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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날 Oct 01. 2022

라멘의 아버지 미국

9/100

미국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연합군의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생산기지로 바꼈다. 전쟁은 상상을 초월하는 물자를 필요로 하고, 미국은 연합군의 공장이 되어서 군수 물자를 찍어 냈다. 그 군수 물자 중에서는 식량인 밀도 있었다. 지금 미국의 농업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대규모의 기업농은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태어났다. 그렇게 연합군의 승리를 이끈 미국의 밀은 전쟁이 끝나면서 갈 곳을 잃었다. 거기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과 1946년은 미국에 밀 풍년까지 겹쳤다. 얼마나 큰 풍년이 들었나 하면, 잉여 생산된 밀을 쌓아놓기 위한 창고 운영비가 1년에 2억 달러일 정도였다. 전쟁이 끝났다고 밀 농사를 그만 둘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켄자스 출신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밀농사를 짓는 유권자를 무시 할 수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미국이 전쟁이 끝나서 갈 곳을 잃은 밀을 냉전이라는 새로운 전쟁에 투입하게 된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공산화된 중국이 영향력을 넓히면 아시아의 여러나라가 도미노가 무너지듯 차례대로 공산화가 된다는 도미노 이론을 주장했다. 특히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과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한국이 중국의 마수에 휘말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굶주리지 않게 하는 것이었고. 미국의 밀을 공여하는 것은 남아도는 밀을 소비하며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는 일석이조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냉전이 심화될수록 미국 밀을 한국과 일본에 쏟아져 들어왔다.

라멘의 탄생은 미국의 원조 밀가루에 의해 자생적으로 벌어진 일이지만,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과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은 미국이 두 나라에 밀소비를 자리잡게 하기 위해 일부러 벌인 일이었다. 전중윤 회장이 인스턴트 라면 설비를 사기 위해 김종필 라인을 통해 확보한 2만 달러가 어디서 나왔는지 떠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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