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글쓸러 Aug 01. 2022

171,452명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19 초기 발생 때의 정책은 지금과 비교하자면 아주 달랐다. 당시엔, PCR 검사에서 양성의 결과가 나오면 2주 자가 격리가 기본이었다. 14일이란 긴 격리 후, 그 즉시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격리 해제 이전에 PCR 검사를 추가로 진행했고, 이때 양성이 나온다면 그때부터 다시 시작이었다. 음성이 2회 연속 나올 때까지 격리 기간은 한없이 지속된다. 현재와 달리 상당히 엄격했던 게 그 당시 대처였다.       

출처, Pixabay

 2020년 대구 중앙교육연수원 생활치료센터에서 한 달간 일했다. 그 당시, 나의 역할 중 하나가 검사 결과에 대한 통보였다. 그것도 전화로 말이다.      


 음성이 나왔습니다. 

 양성입니다.

 음성이 2회 나와서 격리 해제됩니다. 

 양성이 나와서 추가 검사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전하는 소식에 대한 반응은 대체로 정해져 있었다. 퇴소 소식에 기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복되는 양성에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모습도 마주했다. 좌절하고 슬퍼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빈번했고, 화내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을 정도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수많은 사람이 사신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통보를 받는다.      


 OOO, 며칠 뒤 몇 시에 지옥에 간다.   

 [지옥]을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지 모르겠다. 그런 고지를 받는다고 상상만 해도 두렵고 무섭지 않은가? 사신들이 전하는 말의 무게는 감히 이해조차 하기 힘들 것이리라.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의 통보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을까? 생활치료센터에서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남자의 통보를 듣고만 있어야 하는 입장에서 말이다. 그게 죽음을 고지하는 게 아니었을지라도.      

출처, 넷플릭스

 검사를 받는다. 다음 날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린다. 아침이 되어서도 언제 올지 모르는 전화 때문에 두근두근한다. 따르릉. 따르릉. 벨 소리에 이어 통화가 시작된다. 스마트폰 속 너머 의사가 결과를 알려준다. 그걸로 모든 게 결정된다. 추가 격리할지, 퇴소할지.      


 물론 무작정 결과만 알려줬던 건 결코 아니다. 한 명 한 명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랬기에, 나름대로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결과를 말하기도 했으며, 때론 그들의 한탄을 들으면서 달래고자 했다.     


 그럼에도 내가 전하는 말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하기란 쉽진 않았으리라.     


 2022년 2월 22일 화요일 저녁, 몸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급작스럽게 기력이 떨어졌고, 온몸에서 근육통을 느꼈다. 가래를 동반한 인후통이 심할 정도로 반복되었으며, 자려는 순간마다 기침 때문에 금방 깨기 일쑤였다. 직감했다. 어쩌면 확진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에이, 감기겠지!”라고 편하게 여기기엔, 현 상황을 고려하면 마냥 회피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2022년 2월 23일 수요일 아침, 그때까지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아니겠지. 그럼! 아닐 거야!’라고 혼자 자꾸 생각했다. 어디서 나오는지 모를 자신감(?)은 신속항원검사를 받고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이어졌다.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아는 직원들을 만날 때마다 이렇게 말할 정도였으니까.


 “병원 인턴 OT 때문에 왔습니다. 결과 가져오라네요? 아마 음성 나올 거예요.”

 “에이, 별일 있겠어요? 검사받고 편한 마음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검사 후 결과가 나오는 걸 지켜봤다. 한 줄이 떴다. 이는 음성이든, 양성이든 모두에게 뜨는 줄이다.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불분명한 뭔가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갈수록 진해지면서 명확해졌고, 나의 검사키트에는 두 줄이 나타났다.      


출처, Pixabay

 나는 당황했다. 자신 있게 검사받으러 와서 양성이 뜬 나의 결과를 본 직원들 역시 말을 잃었다. 한동안 혼란은 지속되었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현실로 돌아왔다.     


 깨달았다.      


 아! 나도 결국 피하지 못했구나.     


 그 순간부터 생각이 실타래가 꼬이듯 복잡해졌다.      


 ‘제대 준비한다고 냉장고도 정리했는데, 일주일 동안의 식량은 어떻게 준비하지?’ 

 ‘보건소에는 뭐라고 말해야 하려나?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일 병원 인턴 OT인데, 일단 병원에 전화해야겠지?’

 ‘주말에 부모님이랑 같이 있었는데……. 설마 부모님도?’ 

 ‘내 몸은 괜찮을까? 격리 기간 동안 별일 없겠지?’

 ‘약을 따로 준비해야 하는데, 근데 어디서 마련하냐?’     


 고민의 뫼비우스에 갇혀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금세 지나가고, 아침과 함께 기다리던 소식이 찾아왔다. 바로 PCR 확진 판정이었다.      


 2022년 2월 24일, 171,452명의 확진자 중 한 명이 되어서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2020년 대구 중앙교육연수원 생활치료센터에서 나로부터 결과 통보를 받는 이들의 마음을 말이다.      


 일주일 자가 격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생각으로 한없이 복잡해졌는데, 그들은 오죽했을까? 내 나름대로 노력하지 않았던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때 조금 더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배려를 하지 못한 건 아닌지 후회되었다.      


 그로부터, 5달이 지났다.      


 2022년 8월 1일 기준, 신규 확진자 44,689명이다. 7월 26일 기준, 신규 확진자 100,285명에 비해 감소했지만, 2022년 3월 3주 282만 2천 명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나오던 때에 점점 근접하고 있다. 방역 당국 및 의료계에선 재유행의 위험에 대해 이전부터 계속 경고해왔고, 이는 현실로 다가왔다. 자연 감염으로 인한 면역 효과가 3~6개월인 걸 고려했을 때, 2022년 7월을 기점으로 하루 신규 확진자 수가 많게는 3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말의 진실을 우리는 직접 목격하는 중이다.     

출처, Pixabay

 어쩌면 매번 대유행이 반복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171,452명의 확진자 중 한 명이 되었던 그 경험을 다시 한번 겪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결국은 또 이겨낼 거다. 나, 그리고 우리 모두 말이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이 굴레 속에서,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으며 버티는 수밖에 없다는 걸, 그러다 보면 웃으며 지낼 수 있는 때가 다시 찾아온다는 걸 이젠 알기 때문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