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미쳐버리겠다. 내 눈앞에 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 해야 할까 막막하다. 온몸을 흔들어댄다. 왼쪽, 오른쪽, 위, 아래 ……. 상하좌우로 수없이 왔다 갔다 머리가 왕복한다. 그런 머리를 지지하는 목이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상체, 하체 역시 마찬가지다. 스프링이 튀는 듯 마냥,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쉬는 시간 따윈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침대 난간에 손과 발이 묶여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랄까? 아니었다면, 낙상 사고가 이미 여러 차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내부의 에너지를 모조리 태워버릴 듯이 행동하는 탓에 신체가 침대에 부딪히면서 나는 쇳소리가 중환자실을 가득 메운다. 쾅. 쾅. 쾅……. 뭐라고 말하는지 알 수 없는 괴성 역시 동반된다. 솔직히 말해 돌아버리기 일보 직전인 상황. 이건 혼자 감당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병원에서 잡다한 업무를 도맡아 하는 인턴, 그중에서도 1년 가까이 일하여 인턴 생활의 끝을 앞두고서야 모든 일에 통달하게 된 소위 말턴이란 존재가 되었다고 해도, 이건 어떻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모든 게 다 L-tube(엘튜브) 탓이다. 코에다가 줄을 삽입하는 걸 뜻하는 엘튜브는 꿀꺽 삼키길 힘들어하는 이에게 식사 제공이나 경구로 약을 투여하기 위해 활용하는 방법 중 하나다. 좋은 의도로 사용하지만, 관이 위에 직접 닿을 정도로 깊숙이 넣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키 큰 남성은 70cm, 키 작은 여성은 55cm, 평균 남성과 여성은 65-60cm 정도. 그러다 보니, 삽입하는 과정 중에 통증이 동반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코로나 병동에 들어갔기에, 방호복 내부는 이미 땀범벅인 데다가, L-tube를 넣는 과정 중에 발생한 통증으로 제어할 수 없게 된 환자로 인해, 머리가 아파왔다. 하긴 해야 하는데, 이러면 아예 해낼 수 없는데. L-tube 삽입하는 동안,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아줄 다른 이들을 호출하고, 환자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움직임이 감소하면서, 차츰 안정을 찾아가던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없이 외쳤다. 횡설수설하던 이전의 고함과 다르게 명확히 이해할 수 있는 그 단어를.
엄마, 엄마, 엄마 …….
90세가 넘어간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계속 찾았다.
한동안은 편치 않았다.
필요한 일이라 어쩔 수 없이 진행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생겨버린 미안함 때문에.
환자의 눈가를 타고 내려온 눈물 때문에.
엄마라는 단어가 전해주는 힘 때문에.
엄마. 그 말은 참으로 이상하다. 매일매일 보는 엄마지만, 그 언어를 입 밖으로 내뱉거나, 귀로 듣게 되면 왠지 모르게 울컥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하나둘 무덤덤해지는 와중에도, 엄마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감정만큼은 아무리 노력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환자의 반복된 외침을 들으며 알아버렸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말하게 되는 언어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엄마라는 사실을. 그 이름이 가져다주는 힘이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걸. 어쩌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의 크기가 배로 커질지 모른다는 걸 말이다.
오늘은 잠시 엄마를 떠올려 본다.
오늘 역대급 춥단다. 장갑 좀 가져가라! 목도리도 챙겨. 아침부터 잔소리 한껏 하던 엄마.
밥은 먹었니? 별일은 없었지? 30대가 된 아들에 대한 걱정은 10대나 20대와 마찬가지로 변치 않는 엄마.
사소한 문제로 늘 많이 싸우는, 때로는 심하게 말다툼까지 하는 엄마.
한참을 다퉈도 배는 곪으면 안 된다며, 아침마다 밥은 잊지 않고 꼭 챙겨주는 엄마.
써브웨이 먹고 싶어. 떡볶이 사줘. 과자 좀 사다주라. 뭘 먹고 싶다고 매일 말하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