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게에 들어갔습니다. 그 시간은 오후 4시! 직원 말고는 사람이 아예 없었어요. 메뉴판을 꼼꼼히 보고 음식을 시켰죠. 이후, 길고 긴 고민 하나에 빠졌고, 생각 끝에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한라산 한 병 주실래요?”
메뉴를 고른 후, 가게에서 가장 탐나던 창가 자리를 선점했습니다. 내가 앉은 창가는 제주도 협재 해수욕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런 곳이었죠. 협재 바닷가에 위치한 비양도란 섬을 잘 볼 수 있기도 했습니다. 겨울이라 그런지 오후 4시였음에도 해가 점차 지면서 노을이 금세 찾아왔어요. 노을과 어우러진 해변을 바라보고 있을 때, 메뉴가 나왔습니다. 딱새우회에 한라산. 소주잔에 혼자 한라산을 따랐죠. 졸졸졸. 술을 가득 채운 잔을 들고 바다를 쳐다보며 한 잔을 쭉 들이켰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마실 때처럼 아주 빠르게 마시진 않았어요. 천천히, 그 어느 때보다 매우 느리게 말이죠. 씁쓸함이 달콤한 맛으로 느껴지는 그 순간을 온전히 혀로 마주하며 다시 바다를 지켜보기 시작했고, 딱새우회 한 점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입속에 넣었습니다.
2022년, 31살 인생에서 혼자 소주를 마셔본 순간입니다. 그것도 제주도란 멋진 곳에서.
혼자 소주 드셔본 적 있나요? 물론, 술을 처음 마시는 건 결코 아니에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소주와 있는 모든 자리엔 사람들과 늘 동행했어요.
그래요! 저에게 있어 술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사람들]이예요. 서로 주고받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꽃피워보고, 그러면서 상대방의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부분들도 알아갈 수 있기에, 전 소주를 [사람들]이란 단어와 바로 연결하죠. 물론, 그것도 알아야 해요. 적당히 먹으면 사람이지만, 많이 처먹으면 개나 짐승이라는 단어와도 직결된다는 사실 말이죠.
그래서 저는 술이라고 하면 신이 나고 흥이 넘치는 분위기가 바로 떠오르기에 마냥 좋기만 해요.
하지만 소주로 떠올리는 단어, [사람들] 안에는 제가 포함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더라고요. 항상 타인을 알아가기만 했지, 나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은 전혀 없었던 거죠.
그날, 하염없이 바다를 봤어요. 딱새우회를 느리게 먹었고요. 그와 더불어 소주 한 병을 그 어느 때보다 천천히 비워나갔어요. 잠시 생각 없이 멍 때리면서 해수욕장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 생각의 늪에 빠져들어 갔죠.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나는 현재 어떤 고민 탓에 힘들지?
내가 알지 못하는 나의 색다른 모습이 존재할까? 있다면 뭘까?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정리해볼까?
지금까지는 이렇게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나아갈 예정이야?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나의 여러 면을 소주 한 잔으로 조금 색다르게 알아봤죠.
그렇게 시간을 물 흐르듯 흘려보냈습니다.
소주 한 잔을 혼자 한 그날은, 생각보다 특별했어요. 자신에게 화났던 면을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앉고 있던 상처들을 잠시나마 보듬어주며,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다른 이들은 알지 못하는 나의 자랑스러운 부분들을 상기해보기도 했죠. 그동안 이리저리 얽히고설켜 있는, 복잡하게 꼬여있던 실타래 같은 내 마음을 잠시 풀어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소주 한 잔이 선사했다고나 할까요? 어찌 보면 나 스스로 제공한 선물인 셈이죠.
소주 한 잔, 딱 한 번이라도 혼자 마셔보길 바랍니다. 그게 생각만큼 나쁘진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