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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May 03. 2022

달릴 수밖에 없었다.

 “마, 한번 해보자!”     


 친구들이 자꾸만 나를 꼬드겼다. 딱 한 번만 해보자고 한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냐고. 이번에 꼭 하자며 계속 설득해왔다. 안 된다. 안 해. 자신 없어. 못 해. 너네끼리 해. 나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건 나랑 정말 어울리지 않는 거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진심이라는 걸 알았다. 한번 해보자고 하면 말로 그치지 않는 녀석들이다.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면서 수많은 일을 겪어본 결과, 한 번 동의하는 순간 정말 해내야만 했다. 그랬기에 내 나름대로 선을 그었다. 말할 때마다 안 된다는 말을 줄곧 반복했다. 하지만 그 경계는 술이 들어갈수록 허물어졌다. 우리 주위에 술병이 하나둘 쌓여갔고, 혀가 꼬일 정도로 술기운이 꽤 올라왔을 때쯤, 나 스스로 함정(?)에 기어서 들어갔다.      


 “하, 진짜 하기 싫은데……. 알겠어. 이번만이다!”     


 그렇게 나는 2017년 바다 마라톤에 참가했다.       

마라톤 / 출처 Pixabay

 나는 운동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10대 시절부터, 체육이 가장 싫은 과목 중 하나였다. 남들이 금방 하는 걸 나는 몇십번을 반복해서야 해낼 수 있었기에, 정말 싫어했다. 20대가 되어서도, 다이어트가 아니면 운동이랑 거리를 뒀다. 살 빼는 목적으로 헬스장 러닝머신 타는 게 나에겐 가장 익숙했기에, 10km 마라톤 참가를 결국 선포하고 만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마라톤 하겠다고 말을 했으면, 준비해야 할 것 아닌가? 다른 이들이 예상하는 그대로, 거의 하지 않았다. 운동을 안 한 지 6개월 이상 되었으면,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늘 하던 대로, 공부 핑계로 미루고 또 미뤘다. 병원 실습 돈다고 이리저리 바빴다는 걸 변명으로 삼길 반복했다. 그러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대회 일주일 전쯤 1시간을 열심히 뛰었다. 기록이 어느 정도 나오는지 확인했다. 6km 정도 달성했다. 허허. 이건 뭐, 망했다. 친구들은 철저히 연습해서 완벽히 준비했다면, 나는 그 반대였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빌기 시작했다.     


 “당일 날 비가 폭우처럼 쏟아져서 대회가 중단되게 해주세요.”       


 Dreams come true! 꿈(?)은 이루어졌다. 2017년 10월 15일, 믿을 수 없게도 비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엄청나게 왔다. 정말 신났다. 친구들에겐 미안했지만, 속으론 엄청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일단 행사장소로 가보자는 친구들의 말에도 흔쾌히 동의할 정도였으니까. 뭐, 갈 수는 있지 않은가? 바닷가 근처에서 하는 데다, 하늘에 구멍 뚫린 것처럼 비가 오니 중단되는 게 당연하지! 

폭우 / 출처 Pixabay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마라톤 출발 지점에 도착하니 비가 거의 그쳤고, 행사는 진행되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이거야말로 희망을 줬다가 빼앗아 가는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나는 한 대 맞은 기분으로, 조금씩 오는 비를 맞아가며 마라톤을 시작했다.     


 뛰기 시작했을 때, 한 가지 생각만 가득했다. 힘들다? 아니다.      


 “와, 얼어 죽을 거 같다.” 


 비를 맞다 보니, 조금씩 오한이 들었다. 바다에서 불어 드는 바람까지 맞으니, 추위로 인해 덜덜 떨려왔다. 그 상태로 다리 위를 걷는다는 건, 생사의 문제로 연결되었다. 마라톤이고 뭐고 일단 살아남아야 했다. 그래서 걷는 것을 포기했다. 따뜻해지기 위해서라도 뛰어야만 했다.      

추위 / 출처 Pixabay

 한참을 달렸다. 그러다 힘에 부치는 순간에 금방 직면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일주일 전에 1시간 6km 정도의 기록을 세웠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나?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힘들지 않았다. 옆에서 같이 뛰는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 사람들과 발을 맞춰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게 생각보다 즐거웠다. 혼자서 달리는 거랑은 확실히 달랐다. 조금씩 재밌어졌고, 나만의 페이스를 찾았다. 거기다, 자신감이 붙은 덕에 내 앞의 사람들을 하나둘 앞질러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금방 반환점에 도착했고, 기쁨이 최고조에 달했다. 


