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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글쓸러 Oct 23. 2019

‘할머니’ 아프지 마, 이젠 내가 지켜줄게

 치킨을 먹고 싶었던 7살의 소년이 있었다. 바삭바삭한 튀김, 양념과 후라이드의 조화가 완벽한 치킨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소년이 있는 곳은 치킨 집 하나 없는 그런 시골이다. 소년은 고민하다, 자신을 위해선 뭐든지 해주는 할머니에게 치킨을 달라고 말한다. “꼬꼬댁 꼬꼬, 치킨이야 치킨!”


출처, 영화 '집으로'


 할머니는 정성을 들여 치킨(?)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치킨(?)은 소년이 원하는 치킨은 아니었다. 바로 백숙이었다. 백숙은 양념은커녕, 튀김조차 없는 닭요리다. 소년은 울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누가 물에 빠트리래?”


출처, 영화 '집으로'


 위의 이야기는 영화 ‘집으로’에서 나오는 내용이다. 17년 만에 재개봉할 정도로 괜찮은 영화다. 이 영화에는 소년과 할머니 두 명이 나온다.  소년은 시골에서 할머니와 잠시 살게 되었다. 근데 이 소년은 심각한 정도로 철이 없다. 게임기에 넣을 건전지를 구하고자 할머니의 은비녀를 훔친다. 원래 집으로 보내달라고 할머니의 신발을 숨기기도 한다. 이런 손자를 할머니는 혼내지 않는다. 오히려 더 챙긴다. 차비가 모자라 손자는 차에 태워서 보내고, 자신은 집까지 걸어간다. 그 와중에도 돈을 아껴 손자에게 맛있는 것을 사준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소년은 성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소년은 원래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소년은 할머니를 걱정한다. 말도 못하고, 글도 쓰지 못하는 할머니가 혹시라도 아프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소년은 이렇게 말한다.



할머니, 많이 아프면 쓰지 말고 보내. 그럼 내가 할머니인줄 알고 달려올게

 철없던 소년은 이전보다 성숙하게 되었다. 자신에게 아낌없이 주되, 스스로를 챙기지 않던 할머니를 통해서 말이다.  


 나는 영화 ‘집으로’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철없는 소년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28살인 내 모습이 여전히 철없어 보였다. 7살의 소년처럼 떼쓰고 조르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를 읽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은 환경과 생태가 우리랑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실생활 속의 이야기를 통해서 관련성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노력하는 책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커피가 그중 하나다.


 나는 커피를 많이 마신다. 커피를 좋아하기도 한다. 하루를 버티기 위한 용도로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아침에 일을 하기 전에 한 잔을 먹는다. 점심 때 오전의 피로함을 극복하기 위해 한 잔을 또 마신다. 가끔은 저녁에 독서나 공부를 하고자 커피를 한 잔 더 먹는다. 이렇게 커피 마시는 건 내 삶에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출처, Pixabay


 커피 한 잔이 마실 때까지 필요한 물의 양이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는가? 2리터 페트병 70개, 140리터다. 내가 2리터 페트병 물을 하루에 한 통 정도 소비한다. 70일 동안 내가 쓸 수 있는 물의 양이 커피 한 잔을 만들어내기 위한 양과 같다. 그럼 한 명당 마시는 커피의 양은 얼마 정도 될까? 한국인의 연간 커피 소비량은 아메리카노 기준으로 일인당 338잔이라고 한다. 한 해에 11개월은 전 국민이 날마다 하루에 한 잔씩 커피를 마신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론 소비하는 커피 양과 그에 따른 물의 총 양이 얼마나 될 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책에서 제시하는 이야기를 통해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철없는 소년과 같다고 생각했다. 소년을 위해 아낌없이 주는 할머니처럼, 자연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한다. 하지만 자연은 무조건 다 주기만 할 순 없다. 차비가 부족해서 걸어서 집까지 걸어갔던 할머니처럼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소비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계속 소비한다. 기후변화로 인해 물이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물 뿐만 아니다. 석탄, 식물, 동물 등 지구의 다양한 자원들을 우리는 쉴 틈 없이 소비한다. 우리는 ‘할머니’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있다.   


출처, 영화 '집으로'


 우리는 아낌없이 주는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명확한 방법을 제시하지 않고 노력하자는 말만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을까? 답은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에 나와 있다. 낙엽과 단풍을 통해서 그 방법을 설명한다.  


 단풍과 낙엽은 가을의 대표적인 자연현상이다. 단풍과 낙엽의 알록달록한 색깔에 우리는 가끔 낭만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나무에게 있어서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단풍과 낙엽은 생존을 위한 나무의 처절한 노력에 대한 부산물이다. 수분 공급이 쉽지 않은 겨울에 살아남고자, 나무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이를 통해 내부의 수분을 보호하고, 잎으로 수분이 이동하는 것을 억제한다. 그러면 잎은 말라 떨어진다. 동시에 초록색을 유지하게 하는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낙엽과 단풍의 색깔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출처, Pixabay


 나는 나무의 선택이 쉽지 않은 것이라고 여겼다. 생존전략인 것은 알겠다. 그러나 수개월 동안 피우기 위해 노력한 수많은 잎들을 한 순간에 모두 버리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나는 당장 하루에 커피 한 잔을 안 먹는 것도 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한 순간에 버리는 일은 할 수 있을까? 장담컨대, 스스로도 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는 나무처럼 비울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을 버릴 수는 없다. 얼마만큼 비우며 살아갈지 각자 고민해야 한다. 나는 천천히 버리기로 결심했다. 당장 커피를 안 마시고 살 순 없다. 커피의 양을 줄이는 노력으로, 하루 커피 한 잔을 도전해보고자 한다. 한 잔의 커피의 삶에 익숙해지면 그 땐 아예 안 먹는 것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다른 것들도 차근차근 비워볼 생각이다.


 영화 ‘집으로’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다. 결국 시간은 흐른다. 소년은 어른이 될 것이다. 할머니 역시 나이가 들 것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영원한 이별은 오고 만다. 그런 상상만 해도 나는 슬프다.


출처, 네이버 영화


 시간은 흐르지만,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지금 이 순간에 노력하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르다보면 자연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별의 순간을 계속 늦춰야 한다. 소년처럼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인 비움을 실천하자. 목표를 세워서 하나씩 차근차근 비워 나가보자. ‘할머니’가 우리에게 그동안 많이 베풀었다. 이젠 우리가 ‘할머니’를 지킬 차례다.    


 ‘할머니’ 아프지 마, 이젠 우리가 지켜줄게!

참고자료
1. 세상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최원형, 2016
2. 영화 '집으로', 이정향 감독, 김을분, 유승호 등 출연, 2002


네이버 블로그 : http://blog.naver.com/kc2495/22168569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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