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거나 건드리고 싶지 않은 것들은 사람마다 다양할 거다. 예를 들어, 집에 들어온 매우 큰 벌레, 오늘 아침에 해결하지 못하고 쌓아둔 설거지들. 여러 가지 의미로 절대로 만지고 싶지 않은 건 각자 다를 거다.
공중보건의사로서 보건지소에 살던 어느 날이었다. 출근하고자 관사 문을 열었더니, 바깥의 모든 게 하나의 색깔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말이다. 무엇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온통 눈이었던 거다. 시골이라 그런가? 그 어떤 발자국, 자동차 자국조차 없이 온전히 보존된 하얀 눈 천지였다.
출근하려던 나는 그 눈밭을 하염없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부산 촌놈이라 눈을 많이 목격하지 못했던 탓일까? 이렇게까지 유지된 눈을 처음 본 덕일까? 어릴 때였다면, 신나서 눈밭에서 뒹굴었을지도, 눈사람 만들면서 혼자서라도 눈싸움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모든 걸 잊고 바라보기만 했다. 오로지 하얀 눈밭 그 자체 말이다.
행복하려면 지금 이 순간을 살자. 집중하자. 이런 말을 많이 한다. 아마 많이 들어봤을 거다. 나 역시 그렇게 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생각만큼 잘 안된다. 고민이나 생각이 넘칠 때는 잠자는 걸 잊고 밤을 새울 정도다. 필수적인 잠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할 때가 허다했다. 그런 나에게 있어,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 백지와 같은 눈밭 덕분에, 현재를 집중하자는 말의 의미를 조금이나마 알았다.
절대 건드리고 싶지 않았던 것. 잠깐이라도 집중해서 보고 싶었던 그것. 정답은 바로 눈이다. 백색으로만 존재하는 눈들을 보는 순간만큼은 현재에 몰입할 수 있었다.
여전히 늘 생각은 많고, 고민은 넘치며,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선택을 할지 고려하다가 두통이 온종일 지속되어, 타이레놀 먹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그 당시의 눈밭 사진을 바라본다. 그리고 떠올려본다. 미래를 고민하고, 과거를 후회하던 나를 붙잡고,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 잠시라도 머리를 비워보고자 말이다.
오늘도 나는 지금, 이 순간에서 살아간다. 막연히 아니라, 제대로 집중하고 신경 쓰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