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글쓸러 Jan 17. 2023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벽이나 나무에 고개를 딱 붙여 시야를 가리던 술래가 이 말을 외치고 뒤돌아본다. 멈추지 못한 채, 계속 움직이는 이들을 발견하고 잡아내는 게 그의 역할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제때 멈춰 술래에게 잡히지 않으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다시 말하는 동안 움직이는 과정을 반복하여 술래의 근처까지 도달해야 한다. 매우 간단하기에,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거다. 

 우리가 아는 게임은 보통 이렇다. 하지만, 모 드라마에선 그렇지 않았다는 걸 많은 이들이 잘 알리라. 술래가 고개를 돌렸을 때 멈추지 못하고 움직이면 탈락이긴 탈락이다. 정확히 말하면, 게임에서만이 아니라, 삶에서까지! 그렇다. 바로 죽음. 술래에게 걸린 이들은 총으로 사살당한다. 패자부활전조차 치를 수 없게 된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이야기다.

 보는 우리도 충격이었지만, 그 게임에 참가한 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무궁화 꽃 하나만으로 사람이 죽는다고? 공포와 두려움이 연쇄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 나간다. 그 와중에도, 정신줄을 부여잡고, 절대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 이야기는 왜 하냐고?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최대한 움직이지 않아야 하면서, 심지어 말도 하면 안 되는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심전도 검사를 진행할 때다.  

심전도 기계와 종이 / 출처, 차움 검진센터 삼성분원

 심전도(electrocardiography, 줄여서 EKG) 검사란 가슴 통증, 호흡 곤란, 가슴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 심장 관련 증상을 호소할 때 주로 활용하는 검사 방법이다. 심장에서 나타나는 전기적 활성도를 팔, 다리, 흉부 피부 표면에 부착시킨 전극을 통해 감지하고, 이를 모눈종이에 선으로 기록하여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검사 결과가 정확하게 나오도록 Artifact(심장의 전기 신호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잡음)가 최대한 없게 만들어야 한다. 심전도 기계와 연결된 전원선, 전극과 피부 표면의 불완전한 접촉, 전극 자체의 변성이나 오염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하지만, 그중 환자의 움직임도 포함되기에, [오징어게임]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참가자처럼 잠시나마 멈춰야 하고 동시에 말도 하지 않아야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Artifact / 출처, Pixabay

 위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설명하면 보통은 협조를 잘해준다. 하지만 모든 일이 마냥 쉽고 편하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많은 분이 예상할 거다. 안 그래도 전극이 피부 표면에 잘 붙지도 않는데, 다리를 계속 떨어 Artifact만이 가득한 심전도 결과지를 마주할 때도 있다. “아아아아아아아”하고 끝없이 소리를 내는 어머니를 만나면, 사실상 검사가 망했다는 걸 직감하기도 하고. 양다리가 붙어 있는데 경직되어 벌릴 수도 없거나, 팔이나 다리가 병상의 금속 부분과 밀접하게 접촉된 경우도 있다. 양팔과 양다리를 벌리되, 금속과 접촉하지 않는 것도 심전도 검사에서 중요하기에, 위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정확한 결과를 얻기 힘들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 보통은 불행이 한 번에 몰려온다. 피부 표면에 살이 없는 경우에는 전극들을 붙여도 계속 떨어진다. 심지어 자꾸 움직이면서, 쉴 틈 없이 말하기도 한다. 잠깐이나마 모든 걸 멈춰서 완벽하게 심전도를 찍을 타이밍이 왔을 땐, 전기 전도 증가를 위해 바르는 알코올이 말라 검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다. 다시 알코올을 바르고 보면, 결과를 얻을 순간을 놓치기도 하고. 때론 전극과 전선의 연결 부위 문제로 심전도 인식 자체가 불가능해지면, 눈물이 시야를 가린다. 어떻게 해야 이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거지?         

심전도 결과 / 출처, Pixabay

 정말 쉽지 않은 경우들이 꽤 있다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 물론 루틴으로 심전도 검사를 하는 때도 있지만, 매우 중한 상태일 땐 응급으로 진행하기도 하니깐. 어려운 상황이라고 가만히 손 놓을 수도 없다.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진 하고 봐야지. “아버지, 제발 움직이지 마세요. 잠깐만요. 제발.”, “어머니, 딱 10초만 말하지 맙시다. 검사 결과를 내야 어머니 돕지!” 끊임없이 애걸복걸하기도 한다. 경직된 다리들을 벌리거나, 팔다리를 금속과 접촉하지 않도록 자세를 만들어보려고도 노력하나, 실패할 때가 사실 대다수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일단 찍고 본다. 검사 결과가 나오게 하는 버튼을 수없이 누른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확인한다. 실패. 다시! 누르자. 확인. 어휴, 다시! 누르고, 확인하고. 계속 누르고, 계속 확인하고……. 하나 걸리기를 바라면서,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당해 시간의 굴레에 빠진 도루마무처럼 끝없는 굴레 속에서 버튼 누르기와 확인하기를 반복한다. 빠져나올 수는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 악물고 수없이 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하고도 진짜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찾아오면, 그때의 선택지는 단 하나다. “주치의 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진짜 최선을 다해보려고 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도루마무 도루마무 도루마무 / 출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그 외 남녀노소 모든 환자분! 심전도 검사 결과 잘 나오도록 기가 막히게 찍어드릴게! 이제 심전도 검사 하는 건 장인입니다. 정말 잘할 수 있어요. Artifact 없게 찍어드리면 진단받고 치료하는 데도 도움이 되니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니깐 가만히만 있어 줘요. 잠깐만 말도 하지 말고요.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 이외 변수는 제가 어떻게든 처리해낼 거니깐, 그거만 좀 부탁할게요.      

부탁합니다... 제발... / 출처, Pixabay

 부디 모두 다 외칩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멈춰볼까요?

 다행인 건, 저는 죽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살려드리려고 하는 거니깐, 잠시만 좀 가만히 있어 봐요. 


참고자료

1. 서울아산병원 의료정보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management/managementDetail.do?managementId=28 

2. 베스트 인턴 / 대한의학서적 / 2022 / 김태준 저
매거진의 이전글 듣기 평가 만점 받을 이들이 늘어나리라 확실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