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글쓸러 Jan 05. 2023

내 머리가 박살 나버렸다.

“교무실로 와라.”     


 자습 시간, 교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며 던진 말이다. 그 기분 아는가? 분명히 실수한 건 없는데, 뭔가를 반드시 잘못한 것 같은 느낌 아닌 그 느낌! 두근두근,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피시방 간 게 걸린 건가? 아니면, 정독실에서 종이로 만든 공과 빗자루로 야구 경기를 하던 게 들켰을까? 설마, 며칠 전에 치킨 먹으려고 보충수업 뺀 게 들통난 건가? 뭐지? 도대체 무슨 죄명(?)으로 불려 가는 거야?

 교무실 문을 열 때 심장 소리가 진화했다. 두근두근에서 쿵쾅쿵쾅으로. 왠지 모를 두려움이 커져만 갔다. 평소에 잘못했던 게 많은 탓이지. 이럴 거였으면 좀 더 완벽하게 알리바이를 만들었어야 했……. 아니지! 착하게 살아야지, 이놈아! 무슨 헛소리야? 나는 글러 먹은 놈인가.

 ‘그래, 혼나면 혼나는 거지 뭐.’ 각오(?)를 수없이 다진 끝에, 이 악물고 교무실 문을 당차게 열었다. 이내, 단단했던 나의 결의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왜냐고?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랗고 두꺼워서 맞으면 뼈가 다 부러질 것만 같은 몽둥……이는 없었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사람 한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두 눈이 휘둥그레 커질 만큼, 이곳에 있으리라 상상조차 못 했던 그 사람.     


 아버지다.

 아버지, 왜 거기서 나와?     

니가 왜 거기서 나와 / 출처, 무한도전

 이번 글의 제목인 [내 머리가 박살 나버렸다]를 보고 유추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매우 큰 사고를 거하게 저질렀기에, 부모님이 학교에 오셨고, 이후 집에 가서 머리가 깨질 만큼(?) 뚜드려 맞은 게 이 이야기의 결론이라고.      


 아니다. 진짜로. 전혀 거리가 먼 이야기다. 그만큼 큰 사고를 친 적은 결코 없다. 

 진실은 여러분이 상상한 것과는 아예 다르다.     


 사건이 발생한 그날, 허리가 좋지 않았던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했다. 어머니는 일하러 바깥으로 나갔고. 집에 머무르는 건 단 한 분, 할머니였다. 혼자 여유를 즐기던 할머니를 향해 전화 한 통이 걸려 왔고, 그 통화로 인해 집안의 평화가 와르르 깨져버렸다.     


“여보세요. 자제분이 애들이랑 놀다가 야구 방망이로 머리가 박살 났어요.”

“지금 병원인데, 병원비 좀 보내주세요. 당장.” 

    

 여유와 평화 따위가 바로 작살날 내용이다. 그런 소식에 심장 떨어질 듯 놀란 할머니는 먼저 손자에게 전화했지만, 하필 받지 못했다. 학교 규정상 스마트폰을 제출해야 했던 거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름 모범생(?)이라 규칙을 잘 지킨 게, 오히려 독인 탓이지. 그 사실을 모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당황스러움이 커져만 가는 할머니의 차선책은 바로 작은아버지였다. 병원에 계신 아버지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러셨겠지만, 어찌 모르고 지나가겠는가? 심각한 부상으로 어쩌면 머리를 열어야 할지 모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아버지는 병원에서 막무가내로 탈출하고 말았다.      


 진실을 확인하고자 학교에 오신 아버지는 아들의 멀쩡한 모습을 직접 마주하였고, 사건은 황당함 그 자체로 마무리되었다. (큰 사고를 친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더 상기합니다.)     

보이스 피싱 / 출처, Pixabay

 나도 놀랐다. 내 머리가 박살 나버리다니! 그것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말이다. 지금의 나는 심각하게 다쳐서 죽기 일보 직전이기에, 현재의 모습을 꿈꾸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이 모든 게 머리가 부서져서 보이는 모습들인가. 잘 읽어보면 같은 말인 이 말을 반복할 정도로, 어이가 없었다. 정신 줄을 놓을 정도로 황당하기도 했고. 또 그때만큼 머리끝까지 화난 적이 없었다. 보이스피싱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인가? 모든 가족이 놀라고, 심지어 아버지는 아픈데도 병원에서 나오는 이 되도 않는 상황. 쌍욕을 안 하는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니겠나?     


 우리에겐 선택권이 있다. 받아들일 것인지, 또는 거부할 것인지. 부디 수많은 다양한 방식의 보이스피싱에 속아 넘어가지 말고,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대응하길 바란다. 아버지의 빠른 행동 덕분에, 큰 피해를 보지 않은 우리 가족처럼 말이다. 그 선택은 오로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다들 잘 대처할 수 있으리라!     

경찰 철컹철컹 / 출처, Pixabay


PS. 같은 사건을 당한 친구 이야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겠다.


“여보세요. 지안이가 애들이랑 놀다가 야구 방망이로 머리가 깨졌어요.”

“네? 걔가 왜 야구 방망이를 가지고 노는데요?”

“남자애들끼리 가지고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저기 여보세요! 지안이는 여자입니다.”


 보이스피싱도 진짜 가지가지 한다. 진심으로 보이스피싱, 다 꺼졌으면 좋겠다.


비슷한 글 : https://brunch.co.kr/@kc2495/65



매거진의 이전글 14,000,605가지 중 단 하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