‘이거 별거 없네? 반만 더 뛰는 게 뭐가 어려워?’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즐거움 / 출처 Pixabay

 하지만 사람은 겸손해야 한다고……. 반환점 이후부터 슬슬 신호가 왔다. 점점 지쳐갔다. 처음엔 발만 아팠다. 몸에서 내뿜는 뜨거운 열기가 눈에 보일 지경으로 뛰었으니, 숨도 턱턱 막혀왔다. 땀을 한 바가지 흘려, 추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잠깐 걸으려고 속도를 늦추다 보면, 비바람이 나에게 몰아쳤고, 그대로 얼어 얼음 동상이 될 것만 같았다. 이 추위에서 살아남으려면 계속 달리는 게 답이었다. 5km, 4km, 3km ……. 남은 거리는 분명 줄어들고 있었지만, 도착 지점까진 더 멀게만 느껴졌다. 한 걸음, 한 걸음! 어찌 되었든 발은 움직였다. 죽지 않고자 뛰었으나, 나중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머릿속에 남았다. “포기만 하지 말자! 끝까지 완주라도 하자!” 끝에 거의 다가갔을 땐, 뇌조차도 멈춰버렸다. 포기? 완주?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자율주행하듯 다리 혼자서 자동으로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것조차 이제 정지되려던 순간, 드디어 끝에 도착했다. 나의 첫 마라톤은 여러 우여곡절 후에 간신히 마무리되었다.      


 완주는 해냈다.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었지만, 결과는 어땠을까? 10km 59분! 믿을 수 없는 기록으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그때 깨달았다.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지 해낼 수 있긴 하구나.       

2017 부산바다마라톤에서의 나의 결과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뛴 거는 사실이지만, 어쨌든 내 인생에서 운동으로 보람을 느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1시간 6km라는 한계를 돌파하고, 1시간 만에 10km를 주파해냈다는 사실에 쾌감을 느꼈다. 그때의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마라톤 이후, 사우나 가서 씻고, 고기로 단백질 보충하며, 집에 들어와 눕는 순간까지도 그때의 짜릿함은 잊히지 않는다. 그 이후에, 한동안 다리가 아팠기에 쉽게 까먹지 못한 점도 있긴 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떠올리기만 해도, 마냥 기분이 들뜬다.       


나의 즐거움 중 하나 걷고달리고!     


 그동안, 운동은 내가 할 만한 게 아니라고 여겼다. 내 인생에서 운동을 우선순위로 둬 본 적은 없었다. 제대로 하는 사람들만이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았다. 친구들과 10km 마라톤 하자고 말해놓고는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비가 내리길 바라며 내심 포기했던 이유도 나의 편견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내 친구들과의 경험 덕분에 알게 되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될 문제였다. 걸을 수 있는 몸,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였다. 그냥 시작하기만 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문제였다.       


 책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나를 살린 달리기]에도 달리기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된다. 이 책의 저자는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불안증까지 얻었다. 불안증으로 많이 고통받다가 어느 순간, 고통의 탈출구로써 달리기를 선택했다. 다른 운동도 괜찮지만, 그냥 달리기를 택했을 뿐이라고 한다.      

달리기 / 출처 Pixabay

 단순히 달렸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지면서 평소에 앓고 있던 육체적 고통도 완화되었다. 점점 달릴수록 마음이 단단해졌고, 자신의 자존감을 다시 세웠으며 나아가 삶의 태도까지 조금씩 바뀌었다. 물론 달리기가 만병통치약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달리기를 슬픔, 불안함 등에 대처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삼으면서(물론 실패할 때도 있겠지만), 넘어져도 일어나지 못할 것 같던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달리기 덕분에 삶이 바뀐 셈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2017년 바다 마라톤 이후, 걷고 달리는 일을 즐기게 되었다. 달릴 때야말로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기에 나는 나만의 운동, 걷기와 달리기를 자꾸 하게 되었다.     

 

 달리기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저자처럼 마음의 변화, 삶의 태도 변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사람은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길 추천한다.      


 사실은 읽지 않아도 좋다! 그냥 나와 같이 밖에서 뛰어보는 건 어떻겠는가? 지금 당장 말이다.     


참고자료 :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나를 살린 달리기 / 벨라 마키 / 비잉 (Being) / 2019     

[해당 책은 저의 시선을 바탕으로 요약한 것이기에 다른 이들이 읽으면 다른 관점으로도 해당 책의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해당 책들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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