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민원 들어왔어요.”
갑자기 찾아온 직원이 나에게 던진 첫 말이다. 순간, 모든 걸 멈췄다. 그 어느 때보다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최근부터 과거의 일까지 돌이켜보며 고민했다.
‘내가 민원 받을 만큼 잘못한 게 있었나?’
‘아니, 뭐…….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판단할 수 있으니, 내가 실수한 게 있을지도 몰라!’
아쉽게도, 나 스스로 답을 찾아내진 못했다. 되물었다. 어떤 민원이 들어왔는지.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때는 2020년 가을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백신조차 없던 그 시기, 기억나는가? 당시, 독감이라도 대비를 잘하자는 분위기로,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접종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동시에, 접종에 대한 두려움 역시 점점 커지는 추세였다. 언론 매체에서 독감 예방접종 이후 일어난 사망에 대해 연일 보도했기 때문이다.
무섭긴 하나, 접종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더 상세하게 묻고, 쉽게 설명하는 거였다.
예방접종 문진표를 제대로 작성했나요? 혹시나 다시 한번 확인차 물어보겠습니다. 오늘 아픈 곳 따로 없으시죠? 피곤하거나 굳이 몸 안 좋으면 다른 날 맞는 게 낫습니다. 이전에 독감 예방접종 주사 이후에 부작용 같은 건 없었나요? 몸은 평소하고 같나요? 여기 적어놓은 질환이나 복용하는 약, 이게 전부입니까? 혹시 빠진 거나 저한테 더 말하고 싶은 건 없으시죠? 알레르기, 경련, 암과 같은 면역계 질환 등 여기 없다고 표시해두셨는데 맞습니까? 최근에 수혈 받았거나, 스테로이드제, 항암제 치료 등도 안 하신 게 맞고요? 1개월 이내 예방접종 따로 안 하셨죠? 죄송해요. 자꾸 물어봐서 기분 나쁘실 수도 있지만, 안전한 접종을 위한 절차입니다!
문진표 확인 완료되었고요. 추가 설명 좀 드리겠습니다. 접종 후 20분~30분 정도는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이상 반응 확인하겠습니다. 집에 가서도 3시간 이상, 최소 3일간은 자신을 잘 관찰하여야 합니다. 만약에 열이 나거나, 입술이나 혀가 붓는다거나, 또는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보인다면 바로 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오늘은 주사 맞으셨으니깐, 목욕, 운동, 음주 등은 피하십시오.
이 정도가 독감 접종 예진 때 말하는 기본적인 내용이다. 만약 이전에 부작용이 있었다거나, 독감 예방접종 때 피해야 하는 약을 현재 복용 중이라면 대화는 더 길어질 거다. 거기다 두려움에 이런저런 질문을 하여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환자들을 일일이 상대하다 보면, 해야 하는 말은 산더미처럼 더욱 증가한다.
원래라면 말을 많이 하면서 생기는 갈증과 저혈당을 해결하고자, 물이나 간식 등을 섭취하면서 이 상황을 잘 버텨야만 했다. 하지만, 나 나름대로도 코로나19가 두려웠던 탓일까? 가능하면 마스크조차 벗기 싫었기에, 먹는 것조차 포기하면서 일하고 또 일했다.
오전 9시부터 12시, 단 3시간 근무였다. 쉴 틈 없이 150명의 사람을 대상으로 위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저혈당이 확 오면서, 기절 직전에 이르렀다고나 할까?
11시 55분쯤이었다. 환자가 없어 긴장이 확 풀렸다. 진료실에 나 혼자 있다 보니, 잠시 멍도 때릴 수 있었고, 그러다 깊숙이 쌓였던 고통(?)이 입으로, 말로 튀어나왔다.
“아……. 힘들다…….”
그 말에 대해 민원이 들어온 거다. 민원의 내용을 듣자마자, 내가 왜 할 말을 잃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는가? 이때, 고전 소설 하나가 떠올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던 [홍길동전]의 홍길동 말이다.
오해의 여지가 생길까 미리 말한다. 내가 만난 환자 바로 면전에 대놓고 “힘들다”라고 외친다? 솔직히 말하면, 이런 일을 저지른 나 자신을 미친놈이라고 100% 말할 수 있다. 당연히 상대 쪽에서 기분 나쁠 수도 있으니까. 내가 그 상황을 겪었어도 마찬가지고. 아니, 그렇지 않은가? 대화 나누던 사람이 “어휴!”라고 한숨만 내쉬어도, 나를 비난하는 것만 같으니까 말이다.
나도 그걸 모르지 않기에, 힘들어도 가능하면 티를 내진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한다. 단지, 나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올 때는 긴장이 풀리며, 참았던 내 모습이 그냥 막 나올 때도 있다.
남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던 내 모습까지 우연히 포착해서, 민원을 넣었다? 혼자 있을 때조차 “힘들다”를 “힘들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메타버스의 시대가 찾아오는 이 현대에, 지금까지 [홍길동전]의 문화가 남아있단 말인가?
이제 집에서조차 “힘들다”라는 말을 하는 게 두렵다. 누가 들을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