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프로글쓸러 Feb 06. 2023

9시간, 540분, 32,400초 -1

 쇼크(shock)란 다양한 원인으로 심한 혈압 저하가 발생하여 신체에 충분한 혈액순환이 되지 않는 심각한 순환장애 상태를 말한다. 그중에서도 신경성 쇼크(Neurogenic shock)는 혈관 확장을 일으키는 신경 전달체계의 이상에 의해 발생한다. 혈관의 긴장도 조절에 문제가 생기면서 전신 혈관들이 이완하는 쪽으로 향하게 되고, 이에 따라 혈압 저하와 더불어 심장박출량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지면서 쇼크가 일어나게 된다. 중추 신경 계통의 문제, 척수 마취, 반사 부전에 대한 상해, 심한 머리 외상 등이 해당 쇼크의 원인이다.       


응급 / 출처 Pixabay
 “네, 인턴입니다.”

 “선생님, 여기 중환자실인데요.”

 “저, 혹시 지금 밥 먹고 있는데, 아주 급한 일인가요?”

 “어……. 당장 해야 할 일은 아니긴 한데요. 대신 잘 챙겨 먹고 오셔야겠네요.”

 “네? 어떤 일이기에 그러시는 건가요?”

 “아, 네……. 선생님, 30분 뒤에 서울로 전원 가야 해요.”

 “?????????”


 전원이란, 타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걸 말한다. 그 과정 중에 발생할 문제들을 대비해서, 인력 동행이 필수다. 그중 한 명은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의사나 간호사여야 하지만, 현실에선 그 모든 걸 만족하지는 못한다. 보통은 인턴 혼자 동행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부산, 환자를 이송해서 가야 하는 곳은 서울. 흠. 보자. 부산에서 서울까지 KTX로 약 3시간 걸리고, 일반 승용차로 4시간 반 정도 소요되지 않던가? 교통체증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그리고 편도로 그 정도 걸리니, 왕복이면 최소 9시간? 허허허. 껄껄껄. 점심으로 즐기던 햄버거를 더 이상 먹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시원하게 토하고 싶더라. 


부산에서 서울까지 정말로 멀다 / 출처, 카카오맵


 상기 환자는 머리에 심각한 외상을 입은 환자로, 부산에 위치한 3차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하였으나, 보호자 쪽에서 서울 3차 병원으로 이송을 원하던 상황이었다. 담당 주치의는 할 수 있는 설명을 철저히 해둔 상태였다. 언제든지 상태가 나빠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서울까지도 도착 못 할 수 있다. 그럴 땐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이라도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 


 전원 담당으로 내가 배정되자마자, 주치의 선생님의 설명이 쓰나미처럼 급격하게 몰려왔다.


 “해당 환자는 머리 외상으로 신경성 쇼크(Neurogenic shock)가 언제든지 올 수 있습니다.”

 “산소는 계속 Full로 유지해주세요. 이송 도중 혈압이 떨어지면, 라인을 통해 수액을 충분히 넣어주고요.”

 “만약 수축기 혈압이 80까지 떨어지면 노르에피네프린 0.3부터 스타트해주세요.”

 “그렇게 해도 계속 혈압이 떨어지면 0.3씩 증량해주고요. 최대 5까진 증량할 수 있습니다.”


 정신이 아찔한 상황에서도, 필요한 내용을 숙지하다가 질문했다. 만약에 5까지 넣어도 안 되면요?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이후부턴 자체적으로 판단하셔야 합니다. 더 넣을지. 아니면 서울 포기하고 인근 대학병원으로 갈지.”


 여기까지 듣고, 정신줄을 99% 놓아버렸다. 1%라도 잡고 있었으니 천만다행이지 않은가? 

      

 매순간이 위기다. / 출처, Pixabay


 오후 12시 19분, 서울까지의 먼 여정을 위한 출발이 시작되었다. 사이렌은 수없이 울리며 그 어느 차보다도 빠르게 나아갔다. 속도를 높이다 보니, 내부는 수없이 흔들렸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보호자는 환자를 계속 바라보았다. 동행한 응급구조사는 환자는 물론이고, 환자 감시장치 또한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매 순간 혈압, 호흡, 산소포화도를 체크하고, 환자를 바라보고. 


 구급차가 흔들리면서 느껴지는 어지러움 따윈 신경 쓰게 되지도 않을 만큼, 긴장된 탓일까? 쿵쾅쿵쾅 빠르게 뛰는 내 심장 소리가 귓가에 전해질 만큼, 집중력이 극에 달하고, 예민함으로 날이 섰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도 느리게 흘러갔다.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질 정도? 9시간의 거리, 총 540분, 초로 환산 시 32,400초…… . 체감상 만큼은 32,400시간을 몸소 느끼며 나아가야 하는 처지였다.      


그 때만큼은 시간이 가지 않았다. /  출처 Pixabay

 1시간 뒤, 오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말았다. 120/80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혈압이 80/50까지 떨어졌다. 지금에야말로 정신을 꽉 부여잡고 있어야 하는 순간. 수액 투여를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다시 반복했다. 이후에 문제가 생기면, 노르에피네프린 0.3 증량. 그리고 최대 5까지. 안 되면 인근 병원 찾아서 들어가기. 그렇게 생각을 반복하던 찰나, 날카롭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응급구조사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수액이 역류해요.”


 수액이 들어가는 라인에 문제가 생긴 거다. 수액이 잘 들어가는지 확인을 다 하고 출발한 건데. 아무래도 차가 계속 흔들리면서 문제가 발생한 거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노르에피네프린조차도 넣을 수가 없는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선생님, 산소가 모자랄 거 같은데요?”

 “네? 아까 병원에서도 챙겼고, 구급차 안에도 산소 있잖아요?”

 “네네, 지금은 충분한데요. 이렇게 계속 Full로 주게 되면, 서울 도착 1시간 전엔 산소 떨어질 거 같습니다.”     


 구급차 타기 전에 완벽하게 체크했다. 환자 감시 장치는 잘 작동하는가? 혹시나 장치의 베터리는 부족하진 않나? 라인 삽입은 제대로 되어 있는가? 그를 통해 수액은 잘 들어가나? 만약을 대비하여 사용해야 할 노르에피네프린은 챙겼는지, 산소통의 산소량은 충분한지 등등. 그 모든 걸 다 확인하고 출발했다. 그런데도,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거다.     


 이러다 환자 상태가 더 안 좋아진다면? 근데, 수액조차 못 넣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고 여기서 라인을 다시 손볼 수는 없는데? 노르에피네프린조차 주입 못 하니, 빨리 인근 병원을 알아봐야 하나? 서울까지 도달하기엔 산소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서울로 향하는 게 맞긴 한데, 현실적으로 환자에게 피해 가지 않은 방향으로 판단 내리는 게 맞겠지?     


 내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말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 출처, Pixabay

       

다음 화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태풍 속에서도 달리고 또 달립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