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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Aug 31. 2022

아버님, 저한테 왜 그래요?

 아버님,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매일 매일 보는데 까먹었다고 말하면 섭섭할 거 같네요.      

 아버님, 우리의 첫 만남 생각나요? 오전 6시였잖아요. 그 시간까지 일일이 기억하냐고요? 그럴 수밖에요. 그때가 저의 두 번째 당직이었기 때문이죠. 생각해보면 아버님에게 처음으로 L-tube(엘튜브)를 해드렸네요. 아마 우리 아버님이 제일 싫어하는 술기(수술 방법)가 아닐까 싶어요. 맞죠?     


 아버님, 많이 해보셨기 때문에 이제 누구보다도 잘 알 거예요. L-tube(엘튜브) 삽입을 비위관 삽관이라고도 하지만, 쉽게 말하면 코에다가 줄을 삽입하는 걸 말하잖아요. 아버님, 근데 꼭 넣어야 했기에, 저도 어쩔 수 없이 했다는 거 알고 계시죠?  

 삼키기 힘들거나 의식이 없을 때는 음식이든 약이든 직접 드시기 어렵잖아요? 이거 넣는 이유가 바로 그런 것 때문이에요. 식사 제공과 더불어 입으로 약을 드려야 하는 경우에 넣는 거죠. 그리고 소화 능력이 많이 상실되었을 때, 위의 내용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L-tube(엘튜브)를 삽입하기도 합니다.     

L-tube(엘튜브) / 출처, 네이버 블로그

 아버님, 코로나19 때문에 검사받아보셨죠? 선별검사소에서 보통 코나 입을 통해서 검체를 막 채취하는 거 있잖아요. 기억나죠? 사실 그 검사도 쉽지 않아요. 그 고통 아냐고요? 알죠! 제가 어떻게 모르겠어요. 많이 해드린 만큼, 저 역시 수없이 받아봤으니까요. 

 입 안쪽에 있는 구인두벽에서 채취할 때, 구역감이 발생해서 힘들기도 해요. 저도 한번은 구토하기 직전까지 가 본 적 있어요. 근데 코를 통해서 검사할 때가 입보다 몇 배 더 괴로워요. 그렇게 길고 긴 면봉은 저 태어나서 처음 봤다니까요? 그게 코안으로 들어가는 상상만 해도 고역인데, 그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잖아요? 그 과정 중에 느끼는 통증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저도 정말 아팠거든요. 다시는 받기 싫어질 정도로 말이에요.     

코로나 검사 / 출처, Pixabay

 그런데, L-tube(엘튜브) 이야기하다가, 왜 코로나19 검사 이야기를 하냐고요? 고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코로나 검사보다도, 엘튜브는 어마어마하게 깊숙이 들어가기 때문이죠. 위까지 직접 닿아야 하거든요. 키 큰 남성은 70cm, 키 작은 여성은 55cm, 평균 남성과 여성은 65-60cm 정도 넣어야 하니, 말 다 했죠? 

 얼마나 아플까요? 제가 직접 겪어보진 못했지만, 상상만 해도 온몸이 벌벌 떨리네요. 눈물은 기본으로 깔고 갈 게 벌써 생생히 그려져요. 가능하다면, 관을 넣기 전에 저는 저 멀리 도망칠 거 같네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말이죠.


 봐요! 저도 아버님이 겪어야 할 어려움을 공감하려고 노력한다니까요?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아버님에게 필요한 일인데 안 할 수는 없어요. 아버님, 당장 식사 하셔야 해요. 그리고 약도 드셔야 빨리 퇴원하죠. 그런데 잘 삼키실 수 없잖아요. 그럼 어떡해요. 선택지는 하나뿐이죠. 엘튜브를 넣을 수밖에요…….     


 아버님, 제 첫 술기(수술 방법) 대상이었던 아버님에게 지금도 여러모로 죄송하답니다. 하는 것 자체도 미안했지만, 익숙하지 않았던 저 때문에 배로 힘들까 봐 걱정되었어요.

 아버님을 일단 앉히고, 한 손에는 젤을 잔뜩 묻힌 고무관을 들고, 다른 손은 턱을 살짝 아래로 당기고요. 그리고 코에 관을 삽입하죠. 그때부터 아버지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회피했죠. 하다 하다 도저히 안 되어 아침부터 크게 소리쳤던 거 기억나요?

