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이즈 베스트'로 대서양을 건넌 '찰스 린드버그'이야기.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는 '선셋대로'와 '뜨거운 것이 좋아'로 유명한 빌리 와일더 감독의 1957년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찰스 린드버그의 1927년 대서양 횡단 여행을 그린 논픽션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The Spirit of St. Louis)'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로 원제는 당연히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가 아니라 원작 논픽션과 같은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이다.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라는 제목은 당시 수입되던 외화가 대부분 그렇듯이 일본 제목인 '날개여,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翼よ!_あれが巴里の灯だ)'를 그대로 옮겨온 것인데,'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는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에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이라는 제목보다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대서양 횡단' 자체라면 린드버그가 1927년에 성공하기 6년 전에 뉴펀들랜드와 아일랜드 사이를 무착륙 비행으로 횡단한 기록(위 지도의 검은선)이 있지만 '진정한 대서양 횡단'으로 기록되지 않았다. 진정한 대서양 횡단은 뉴욕과 파리를 잇는 5760km의 노선(위 지도의 빨간선)을 뜻했다. 그냥 아메리카 대륙과 아일랜드를 잇는 3300km는 진정한 항로가 아니라 미국의 뉴욕과 유럽의 심장을 잇는 노선이 진정한 '대서양 횡단'이었다. 그래서 찰스 린드버그가 33시간 30분의 비행 뒤에 파리의 불빛을 보고 외친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가 큰 울림을 갖는 것.
1919년에 뉴욕에 호텔을 소유한 사업가 레이몬드 오티스가 뉴욕과 파리 간 무착륙 비행에 2만5천달러의 상금을 걸었지만 원래 기한인 5년 동안 도전자가 없었다. 어렵다기 보다는 당시 항공 기술이 대서양 횡단이 가능할 정도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5년 동안 연장했고. 항공기술의 발전 때문에 많은 도전자들이 등장했다. 절정은 1926년과 1927년 사이, 많은 도전자들이 도전했고 그리고 실패했다. 도전자들은 다음과 같다.
시코르스키 S-35, 3개의 엔진과 4명의 승무원(조종사 2명, 통신사 1명, 정비사 1명) 시험 비행중 이륙 실패로 전소.
키스톤-24 '아메리카' 역시 3개의 엔진과 2명의 승무원 그리고 시험비행 중 추락.
포커 F-VII '아메리칸 레기온' 프랑스 해안에서 추락.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 전에 대서양 횡단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비행기 들을 보면 3개 이상의 엔진을 가진 대형 기체라는 공통점이 보인다. 당시의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하려면 30~40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교대 하기 위한 2명 이상의 조종사가 필요했고, 휴식할 공간도 필요했기 때문에 기체는 저절로 대형화가 되었다. 기체가 대형화 되면서 더 많은 엔진이 필요해졌고, 엔진이 늘어난 만큼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해졌고, 연료를 많이 싣기 위해서 대형화 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대서양을 횡단하기 위해 3발 엔진이나 5발 엔진을 가진 초대형 비행기가 등장했지만, 막상 뉴욕과 파리 횡단에 최초로 성공한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은 작은 단발 비행기였다. 30시간 이상 장거리 비행을 위해 점점 커지던 라이벌과 달리 세인트 루잇의 정신은 반대로 점점 작아졌다. 발상의 전환이자 무모한 도전이었다.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은 엔진 바로 뒤에 대형 연료 탱크가 위치하고 있었다. 엔진 바로 뒤에 연료 탱크가 있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었다. 균형을 맞추기 좋았고 엔진과 직결 되어있기 때문에 구조가 단순해서 고장이 날 가능성도 낮았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앞이 안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은 최대한 많은 연료를 싣기 위해서 잠망경(PERISCOPE)로 앞을 보는 변태 같은 비행기 였던 것이다.
더 많은 연료를 싣고, 더 멀기 날기 위해 무게가 나가는 것은 모두 제거해서 낙하산도 싣지 않고, 불시착 했을 때를 대비한 고무 보트만 하나 실었다. 찰스 린드버그 본인도 굶어서 몸무게를 줄였다고 한다.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은 불 필요한 기능은 물론, 꼭 필요한 기능도 없었는데, 연료 게이지도 없어서 연필로 남은 연료를 기록해야 했다. '기능이 없으면 고장 날 곳이 없다'라는 신념을 갖고 있기도 했지만, 일부러 조종을 번거롭게 만들어서 졸음을 쫓을 생각이었다. 조종이 너무 편하면 졸다가 잠이 들 것을 걱정했다.
찰스 린드버그의 가장 큰 고난은 앞이 안 보이는 세인트 루이스의 정신이 아니라 잠과의 사투였다. 33시간 30분의 비행 동안 한 숨도 못잔 것은 물론이고, 출발 전에도 긴장해서 잠을 못잤기 때문에 실제로 잠을 자지 못했던 것은 50시간 이상이었다고 한다. 비행 시작하고 9시간 후 부터 졸음이 쏟아졌고, 22시간이 지난 뒤 부터는 환각을 보기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상태에서 33시간 30분의 비행 끝에 파리의 불빛을 보았을 때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지 않았을까?
찰스 린드버그는 파리에 도착해서 간단한 확인만 받고는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의 집에서 63시간 동안 꿀잠을 잤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