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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Jan 24. 2023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말로 모르겠습니다.

 해외로 가면 필수로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입국 심사! 이 과정을 거칠 땐 부정맥이 생기는 듯, 심장이 매우 거칠게 떨린다. 대한민국에서 주입식 영어 교육을 받아본 이들이라면 (아마 대부분이지 않을까?) 두근두근하는 내 마음에 공감하리라. 무슨 말인지는 분명히 알겠는데, 대답 못 할까 봐 걱정되는 그 상황 자체가 두렵기에, 두근거리고 떨리는 거다. 다행히(?) 이것저것 물어보는 내용들에 대해, 단문을 이용해서, 혹은 문장을 이루지 못하는 단어들의 조합, 거기에 바디랭귀지까지 첨가된 완벽한(?) 대답으로 의사소통을 해나갔다. 역시, 위기 상황에선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다니깐. 그러다 마지막 질문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왜 징병제지? 그리고 넌 왜 지금까지 군대에 가지 않았니?”

 나는 대답했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현재 휴전 중입니다. 분단국가가 되면서 지원해서 가는 모병제가 아닌, 의무로 군 복무를 하는 징병제란 형태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휴전이라곤 하나 전쟁이 언제 또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법이니까요.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군대를 저 역시 빨리 가고자 했으나, 대학교에 이어 대학원까지 진학하여, 입대 시기가 미뤄졌습니다. 하지만 국방의 의무이기에, 내년엔 수행할 예정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멋진 대답이었다. 단지, 이걸 영어가 아닌 한국말로 말했다는 거고, 이런 나의 멋들어진 설명을 입국심사 담당자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 역시 문제였다. 젠장. 이걸 바디랭귀지로 어떻게 말해? 입국 심사 통과를 못 할 뻔(?)했지만,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나의 모습이 안타까웠던지, 쫓아내진 않더라. 굴욕이었지만, 그래도 통과했기에 망정이지.       

입국 심사는 늘 무섭다 / 출처, Pixabay

 2021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한참일 무렵이다. 자국민뿐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에게도 접종의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했다. 당시, 접종센터로 찾아온 이들의 국가는 정말 다양했다.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국,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미얀마, 필리핀 등등 그 이상! 합법적으로 입국한 외국인들을 비롯하여, 불법으로 체류하는 사람들까지. 그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접종 문진을 하는 게 나의 업무였다.      


 예방접종 관련 문진은 매우 간단하다. 문진표를 사전에 작성해 오면, 이를 바탕으로 정확히 표기했는지 물어보고, 추가 질문을 한 이후엔, 접종 여부를 결정하면서, 주의 사항을 곁들여 설명한다. 그 과정은 대략 이렇다.

 컨디션 괜찮으신 거죠? 혹시 피곤하진 않으세요? 감기 증상이 있다면, 오늘은 접종 피하시는 게 좋아요. 여기 적어두신 질환들 말곤 앓고 있는 질환들 더 없나요? 이 질환들 관련된 약들 말곤 또 먹는 약들은 없겠죠? 특별히 알레르기도 없고요? 최근에 다른 예방접종 받은 거 없으세요? 코로나19 예방주사나, 독감 예방접종 주사 같은 거 말이죠.

 주사 맞고 나선, 15~30분 정도는 여기서 머물다 가야 합니다. 괜찮으면 집에 가되, 3일 이상 스스로를 잘 관찰해야 해요. 혹시나 고열, 경련, 입술이나 혀가 붓는 등의 부종 현상, 호흡곤란 등이 생기면 참으면 안 되고 바로 병원으로 와야 합니다.

 접종 당일은 술 당연히 드시면 안 되겠죠? 운동도 자제하고요. 목욕도 안 하는 게 좋습니다. 휴식만큼은 충분히 취하셔야 해요.        

