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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Mar 02. 2021

20대 초, 저축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

 대학교에 막 입학했던 신입생 시절이 떠오릅니다. 정말 신나게 놀았어요. 매일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PC방 가서 게임하고, 영화 보러 다니는 등 정말 열심히 놀고 또 놀았습니다. 노는 게 그렇게 재밌는 줄 처음 알았어요. 신나는 건 좋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놀려고 하면 돈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래서 일했습니다. 졸업했던 고등학교에서 주말마다 자습 감독 알바를 했습니다. 알바를 하면서도 늘 같은 생각을 했어요. ‘이번 주는 뭐 하고 놀지?’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당시 저는 단 한 번도 저축이란 걸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축은 지금 당장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죠. 전세나 월세를 구하고, 결혼을 대비하고, 육아를 고려하고, 노후를 대비하는 등의 미래가 20대 초의 저에겐 직접적으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아주 먼 미래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직장 다니면서, 천천히 저금해도 된다고 자신을 달래며 20대 초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사회초년생이 되자마자 저축을 시작했습니다. 이리저리 돈을 아끼고, 재테크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20대 때의 저 자신을 살짝 원망했습니다. 알바하던 그때부터 조금씩 저축을 했다면 복리의 효과로 지금쯤 돈이 조금이라도 더 모였을 텐데……. 물론 알바를 통해서 돈을 그렇게 많이 번 건 결코 아니지만, 내심 아쉬웠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과거의 저에게 제발 저축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놀 생각만 하지 말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지금의 제가 복리의 중요성을 아무리 열심히 설명하고, 미래에는 살기 더 각박해지기에 빨리 집을 구해야 하고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등을 이야기하며 적금하라고 말하더라도, 과거의 저는 그 조언을 잘 따랐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합리적인 것은 인정했겠지만, 그런데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합리적인 걸 알면서도 못하는 이유는 바로 [야성적 충동] 때문입니다.     


 책 [야성적 충동]에서 야성적 충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경제학적 개념에서 야성적 충동은 경제에 내포된 불안정하고 일관성이 없는 요소를 말하며, 사람들이 모호성이나 불확실성과 맺는 독특한 관계를 가리킨다. 우리는 때로 야성적 충동에 억눌려 주저하지만, 때로는 야성적 충동에 힘입어 두려움과 우유부단함을 극복하기도 한다.
 - 야성적 충동 28쪽 -     

 경제이론에서는 합리성을 강조합니다. 경제적 결정이 다 합리적이고 적절하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건 이론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어릴 때부터 저축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다 해내지 못합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미래를 대비해서 저축하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에이, 지금부터 굳이 해야 하나?”, “나중에 돈 많이 벌 때 해도 되잖아.”, “선배들이 말하기를 저축은 직장 다니면서 해도 된다고 했어요.” 등 합리적이지 않은 생각들을 하며, 20대를 즐기는 데 초점을 두죠.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야성적 충동으로 인해서 합리적으로 경제적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야성적 충동과 관련된 요소로는 대표적으로 자신감, 공정성, 부패와 악의, 화폐착각,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이런 야성적 충동의 요소들이 위에서 말한 저축에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상황에서도 야성적 충동들이 잘 드러나는데, 조금 쉽게 접근해보고자 2021년 2월 21일 방영했던 SBS [런닝맨]을 예시로 말해보겠습니다.      

출처, Pixabay

 [런닝맨]은 다양한 미션을 통해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예능입니다. 2021년 2월 21일, 해당 예능에서 주식 투자와 관련된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모든 멤버에게 똑같은 금액이 주어집니다. 해당 금액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게임을 진행했죠. 말 그대로 주식 투자와 다를 바가 없지만,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최근 10년간의 주식 흐름이 반영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개그맨 양세찬은 당시 인기를 끌었던 내용을 기억하여 투자했고, 그 결과 대박을 터트립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위 동료들에게 교묘히 사기를 치죠. 망할 주식이 마치 성공한다는 듯,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데, 야성적 충동 중 악의적인 모습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물론 예능이니 재밌게 하고자 했음을 유념해야 해요. 양세찬 씨가 악의적인 사람이란 말은 결코 아닙니다)

 양세찬의 사기는 결국 멤버들에게 다 소문으로 퍼져나갑니다. 전염병처럼 모두에게 전파되죠. 투자 1등이 하는 말을 믿고, 투자하다 망하는 멤버들이 속출합니다. 이런 게 바로 야성적 충동 중 이야기에 해당하는 부분이죠.

 투자 확률과 결과를 분석할 틈 따윈 없습니다. 물론 미션 중간마다 돈을 지불하면 정보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보 제공도 금액에 따라 천지 차별이었습니다. 어떤 멤버는 K 회사의 해외 투자 정보를 듣고 자신감 있게 그 회사 주식을 다 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투자 철회한다는 추가 정보도 있었던 겁니다. 돈을 더 지불했다면 알 수 있었던 정보였죠. 그렇게 분석을 제대로 할 틈도 없이 자신감 있게 투자하고, 망하면 파는 등 원금 회복할 때까지 하겠다며 이런 행동을 게임 내내 반복합니다. 이게 바로 야성적 충동 중 자신감입니다. 여기선 화폐착각이나 공정성 등을 추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습니다.      


 예능에서조차 야성적 충동으로 인해 표준경제학 이론처럼 합리적으로 모든 게 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야성적 충동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경제가 불황에 빠지기도 하고,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나며, 금융시장과 기업투자가 변동성이 심해지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지 알고 싶다면 직접 [야성적 충동]을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출처, Pixabay

 결론에서 저자는 야성적 충동 때문에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읽으면서 동의는 되었지만, 저는 무엇보다 개인도 야성적 충동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야성적 충동이 뭔지 몰랐다면, 충동에 당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야성적 충동이 뭔지 그 실체를 알게 되었다면, 어느 정도 대비가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저축할 때, 부동산이나 주식투자에 관심 가지고 시작할 때, 야성적 충동에 휘말려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않는지 늘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투자할 때마다 글로 남겨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때론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서 그에 따라 행동할 수도 있죠. 정부가 무엇인가를 해줄 때까지 기다리기보단, 우리 자신도 할 수 있는 한 대비를 최대한 해야 합니다.     


 합리적인 경제적 판단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우리는 야성적 충동을 이해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야성적 충동]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출처 : 야성적 충동 / 로버트 쉴러, 조지 애커로프 / 2009 / 랜덤하우스코리아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25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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