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요약
1) 부산에서 서울까지, 편도 4시간 반의 환자 이송 시작
2) 약물이 주입되는 라인 고장
3) 서울에 당도하기까지 필요한 산소마저 부족
4)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
자세한 이야기는 https://brunch.co.kr/@kc2495/83
구급차 타기 전에 완벽하게 체크했다. 환자 감시 장치는 잘 작동하는가? 혹시나 장치의 베터리는 부족하진 않나? 라인 삽입은 제대로 되어 있는가? 그를 통해 수액은 잘 들어가나? 만약을 대비하여 사용해야 할 노르에피네프린은 챙겼는지, 산소통의 산소량은 충분한지 등등. 그 모든 걸 다 확인하고 출발했다. 그런데도,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진 거다.
이러다 환자 상태가 더 안 좋아진다면? 근데, 수액조차 못 넣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렇다고 여기서 라인을 다시 손볼 수는 없는데? 노르에피네프린조차 주입 못 하니, 빨리 인근 병원을 알아봐야 하나? 서울까지 도달하기엔 산소가 부족하다고 하는데, 이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서울로 향하는 게 맞긴 한데, 현실적으로 환자에게 피해 가지 않은 방향으로 판단 내리는 게 맞겠지?
내 눈앞이 캄캄해졌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를 꽉 아물고 생각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끝에,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향하기로.
부산에서 출발한 지 1시간 반 정도, 경북의 모 병원 응급실로 들이닥쳤다. 구급차 안에서 고민을 정리한 초보 의사는 응급실로 들어서자마자 담담하게 말했다.
“저희가 서울까지 가야 합니다. 그런데 산소가 부족해요. 산소통은 꼭 돌려 드릴 터이니, 산소 좀 주실 수 없겠습니까?”
“그리고, 라인도 손 좀 봐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혈압이 80/50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정상에 근접한 상황이었다. 이외엔 다른 문제가 없던 만큼, 지금 닥친 문제들만 잘 해결하면 서울까지 이송 가능하리라 판단했다. 인근 대학병원에 가도 되긴 했다만, 할 수 있는 한도까진 해보자고 다짐했다.
내 생각은 그렇다 치더라도, 산소통 빌려달라고 하는 당찬(?) 인턴 때문에, 그것도 같은 병원 소속도 아닌 사람이 한 말 때문에 아마 많은 이들이 당황했으리라. 응급실 당직 선생님은 나의 부탁에 답했다.
남의 일이라 여기고 어물쩍 넘어갈 수 있었음에도, 흔쾌히 도와주신 이들 덕분에 남은 여정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영화 [기생충]엔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도 나름의 계획이 있었다. 그건 분명 완벽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말이다. 단지, 생각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모든 게 마냥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게 인생 아니겠는가?
남은 3시간의 이송 과정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도착하기 20분 전까지 말이다. 부산에서 가져온 산소가 바닥을 보이기 5분 전. 아까 빌렸던 산소통이 빛을 발할 차례였다. 두렵거나 걱정되는 바는 없었다. 이전과 달랐다. 철저히 준비하고도 예측 불가능과 마주했지만, 그 문제들에 대해 다시 한번 대비해놨으니, 무엇이 문제이랴? 산소통을 연결하려는 순간에야, 그렇게 생각한 것 자체가 사실 오만한 그 자체였다는 걸 깨달았다. 응급구조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급박하게 외쳤다.
심장이 떨어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된 순간이다.
최악의 상황이다.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보호자와 나는 산소통을 꽉 부여잡고 고정하고자 안간힘을 썼다면, 응급구조사는 가지고 있는 스패너를 꽂고 연결해보려고 애썼다. 아니, 애쓰는 걸로 부족했다. 해내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남은 시간으론 그 어떤 병원에도 당도할 수 없었기에. 안 되면 되게 하라! 이 말이 필요한 순간이다. 시간은 무심히 계속 흘러갔다. 4분, 3분, 2분, 1분……. 왜 이런 순간에 시간은 멈추지 않는 것인가. 머리는 하얘지고, 땀은 홍수처럼 나기 시작했다. 손이 떨렸다. 이를 꽉 악물고 진정하고자 수없이 마음을 다스렸다. 계속 힘을 주며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할 때, 처음으로 알았다. 나도 모르던 엄청난 괴력이 나에게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그 덕에 결이 다른 스패너로 산소통을 연결해내고, 산소 공급에 성공했다. 긴장이 순간적으로 확 풀렸고, 그 여파로 쓰러질 것만 같았다. 솔직히 울고 싶었다. 그만큼 아찔했던 순간이다. 수십 번을 돌이켜봐도.
완벽한 계획을 자꾸만 망가뜨린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 어느 때보다 무사하게 말이다. 환자 인계 후, 보호자는 우리들을 찾아와 손을 꽉 잡고 말했다.
남은 것은 부산으로 돌아가는 일뿐이었다. 녹초가 될 정도로 피곤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생각이 한없이 증폭되었기에.
무사해서 다행이었다만, 노르에피네프린을 계속 증량할 만큼 상태가 안 좋아졌다면? 주치의 선생님이 말한 것처럼 인근 대학병원으로 곧바로 직행하는 게 맞았겠지?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보단 그게 올바르다고 판단하지만, 그런데도 끝까지 이송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성인 남성 3명이 있었기에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했지만, 만약에 산소통 연결에 실패했다면? 그 이후엔 내가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점차 악화하여 심폐소생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까지 도달했다면? 하지만 산소가 없는데 심폐소생술이 말이 되는가? 정말 만에 하나, 결국 살려내지 못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했을까?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4시간 반의 고된 일정에도 환자에게 별문제가 없었다는 거. 끝까지 잘 버텨줬다는 사실 하나만은 천만다행이었다.
2022년 11월 28일 월요일, 오후 9시 50분. 카타르 월드컵 예선 2차전 한국 vs 가나 경기 10분 전, 내가 소속한 병원에 도착했다.
9시간, 540분, 32,400초의 일정. 순간순간마다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고된 시간이었다.
그 일을 겪으며, 몸소 알 수 있었다. 이대로의 나는 너무나도 부족하다는걸. 무력하기 그지 없는 나 자신이, 지금보다 나아지고자 한다면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멈추고 싶으면 멈춰도 된다. 단, 발전하고자 한다면, 초보 의사에서 벗어나 전문의로 향하는 길을 선택하고 끊임없이 걸어야 한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2023년 3월 1일,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론 설레는 새로운 여정을 출발한다. 인턴에서 벗어나, 신입 레지던트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수련의 길을 좀 더 이어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