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안다. 그런 날이 있다는 걸

by 프로글쓸러


알기는 안다. 뭘 해도 안 되는 그런 날이 있다는 걸.


꼬불꼬불 꼬불꼬불 맛 좋은 라면! 이 하나를 먹기 위해 물을 붓고 기다리다가도 수많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걸. 업무하러 갔더니 기계가 고장 나고, 평소에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일이 그렇지 않게 될 때가 있다. 수십 번을 하다 시간이 하염없이 흘러가다 보면, 다른 일들이 쌓인다. 처리하고, 또 처리하고……. 무사히 해결하고 돌아오면 라면은 이미 사망 선언을 내려야 할 지경에 이른다. 혹시나 다시 라면 먹으려고 준비하다 보면, 또다시 일들이 몰려와 라면의 사망 선언을 수없이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만다. 먹는 건 모르겠고, 차라리 조금이라도 쉬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림 1. 라면.png


하지만 쉬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그런 날이 있다. 기묘한 일들이 자꾸 벌어지기 때문에. 지문 인식이 안 되어 식사를 못 하거나, 직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다거나……. 또 유난히 드문 일들이 계속 터져 잠시 숨 돌릴 시간조차 없다. 기운이 확 빠지는 건 물론이고, 그쯤 되면 그냥 집 가고 싶어진다. 그러나 집 갈 시간은 한참 멀었다는 게 대부분 국룰이더라.


이런 일은 야구에서도 똑같이 벌어진다.


2025년 6월 28일, KT 위즈와의 경기가 벌어진 날.


1회부터 중견수, 유격수 사이에 떨어지는 안타, 볼넷,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뚫는 좌전 안타 등으로 1점을 준다.


1, 2회 기회를 놓친 자이언츠.


3회 말, 2루타, 볼넷, 볼넷으로 1아웃 만루를 만들지만, 역시나가 혹시나다. 3루 방향 직선타와 중견수 플라이 아웃으로 점수를 내지 못하며 3회 연속 무득점을 이어간다.


그림 2. 좌절.png


4회 말은 달랐을까? 안타와 상대의 실책으로 노아웃 1, 2루를 만들었지만, 2루 쪽 땅볼로 2루, 1루 아웃. 병살 플레이 탄생한다. 이후 유격수 땅볼로 이닝 종료. 4회 연속 무득점에 병살까지 나오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많은 이들이 체감하게 된다.


그 와중에 KT는 안타 2번에 우익수 방향 희생 플라이로 1점을 추가 득점한다.


5회 말. 2아웃 상황에 좌전 안타와 볼넷이 나온다. 여기에 심지어 홈런이 나와 순식간에 스코어 3대 2가 된다. 아니, 그럴 줄 알았지. 알고 보니 몇 센티미터 차이로 파울이 되며, 스코어는 0대 2. 그리고 2루수 땅볼로 다시 한번 이닝 종료. 줬다가 뺏기는 그 느낌은 썩 유쾌하지 않다.


6회 초. 3루 쪽 번트 안타. 좌전 안타. 희생 번트. 볼넷으로 1아웃 만루의 위기가 벌어진다. 좌투수이자 파이어볼러인 홍민기가 등판해서 이 상황을 마무리하는 유격수 땅볼이 나오게 했으나, 바운드로 유격수가 놓치고 만다. 2, 3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며, 스코어 0대 4. 이후 헛스윙 삼진 2번으로 이닝을 종료했으나, 이번 이닝을 통해 깨달았다. 진짜 될 것도 안 되는구나.


그림 3. 허망.png


8회 말. 1아웃에 내야를 뚫는 중전 안타가 나와 1아웃 1루. 이후 2루수 쪽 땅볼로 2루, 1루로의 병살 플레이. 오늘 병살이 도대체 몇 개냐?


9회 말. 타자 박찬형이 우전 안타로, 1루로 나갔으나, 이후 나온 건 다음과 같다.

우익수 플라이 아웃

중견수 플라이 아웃

삼구 삼진.


이닝 종료.

게임 끝.


그림 4. 결과.png 출처, KBO


안타를 7개나 때리고 볼을 3개나 얻었음에도 병살 플레이에, 홈런 같은 파울로 점수를 내지도 못하고……. 평소 같으면 잡을 땅볼이 하필 바운드로 병살이 아닌 안타로 바뀌는 한순간의 상황. 우리는 될 것도 안 되고, 상대방은 안 될 것도 되어 버리는 기묘하고도 웃음만 나오는 그날.


안다.

뭘 해도 안 되는 날은 깔끔하게 포기하는 게 때론 낫다는 걸.

하지만 그게 쉽겠는가?

야구팬들이면 공감할 거다.

이는 아마 선수들도 그렇지 않을까?

이번 경기를 포기하면, 다음 경기는?

다음 경기도 안 풀린다고 포기하는 건 괜찮을까?


팬도 마찬가지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집에 가서 쉬는 게 100배, 1,000배 낫다는 걸.

하지만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기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직면한다는 걸.


야구 참 어렵다.

뭘 해도 안 되는 그런 날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림 4. 허무.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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