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나 와인처럼 그 나라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술은 많지만 칵테일은 어느어느 나라의 칵테일이라는 느낌이 약합니다. 블루 하와이 처럼 듣기만 해도 어디서 처음 만들었을지 알 것 같은 칵테일도 없진 않지만요.
오히려 젓지말고 흔들어서 만든 007의 보드카 마티니처럼 누군가의 사랑을 받은 칵테일은 딱하고 떠오르는 것이 드물지 않습니다, 요즘처럼 더운 날이면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쿠바의 칵테일 모히또가 생각납니다.
살아서 은성 무공훈장과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받은 그는 1939년에 쿠바에 정착해서1960년까지를 보냈습니다. 1954년에 비행기 사고로 몸이 불편해지자 신경쇠악 증세를 끌고가다 1961년에 아이다호에서 엽총으로 자살한 그의 최후를 생각하면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는 쿠바야 말로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자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랜만에 모히또를 마신 것은 홍대 앞의 로빈스 스퀘어라는 바였습니다. 하로군과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홍대에서 칵테일 마실일이 드물어 자주 찾지 못하는 것이 아쉬운 곳입니다.
글을 쓰지 않으면 낚시와 사냥(아프리카로 날아가서 사자를 잡는)를 업으로 삼았던 헤밍웨이의 쿠바시절에 시가와 술이 꼭 따라다녔습니다. 지금도 그의 이름을 딴 헤밍웨이 시리즈라는 시가가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내 모히또는 라 보데기타에서, 내 다이커리는 엘 플로리디타(My mojito in La Bodeg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
문호가 남긴 한 마디 덕분에 쿠바의 라 보데기타와 엘 플로리디타는 지금도 손님이 넘친다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즐겨 마셨던 칵테일은 모히또와 다이커리라고 전해집니다. 양쪽 모두 럼 베이스의 청량한 칵테일로 특히 엘 플로리디타는 빙수같은 프로즌 다이커리를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헤밍웨이가 엘 플로리디타의 바에 앉아서 다이커리를 시키면 단숨에 들이켜서 처음 주문 받을 때부터 2잔을 만들었다고 하니, 칵테일로 말술을 마셨으니 문호보다는 주호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그래도 주호가 사랑한 칵테일하면 다이커리보다는 모히또가 쪽이 아니었을까요? 모히또와 다이커리 모두 럼 베이스의 칵테일이지만 모히또가 더욱 쿠바스러운 것은 라임과 박하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유명한 칵테일이 그렇듯이 모히또의 이름의 유래도 여러가지가 있는데, 칵테일 바에 제일 어울리는 유래는 마법을 뜻하는 'mojo'에서 따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유래는 멋이 없으니 몰라도 됩니다.mojito를 모지토라고 읽지 않는 것은 쿠바에서는 스페인어를 쓰기 때문이죠.
유분이 나오게 나무 막대로 박하잎을 찓고 라임을 숭덩숭덩 썰어넣는 만드는 모습이 여느 칵테일과는 다른 모히또 만의 특징입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라 보데기타에서는 지금도 미리 라임과 박하잎을 썰어넣은 컵을 열 개쯤 늘어놓고 모히또 주문이 들어오면 럼과 소다수를 부어서 내놓는다고 합니다.
주재료는 럼과 소다수, 박하잎과 라임, 그리고 설탕이라는 모두 쿠바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 뿐입니다. 컵에 넣고 박하잎의 청량감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시원하고 달콤한 칵테일, 더운 쿠바라면 말술로 마셔도 이상할게 없지요.
그런데 문호가 사랑한 칵테일이라는 지명도를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선 모히또를 보기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라임과 생 박하잎을 구하기 어려워서가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지금은 라임도 생 박하잎도 조금 비싼 가격을 감수하면 손에 넣을 수 있지만, 얼마전까지는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라임대신 레몬을 써도 되겠지만 왠지 녹색의 라임을 쓰지 않으면 모히또의 분위기가 살지 않는다고 할까요.
대항해시대의 아이템으로 익숙한 '라임주스'는 괴혈병을 예방하는 비타민 C가 레몬의 절반 밖에 들어있지 않습니다만, 배들이 레몬주스대신 라임주스를 싣고 다닌 것은 라임쪽이 구하기 쉽고 가격이 쌌기 때문인데, 되려 구하기 힘들어서 모히또를 만들기 어렵다니......
생박하잎도 아마 뒷마당에 박하가 가득.....같은 상황이 아니라면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 리큐르 중에 박하 리큐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모히또에 박하 리큐르를 넣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역시 박하잎을 듬뿍듬뿍 넣어야 왠지 북미와 남미의 중간맛이 나고요 말하자면 탱고를 추는 피델 카스트로...같은 느낌이 날 것 같습니다. 모히또에서 라임과 박하잎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역시 박하잎입니다.
나무막자로 잘 찓어 박하향을 끌어내면 코에 와닿는 상쾌한 향이 목을 타고 흐를 모히또에 대한 기대감을 훌쩍 높혀줍니다.
보통 시가는 위스키와 매치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쿠바가 시가의 메카라는 것을 생각하면 모히또와 시가의 조합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라임과 생박하잎을 구하기 쉬어진 것은 모히또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쪽은 바카디 코리아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바와 클럽 등에서 모히또 파티등을 열어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인 덕분이기도 합니다. 박쥐 문양으로 유명한 바카디는 쿠바에서 태어난 럼 브랜드로 화이트 럼의 경우 모히또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화이트럼 자체가 칵테일의 베이스로 쓰기 위해서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로빈스 스퀘어의 모히또 잔부터가 바카디 이름이 붙어있더군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쿠바하면 노인과 바다가 떠오릅니다. 노인은 뼈만 남은 청새치를 잡고는 아프리카의 사자가 되는 꿈을 꾸었지만 노인과 바다를 집필하던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쓰다가 한 단락 마무리 지으면 타자기를 치던 손을 멈추고, 시가를 하나 빼어물고 라 보데기타에 가서 모히또를 들이키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