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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스턴트 라면의 생산 설비와 생산 기술을 넘겨 준 것은 묘조식품이었는데. 재밌게도 당시의 묘조식품은 기술력 부족으로 인해 일본의 인스턴트 라멘의 주류에서 살짝 벗어난 회사였고, 당연히 한국 인스턴트 라면은 그런 묘조식품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지금도 닛신식품의 치킨 라멘은 면을 대접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어 기다린 다음에 먹는 즉석면이다. 컵라면을 봉지면으로 파는 것 같아 당황스러운데, 원래 닛신식품이 처음 개발한 인스턴트 라멘 부터 그런 식이었다. 봉지면이 컵라면 같은 것이 아니라 원래 치킨 라멘을 바로 먹을 수 있게 개발한 것이 컵누들이었던 것이다.
지금 와서는 믿기지 않겠지만 인스턴트 라멘 초기에는 '일반 국수처럼 냄비에 끓여 먹는 것은 인스턴트 라멘이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있었다. 냄비에 끓여 먹는 것은 인스턴틀리 하지 못한 것이다.
묘조식품이 1960년에 처음 개발한 인스턴트 라멘은 닛신 식품의 치킨 라멘과 같은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끓여먹지 않는 형태의 라멘이었다. 오사카가 중심이었던 닛신식품은 1961년에 다카쓰키 공장을 세우기 전까지 생산량이 많지 않아 도쿄 쪽의 물량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그래서 도쿄 식품은 묘조식품에 도쿄에 팔 인스턴트 라멘을 발주한다. 애초에 치킨 라멘의 대용품으로 개발된 제품이었으니 묘조 식품의 최초의 인스턴트 라멘은 닛신의 치킨 라멘처럼 뜨거운 물만 부워서 먹을 수 있고 면에 양념이 붙어있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이 묘조 식품 최초의 라멘은 도쿄 식품 계약을 앞둔 발표회장에서 뜨거운 물을 부어도 면이 익지 않는 참사가 벌어졌다. 발표회장에서 홍보 담당자가 보기 좋은 말끔한 면을 골라서 시연을 한 것이 원인이었는데. 겉보기 좋은 말끔한 면은 제대로 튀겨지지 않은 불량품이었던 것이다. 결국 발표회는 실패로 끝나고 동쿄 식품은 닛신 식품과 계약하게 된다.
인스턴트 라멘 첫 도전에 실패한 묘조 식품이었지만. 이번 개발이 전화위복이 된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불량품이어도 끓여먹으면 상관 없다는 콜럼부스의 달걀 같은 발견이었다. 그렇게 끓여먹는 인스턴트 라멘으로 방향을 전환한 묘조 식품은 양념을 면에 묻힐 필요도 없었기 때문에 알루미늄 봉지에 넣어 '별첨 스프'로 만들어 버린다. 이 별첨 스프는 당시 일본 인스턴트 라멘 업계에 몰아치는 인스턴트 라멘 특허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수단이기도 했다. 묘조 식품은 당시 인스턴트 라멘 업계 중에서 최초로 면에 양념을 묻히는 즉석면 방식을 폐지하고 별첨 스프 타입만 발매한 업체였고. 묘조 식품에 의해 인스턴트 라면 기술을 받아들인 한국도 별첨 분말 스프가 라면의 기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