코로나 19 백신 / 출처, Pixabay

 정말 짧게 요약했다. 이보다 더 길게 말할 때가 많다. 이런 질문과 설명을 반복하다 보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되고, 이쯤 되면 [쇼 미 더 머니]에 지원해도 예선전 정도는 통과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용기(?)마저 가지게 된다. 이 객기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하루에 수백 명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정도 내용은 외우게 되고, 언제든지 자동으로 튀어나오게 되니, [쇼 미 더 머니]에 지원해도 되겠다(?)는 알 수 없는 허세가 생기지 않겠는가? 사실 녹음해서 틀고 싶었다. 같은 이야기를 도돌이표처럼 수없이 반복하니 힘들긴 하더라.      

쇼미더 머니 11 / 출처, Mnet

 그런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을 상대로 이 말을 해야 한다는 거다. 나의 부끄러운 영어 실력만으론 해결할 수 없었다. 왜냐고? 내가 영어로 말한다고, 상대방이 그 언어를 꼭 아는 건 아니니깐……. 

 통역가를 대동해서 해결하기도 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면 가능하지, 매번 그러는 건 불가능했고, 어플 [파파고]까지 활용했으나,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으면서, 환자 한 명 보는 데 어마어마하게 시간을 소요하게 되었다. 그 시간에 만나야 할 사람들은 수없이 늘어나면서, 끝이 없는 줄이 형성되더라. 같은 멘트를 반복하더라도 한국어로 하는 게 차라리 훨씬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반복되는 업무로 육체가 고생하다 보니, 머리가 쌩쌩 잘 돌아가면서 좀 더 편해질 방법들이 주르르 떠오르더라. 그중 하나가 바로 인쇄! 주로 방문하는 나라의 언어로 질문과 주의사항을 번역기로 돌리고, 이를 인쇄한 거다. 와우! 이거 정말 좋은 아이디어 아닌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만 파악하면, 종이를 꺼내서 해당 국가의 내용을 딱딱 짚어주고,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내고, 이후 주의사항까지 쭉 읽어보라고 한다면? 시간도 확 단축되고, 내 목도 아끼고!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우리는 안다.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는 영화 [기생충]의 명대사처럼, 모든 일은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준비된 자료를 읽고 이해하고 고개를 끄떡이는 이들도 있지만, 보고 무조건 NO를 외치는 이도 있다는 거. 

진짜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아니……. 아픈 데 있느냐? 알레르기는 있어요? NO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열나면 약 먹으라고 하는 거나, 주사 이후 호흡곤란, 현기증, 피부발진 생기면 병원 가라는 말도 NO라고 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요…….  

 결국 외치고 만다.

 “Please read this sentence!"

 문제는 이 말조차도 무슨 말인지 몰라 하는 경우다.

 “Read! Read!! Read!!!"

 어쩌겠는가. 그거 말고 방법이 없으니……. 

 이런 접종 관련 질문이나 주의사항에 대해 바디랭귀지로 표현할 방법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면 감사하겠다. 다음에 꼭 활용해 보겠다.     


 대화가 잘 안되니, 울화통이 치밀어 오를 때도 분명히 있었다. 그때마다, 해외 입국 심사 때 내가 느꼈던 바를 떠올린다. 그래……. 저들도 오죽하겠나……. 나와 대화가 안 되는 본인들 역시 갑갑해서 미치겠지…….  무슨 말을 해야 소통이 될지 모르는 건, 나뿐만 아니라 저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깐. 그렇게 생각하며 이해해야지. 

이해하는 게 답이다. / 출처, Pixabay

 원래라면 그 나라 언어를 배우려고 해보겠지만, 이젠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가 아닌가! 내가 공부해서 완벽하게 해내는 것보단, 어쩌면 이른 시일 내에 동시 번역기가 출시되는 걸 기다리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 부디 조금이라도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언어 공부는 너무 어려우니깐……. 좀 편하게 살아도 좋지 않겠나? 바디랭귀지에 의존하거나, 말을 제대로 못 해서 막막한 순간들이 찾아와 받게 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시절이 빨리 지나가길!          

이런 번역이 더 발전되길!! / 출처, 구글 플레이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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