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엔 기본적인 원칙이 존재한다. 덜 먹기, 운동하기. 세세하게 파고들어 갈 수 있다만, 일단 이 정도는 모두가 다 알고 있는 내용 아니겠나? 기본 중의 기본만 지켜도 평균은 갈 수 있는 다이어트의 원칙을 오늘 어기기 일보 직전이다. 이 악물고 어떻게든 버텨왔지만, 뜨끈뜨끈한 물을 졸졸 따른 매콤한 컵라면 하나, 그것도 큰 사이즈의 컵라면 하나가 바로 내 눈앞에 있다.
라면을 보니 그게 생각난다.
꼬불꼬불 꼬불꼬불 맛 좋은 라면
라면이 있기에 세상 살맛 나
하루에 10개라도 먹을 수 있어
후루룩 짭짭 후루룩 짭짭 맛 좋은 라면
https://www.youtube.com/watch?v=7e6vHa1gyWs
어릴 때 즐겨보던 [아기공룡 둘리]에서 마이콜이란 캐릭터가 부른 노래인데,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다. 라면 하면 생각나서 말해봤다. 공감되지 않았다면 사과드린다.
여튼 후루룩 짭짭하면서 맛나게 먹을 생각으로 3분, 180초라는 길고도 긴 인고의 시간을 묵묵히 참는다. 행복회로를 돌려본다. 이거 먹으면서 유튜브 보다가 잠들면? 살은 찌겠지. 대신 쿨쿨 시원하게 잠 하나는 제대로 챙길 수 있겠구먼!
영화 [기생충]에 나온 명언 아는가?
“아들아, 넌 계획이 다 있구나?”
그렇다. 나도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 [기생충]처럼 계획은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왜냐고? 라면 먹기 1분 전에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
라면 먹고 갈까 했는데, 응급이란다. 어쩔 수 없이 라면을 그대로 두고 달려간다. 뛰어가며 다짐한다.
전장에 나가는 삼국지의 관우처럼 비장하게 외쳤다. 물론 나는 그처럼 큰 체격에, 붉은 얼굴, 그리고 멋진 수염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비장미가 한 1,000배는 떨어지겠지만 말이다. 하여튼, 라면이 불어 터지기 전엔 꼭 돌아오고 말리라!
심전도(electrocardiography, 줄여서 EKG) 검사란 가슴 통증, 호흡 곤란, 가슴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 심장 관련 증상을 호소할 때 주로 활용하는 검사 방법이다. 심장에서 나타나는 전기적 활성도를 팔, 다리, 흉부 피부 표면에 부착시킨 전극을 통해 감지하고, 이를 모눈종이에 선으로 기록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검사 결과가 정확하게 나오도록 Artifact(심장의 전기 신호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전기적 잡음)가 최대한 없게 만들어야 한다. 심전도 기계와 연결된 전원선, 전극과 피부 표면의 불완전한 접촉, 전극 자체의 변성이나 오염, 환자의 움직임 등 Artifact에는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
여러 가지 원인 중 예측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심전도 기계 자체가 고장 난 거다. 하필이면,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다른 중환자실에서 기계를 빌려오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소모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환자가 소리를 마구 질러대면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움직이더라. 심지어 그곳은 코로나 병동이네? 방호복 입고 들어갔다가, 고장 난 걸 확인하고 옷 벗고 나가서 다른 심전도 기계를 빌려왔으며, 다시 방호복 입고 코로나 병동으로 진입했고, 환자가 진정될 때까지, 동시에 Artifact가 없어질 때까지 기다린 후 검사 결과를 확보하고 나서 소독하고 나오니, 내 마음은 이미 포기상태였다.
일을 마무리하고, 당직실 앞에 도착하려는 찰나, 또 다른 전화가 온 것이다. 마치 잘 구성된 각본 같았다. 그 시나리오는 이런 의도였음이 분명하다. 두 주인공인 나와 라면이 만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식의 해피엔딩의 결말로 마무리 될 것처럼 보이다가도,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그런 확고한 목적 말이다. 주어진 현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방광에 가득 찼으나 직접 누지 못하는 소변을 수동적으로 빼는 업무가 바로 넬라톤이다. 성기로 길쭉한 관을 삽입하여 이를 진행하는데, 병원에선 인턴들이 해당 일을 맡는다.
1년 동안 익숙하게 늘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카테터를 삽입하면, 쭉쭉 소변이 나와야 하는데…….
한참을 기다렸다. 단 한 방울의 소변도 나오지 않더라.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단순명료하다. 새로운 콜이 왔기 때문이지.
이번엔 코로나 병동에 새로 들어온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폴리 삽입이다. 폴리 삽입은 넬라톤과 다르게, 일시적으로 소변을 빼는 일이 아니다. 언제든지 소변을 편하게 볼 수 있도록 관을 삽입하고 고정하는 업무라고 이해하면 된다.
멸균 장갑을 낀 왼손으론 성기를 부드럽게, 그러나 직각이 되도록 확실하게 고정하고, 젤을 잔뜩 묻힌 폴리 카테터를 오른손으로 잡아서, 방광에 닿도록 천천히, 매우 천천히 성기로 밀어 넣는다. 그런데, 어라? 또 잘 안 들어가네? 참고로, 전립선 비대증이 있다면 생각보다 잘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억지로 넣으려고 하다간 자칫 잘못하면 혈뇨가 발생할 수 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천천히 밀어 넣고, 빼고, 밀어 넣고, 빼고……. 수없이 반복한다. 오전 1시 30분이라 비뇨기과 과장님께 연락드리기도 좀 그렇고……. 진땀을 한참 뺀 20분 뒤에야 폴리 삽입에 성공하고 만다.
사실 아까 전부터 이상함을 느꼈다.
오늘 뭔가 날인데?
라면 불어 터지고, 식고, 난리 나겠는데?
다이어트를 계속하라는 신의 큰 그림인 건가?
참고로 나는 무교다. 그런데, 만약에 이 모든 게 신의 뜻이라면,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신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신은 새벽에 라면 먹는 게 죄라는 걸 알려주고 싶으셨던 거 같다.
내 속 마음을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외치는 순간, 또다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