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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Jan 30. 2023

태풍 속에서도 달리고 또 달립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지이이잉. 스마트 폰의 진동이 평소에 비해 심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안전 문자 때문이다. 코로나19 초창기 때 같은 느낌이랄까? 확진자 몇 명이고, 동선이 어떻게 되는 등 많은 내용을 담은 문자가 수없이 오던 그때와 비슷했다. 그럼, 이번에 온 문자들엔 무슨 내용이 담겨 있냐고? 바로 태풍 [힌남노]다.        


 라오스 캄무안주에 있는 국립 보호구역(국립공원)의 이름에서 유래한 태풍 [힌남노]는 8월 28일에 발생한 2022년 제11호 태풍이다. 2002년 태풍 루사의 강수량과 2003년 태풍 매미의 위력을 동시에 지닌 역대급 태풍이 될 수 있다고 예측되던 만큼,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슈퍼태풍 [힌남노]에 대한 안전 문자를 수없이 반복해서 보낸 거였다.        


 태풍이 오던 그날, 나는 병원에 있었다. 그 안에서조차 태풍의 위력이 피부로 와닿더라. 인턴 업무를 하는 내내, 창문이 흔들리고, 바람 소리가 매섭게 들려왔으니까. 그날 당직인 게 그나마 다행이지 않았을까? 태풍이 지나가는 시간 동안은 일 때문에라도 병원 내부에 무조건 머물러야 했으니깐.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어느새 자정. 그날의 새벽 담당은 내가 아닌 다른 친구가 맡기로 했기에, 코드 블루와 같이 급박한 상황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그렇게 여기며 눈을 감았다. 요새는 피곤한 나머지, 머리를 바닥에 붙이기만 해도 10초 안에 잠이 들더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분명히 얼마 흐르지 않은 게 분명한데, 방문 열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새벽의 긴급 방송에 언제든지 반응하고자 마음먹은 탓일까. 작은 소리가 들리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들어온 이는 같이 당직 서는 인턴이었다. 어? 스마트폰을 보니 아직 새벽 1시인데? 새벽 6시부터 내가 일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급한 일이 생긴 건가?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던 찰나, 인턴 동료가 입을 열었다.  


 “형님 저 전원 댕겨오겠습니다.”     



역대급 슈퍼 태풍 힌남노는 이런 느낌 아닐까? / 출처, Pixabay

 9월 6일 오전 4시 50분 경남 거제 부근에 상륙하여, 부산을 거쳐 오전 7시 10분쯤 울산 앞바다를 통해 동해로 빠져나간 [힌남노]다. 전날 오후부터 [힌남노]의 영향권이 가까워진다는 걸 느낄 만큼, 바람이 심상치 않았다. 하물며 한국에 도달하는 시간인 오전 4시 50분에 다다를수록 그 위력은 더하지 않았겠나?

 그렇다. 병원 안에 있기에 안전할 거라고 여겼던 우리의 처지가 돌변하게 된 거다. 역대급 슈퍼태풍을 직접 마주해야 하는 위험한(?) 상황으로 말이다. 정확히는 나 말고, 다른 인턴 친구가.

 그걸 깨닫는 순간, 나는 지극히 당연한 반응을 보였다.      

 “어????”

 “태풍 오는데????”

 “지금???”

 “에이, 설마???”

 “진짜로???”  

 전원이란, 타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걸 말한다. 그 과정 중에 발생할 문제들을 대비해서, 인력 동행이 필수다. 그중 한 명은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의사나 간호사여야 하지만, 현실에선 그 모든 걸 만족하진 못한다. 보통은 인턴 혼자 동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전원을 다녀오게 된 경험들이 꽤 있는데, 그중에서도 처음으로 환자 이송을 했던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진다.       

구급차 / 출처, Pixabay

 그 어느 차보다도 빠르게 달리며, 사이렌을 울리는 응급차. 산소포화도, 혈압, 맥박 등 환자의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를 체크하며 나의 오더를 기다리는 응급구조사. “엄마,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 그러니깐, 가는 동안 잘 참아야 해요.”라고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보호자. 이 상황 속에서, 하필 역방향으로 차를 탄 탓에, 멀미로 구토의 위기에 직면했지만, 정신을 부여잡고, 산소포화도가 자꾸만 떨어지는 환자에게 Ambu bagging(쉽게 말해, 수동식 인공호흡기)을 비롯해 할 일을 하던 나. 


 전원이라는 게 쉽게 말하면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 거다. 하지만 환자를 옮기는 일 아닌가? 하물며 상태가 좋지 않은 이를 이송할 때는 감각이 정말로 날 선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앰뷸런스 안에서는 예민함이 극에 달한다. 단 하나의 생각과 함께 말이다. “제발, 별문제 없이 병원에 도착하자.”     

 거기다 하나가 더 추가 된 거다. 태풍, 그것도 슈퍼 태풍이란 예상치 못한 변수가.    

  

 편도 50분, 왕복 1시간 40분의 거리다. 앰뷸런스는 좀 더 빠를 수 있긴 하다. 차들이 잘 비켜주기에. 다행스럽게도(?) 그날따라 피할 차가 하나도 없었다. 태풍 때문에 다들 집에 일찍 들어간 덕분이랄까. 그렇다고 빠르게 다녀오는 건 불가능하다. 그 상황 속에서 속도를 냈다간, 더 큰 참사가 일어날지 그 누가 알겠는가. 사고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발생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폭우와 함께 칼 같은 바람이 불어대는 슈퍼태풍의 한가운데로 나의 동료가 뛰어 들어가고 말았다.       

힌남노가 오던 그날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 출처, Pixabay

 그 누가 슈퍼태풍과 직접 마주하고 싶겠는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전쟁 속에서도 아기가 생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마찬가지로, 태풍이든 뭐든 아픈 사람은 언제든지 발생하는 법이니까. 상황에 가리지 말고 대처할 수밖에.      


 선택지는 없다. 태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면, 그곳으로 향하는 게 유일한 답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태풍 전원만큼 인턴이 맡아야 하는 힘든 일은 없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얼마 뒤,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나에겐 상상을 뛰어넘는 일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 출처, Pixabay


참고자료

1.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633289&cid=43667&categoryId=43667

2.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1200/article/6404415_35715.html

3. 베스트 인턴 / 김태준 / 대한의학(대한의학서적) /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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