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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날 Oct 21. 2021

나의 단골집, 명동상회

8년을 하루같이 낯익혀 병문안까지 오고갈 정도


   쌀, 연탄을 비롯해서 반찬감 등 잡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 잡화품들을 팔고 있는 명동상회라는 상점이 명동공원 앞 모퉁이에 있다. 8년 전에는 지금 있는자리 건너편에 초라한 구멍가게에서 부부가 함께 시작한것 이 지금은 옛날에 비하면 아주 비약적인 발전을 했다고 할만큼 큰 잡화상이다.

한편 마음에 들어 다니기 시작하면 계속 다니는 내 성격탓도 있지만 친절한 마음씨에 이제는 8년이나 된 단골이 되어서 혹시 외출했다가 지나는 길에 돈이 없이 들러도 필요한 물건을 모두 들려준다.

 또 이상점에 없는 물건을 급해서 다른상점에 가서 샀을때도 명보상회에 그 이야기를 꼭 해주고 다음부턴 그물건도 갔다가 팔아주기를 부탁 하게끔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물론이고 일하는 아이가 혹시 다른 상점에 가서 사오는 경우 친한 이웃의 의리를 끊는 일이라고 야단을 쳐서, 우리집 식구 모두가 꼭 그 상점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사도록 하고 그 상점 아주머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병문안을 가는 등 단골집에서 벗어나 친한 이웃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노상에서 넘어져 옷이 흙탕이 되었는데 바로 명동상회 근처가 되어서 그리로 뛰어들어 갔더니 온식구들이 달려 나와서 흙탕물을 닦아주고 다친데가 없느냐고 염려해 주는데 정말 인정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내가 산보길에 지나다 보면 새벽 5시반 부터 부부가 나와서 부지런히 장사를 하는데 이 부부의 이 같은 부지런함과 친절, 그리고 신의있는 태도가 현재와 같은 발전을 가져 왔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이홍구  <미용가 루비 미장원> 매일경제 1969년 1월 27일자

이홍구 루비 미장원 원장, 서울 역사박물관 자료 '명동의 어제와 오늘'을 보면 한일 미용 친선모임에 이홍구 원장이 등장하는데, 어제 소개한 사다 미장원과 비교하면 재밌다. 한국 미용의 중심지였던 명동의 미용인 들은 60년대 초 일본과 기술 교류와 친선 미용 강습회를 열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일수교가 1965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미용에 있어서는 한일수교 이전에 이미 활발한 교류가 있었다는 점이다.

명동의 양장점에서 옷을 맞추고 미장원에서 머리를 하는 것이 멋쟁이의 기본이었던, 명동이 유행의 중심이었던 시절의 원동력이 느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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