 “간호사 쌤들, 아버님 고개 좀 잡아주세요.”

  허겁지겁 뛰어온 두 분이 아버님 고개를 고정한 사이, 저는 다시 제 일을 시작했죠. 그때 저는 다시 한번 크게 외쳤어요.

 “아버지, 꿀떡꿀떡 삼켜보세요!”

 혹시나……. 기억 못하시면 매우 곤란해요. 제가 그 말만 1시간 내내 반복했으니까요.

 아버님, 끝까지 안 삼키셔서 고무관이 자꾸 입으로 튀어나왔어요. 저 진짜 울고 싶었거든요? 남자 자식이 왜 우냐고요? 인턴 업무용 핸드폰이 불이 나게 울어 댔으니까요. 다른 일들도 빨리 가서 해줘야 하는데, 아버님 약 먹을 시간이 다가오니, 어쩔 수 없었죠. 하지만, 일이 계속 쌓이고 쌓이는 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리기 시작하면서, 제 마음도 급해졌어요. 

 농담 아니고, 그날 몇백 번은 엘튜브를 찔러 넣은 거 같아요. 고무관이 아버님 입으로 튀어나올 때마다, 제 등은 젖어갔죠. 그러다 온몸이 땀으로 다 맺혔어요. 열기 또한 점차 올라오면서, 제 머리도 뜨거워졌죠. 아버님, 더워서가 아니라요. 그만큼 제가 정말로 미쳐 버리는 줄 알았거든요. 

 어느 순간이었을까요? 그러다 결국 입으로 튀어나오지 않았죠. 와! 그때야 공기를 가득 채운 관장용 주사기를 들었고요. 그 주사기로 엘튜브에 공기를 주입하면서, 청진기로 소리를 들었죠. 잘못하면 폐로 들어갈 수도 있기에, 그러면 매우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니깐, 반드시 확인했어야 했어요. 부글부글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관장용 주사기로 흡입하니 위액도 나왔어요. 입에선 튀어나온 고무관이 없었으나, 제가 걱정이 늘 한가득한 사람인지라, X-ray 요청해서 잘 들어갔는지까지 재차 확인했어요. 결국엔, 성공했답니다! 


 어휴……. 아버님, 제 첫 술기(수술 방법)라 아버님이 더 고생한 거 잘 알아요. 그래도 협조해주신(?) 덕분에, 결국에는 다른 일 하러 뛰어갈 수 있었어요. 그 뒤의 이야기는 말 안 해도 알죠?      

 그 후로 벌써 며칠이 지났네요. 시간이 참 빨라요. 아버님, 오늘 아침에 드레싱 하면서 뵈니깐 정말 반갑더라고요. 아버님의 L-tube(엘튜브)가 잘 유지되어 있어서 그런 건 결코 아니에요. 오해 말아요. 

 근데 아버님,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1시간 뒤에 결국 엘튜브를 빼버렸네요? 아니, 그거 정말 잘 고정해놨는데, 어떻게 제거한 거예요? 보호자들에게 동의받고 억제대까지 해서 손 못 움직이게 했는데 말이에요…….

 소름이 확 돋았어요. 왜 그러셨어요……. 왜……. 결국은 다시 넣어야 하는데…….     

고독과 슬픔 / 출처, Pixabay

 오늘도 아버지와 L-tube(엘튜브) 전쟁을 펼칠 생각에 한숨이 나오긴 합니다. 오늘도 몇백 번 실패하겠죠? 아버님, 많은 걸 안 바래요. 제발 딱 한 번만! 부디 꼴딱꼴딱 삼켜줘요. 그거 안 어렵잖아요. 가능하죠? 너무 큰 소원일까요…….

 부디 오늘은 몇십 번 안에 꼭 성공합시다! 아버님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날보단 조금만 더 도와줘요. 그리고 이번에 넣으면 절대 빼지 말고요. 내가 힘든 건 그렇다 치더라도, 아버님이 더 괴로울 거예요. 빼면 어차피 또 삽입해야 하니까요.      


 아버님, 우리 L-tube(엘튜브)로는 다시는 만나지 말길 바라며, 이제 하러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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