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의 탄생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는 이번 아카데미상을 휩쓴 오펜하이머의 예를 들지 않아도 굉장히 많다. 유명한 위인이나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 영화화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가끔 왜 이 사람의 영화가 없나 궁금한 인물이 있는데. 우리에게도 익숙한 KFC 할아버지, 샌더스 대령, 핼런드 데이브 샌더스다. 이런 대규모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를 이룩한 인물이 그렇듯이 샌더스 대령의 삶도 파란만장한데... 아직까지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없다니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봤더니... 그런 영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영화가 아니었을 뿐.
'유혹을 위한 레시피'라고 미망인과 프라이드치킨 요리사 할 샌더스와의 로맨스 영화다. 미국 케이블 채널인 라이프타임을 위한 단편영화인데. 물론 실제 KFC 할아버지와는 관계없는 내용으로 KFC가 만든 게 아니라면 명예훼손 소송을 걸 것 같은 단편 영화다.
KFC 유튜브 채널을 보면 좀 이런 병맛 콘텐트를 좋아하는 느낌이 든다. KFC 할아버지로 프로레슬링을 한다거나 KFC 할아버지 로맨스 소설, KFC 할아버지로 뇌호흡 하는 광고도 찾아볼 수 있다.
노라조의 내 팔자야가 떠오르는 단전호흡 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왜 아직도 KFC 할아버지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지 않았는지 궁금할 정도다.
KFC 할아버지가 주연인 영화는 없었지만 세계 제일의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인 맥도날드의 탄생을 그린 마이클 키튼 배우 주연의 “파운더”(2016)을 찾을 수 있었다.
맥 맥도날드와 딕 맥도날드 형제가 창업한 햄버거 패스트푸드 가게 맥도날드의 성공에 흥미를 가진 밀크셰이크용 전동 믹서 세일즈맨 레이 크록이 어떻게 맥도날드를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우고 맥도날드 형제에게서 맥도날드 상표권을 탈취할 수 있는지 그린 일대기다.
영화에서는 맥도날드 형제의 성공을 굉장히 잘 묘사하고 있어서 주인공인 레이 크록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잔혹한 기업 사냥꾼으로 그려지는데, 당시에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KFC의 샌더스 대령도 프랜차이즈 사업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낮은 프랜차이즈 로열티만 받다가 원래 운영하던 본점이 망하면서 KFC본사와 큰 충돌을 일으키곤 했다.
극 중에서 레이 크록을 살짝 악역처럼 그리긴 했지만, 실제로 맥도날드가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프랜차이즈를 부동산 사업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건 요식업에 종사하는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실감한다. 백종원 대표가 논현에 차린 많은 1호점 들이 높아진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철수하는 가운데 자기 가게를 갖고 있던 알파 갈매기살 만이 여전히 논현을 지키고 있는 걸 보면 부동산의 중요함을 실감하게 된다.
알파 갈매기살은 백종원 대표의 단골집이었던 알파 문구점의 이름을 그대로 살린 채 업종 전환을 시도한 경우. 엄밀하게는 백종원 대표의 더 본 패밀리는 아니다.
작년 연말에 한국 맥도날드가 직영점 체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 맥도날드를 사모 펀드에 매각하려 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 맥도날드도 사모펀드를 매각할 정도로 한국의 유명 패스트푸드 체인은 사모 펀드의 소유인 경우가 많다. 이런 구조 자체가 맥도날드가 만들어 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일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본 롯데리아는 일본의 외식그룹 젠쇼에 인수되면서, 일부 매장이 젯테리아로 이름을 바꾸기도 하고, 일본 버거킹을 한국 롯데리아가 소유했던 적도 있을 정도로 일본에서도 패스트푸드 체인의 경영권은 이리저리 오가기 마련이다.
영화 마지막에 270만 달러로(당시에는 거금이었으니 빼앗았다고 하긴 좀 뭐한데)맥도날드의 상표권을 빼앗은 레이 크록에게 딕 맥도날드가 왜 우리 상표권을 그렇게 원하는가 물어보는 장면이 있는데. 자세한 내용은 직접 영화에서 확인해 보고.
이때 레이 크록의 대답은 실제 인터뷰에서 따오기도 했는데, 의미심장하다. 영화에서는 패스트푸드 시스템을 맥도날드가 발명한 것처럼 그렸지만 실제로는 훨씬 오래전에 등장했고, 슬라이더라는 작은 햄버거를 파는 화이트캐슬이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존조가 주연한 해롤드와 쿠마 시리즈 중에 화이트 캐슬에 가자라는 영화가 있지만, 포스터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런 영화가 아니다.
맥도날드가 성공하기 이전에도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은 많았고, 실제로 성공한 곳도 있지만 후발 주자인 맥도날드가 세계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레이 크록이 딕 맥도날드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그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치를 알아본 레이 크록은 영화 이름처럼 “파운더(창업자)“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