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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날 Sep 30. 2022

인스턴트 라면 기술 이전의 미스테리

8/100

삼양식품이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멘 기술 설비를 묘죠 식품에서 사온 이야기는 정중윤 회장의 진심에 감복한 묘죠식품의 오쿠이 키요미즈 회장이 헐값에 전수해 준 훈훈한 내용이지만, 조금만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스턴트 라면은 닛신식품이 1958년 여름에 처음 발매했지만 실제로 전국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것은 1959년 12월에 다카쓰기 시에 새로운 공장을 세운 이후였다. 일본에서 인스턴트 라멘이라는 제품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60년 이후로, 닛신식품은 면을 기름에 튀겨서 만드는 유탕면에 대한 특허를 획득하고 지키는데 굉장히 공을 들였다. 특히 닛신 식품은 1960년부터 1965년까지 수많은 유사품과 소송전을 벌였을 정도로 인스턴트 라멘의 제작 공정은 엄청난 가치를 갖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반도체 제작 공정에 뒤지지 않을 정도. 지금도 돈이 있다고 반도체 제작 라인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당시에도 인스턴트 라멘 생산 공정을 아무리 달러를 싸들고 온다고 해도 넘길 이유가 없었다.

물론 일본의 식품회사가 자기 회사의 생산 라인을 통채로 넘기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자사의 낡은 생산 라인을 중고로 한국에 팔고 새로운 생산 라인을 도입하는 일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만 삼양 식품이 일본에 인스턴트 라멘 설비를 사기 위해 찾은 1963년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 묘죠식품은 1960년에 닛신식품의 치킨라멘의 유사품을 발매하고, 닛신식품의 특허를 우회하기 위해 면에 직접 뿌려 놓은 양념 대신 별첨 스프를 넣은 라멘을 발매한 것은 1962년의 일이다. 묘죠식품이 삼양 식품에 인스턴트 라멘 생산 라인을 넘긴 것은 1963년 6월, 삼양식품이 첫 삼양라면을 출시한 것은 1963년 9월이었다. 당시 묘죠식품도 발매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최신 기술의 별첨 스프 기술과 함께 인스턴트 라면 생산 설비를 선뜻 팔았다는 것은 위화감이 느껴진다. 전중윤 회장의 인터뷰나 자서전 등에는 묘죠식품 오쿠이 키요미즈 회장에게 자신의 진심이 통했다고 하는데, 그건 삼양식품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밖에 안보인다.

환영 묘죠식품 오쿠이 사장 내한의 플랭카드가 선명한 것을 보면 1963년 6월과 9월 사이의 삼양식품 공장에서 찍은 단체 사진일 것이다. 가운데 꽃다발 등을 들고 앉아있는 사람이 오쿠이 키요미즈 회장. 사진이나 내용만 보고 있으면 평범해 보이지만 아직 19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에 이런식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굉장히 큰 규모의 경제 교류가 단순히 한국 기업가의 진심 만으로 이뤄질리가 없엇다. 과연 이 배후에 무엇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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