 자기소개서를 꼼꼼히 읽으시고 “ 이 글의 핵심은 무엇이냐? 네가 말하고 싶은 바가 무엇이니?”라고 되묻던 은사님이 계셨다. 글이 막혀서 카카오톡으로 ‘나는 누굴까?’라고 보내니 걱정되서 뛰어온 친구도 있었다. 혹시나 어느 다리 위에서 보낸 카톡이 아니었을까 걱정이 돼서 왔다고 한다. 같이 고민해 준 친구 덕분에 막혔던 글을 써내려갈 수 있었다. 나의 글에 대해 수백 번 정도 따금하게 피드백을 해줬던 지인들도 있었다.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은 막연한 비판이나 두루뭉술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의 글을 읽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방향을 같이 고민해주었따. 덕분에 나는 경쟁력 있는 자기소개서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원하던 대학원에 갈 수 있었다.


       

출처, Pixabay


 이제 내 곁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생겼다. 바로 씽큐베이션 2기, 잘 팔리는 글쓰기의 모임원들이다. 모임장인 윤 PD님은 글에 대해 혹독하게 피드백한다. 한 번은 전화통화로 피드백을 해주셨다. 뼈를 때리는 것처럼 아주 쎈 피드백이었다. 그렇지만 피드백이 와 닿았다. 덕분에 어떻게 써야할지 방향을 점점 잡아나가는 느낌이다. 잘 쓴 글에 대해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글을 쓸 때 용기가 나기도 한다. 또한 모임원들의 글을 보면서도 많이 배운다.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에 대해서 알게 되기도 한다. 그들이 해주는 피드백 역시 핵심을 찌를 때가 많아 도움이 된다.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고 서평 쓰는 게 정말 쉽지가 않다. 글 주제를 정하는 것도 힘들다. 주제를 정하고 글을 써내려 가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 힘든 나머지, 원래 가지고 있던 만성 두통이 최근에 들어 더 심해졌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글쓰기라 계속 하게 된다. 나의 글쓰기 실력이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행복하다.

     

 20대 말이 되어서 비로소 깨달았다. 나의 곁엔 정말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너의 곁에도 너를 도와줄 누군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아라.


참고자료
책만 읽는 바보, 안소영, 2005

네이버 블로그 : https://blog.naver.com/kc2495/221607935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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