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프롬 엉클(2015) 60년대라 사랑스럽고 60년대라 망한 첩보영화
가이 리치 감독의 '맨 프롬 엉클' 재밌게 보긴 했지만 흥행을 죽 쑨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사전지식이 너무 필요한 작품이었습니다.
1960년대는 존 르 카레의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와 이언 플레밍의 '007 시리즈'가 공존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실제 스파이 활동에 가까운 것은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였지만 인기를 얻은 것은 '007 시리즈'였지요. 특히 007 시리즈는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지금까지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파이하면 007 제임스 본드가 대표적이던 시절이라 유사품도 많았는데, 엉클 시리즈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007의 아버지인 이언 플레밍이 제작에도 참여한 처음부터 'TV판 007'을 염두에 두고 찍은 작품이었습니다.
TV판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여러편의 영화도 나왔습니다. 0011 나폴레옹 솔로 시리즈는 60년대에 한국에서도 개봉을 했었고 70년대 '첩보원 0011'이라는 이름으로 TV방영도 했습니다.
그런데 2015년에 이 나폴레옹 솔로 시리즈를 리메이크 한다고?
가이 리치는 흥행 보증 수표라고 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스파이물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보러갔는데. 정말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옛날에 유명했던 시리즈가 리메이크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은데 '미션 임파시블', '본 아이덴티티'같은 영화가 대표적이겠죠 최근의 007시리즈도 성공적인 리메이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맨 프롬 엉클'은 전혀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60년대 스파이 영화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60년대를 재현해 버렸습니다. 저런 똥글뱅이 선그라스가 잘어울리는 여주인공은 처음봅니다.
60년대 모즈 패션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작품은 처음보네요. 60년대 본드 걸도 이렇게 대놓고 모즈 패션으로 등장한 적은 없는데. 이 작품에서는 무척 공을 들였습니다.
로마를 베스파로 달리는 장면이 되면 확신범이라고 봐야죠. 패션만 60년대로 채운 것이 아니라 디테일 하나하나가 모두 60년대 스타일입니다. 심지어 영화 화면도 필림으로 찍은 것 같이 살짝 붉은기가 돌도록 후처리를 했더군요.
이 완벽한 60년대가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명백한 한계입니다.
첩보원 영화가 인기있던 시절을 재현한다는 컨셉의 영화는 '맨 프롬 엉클'이 처음이 아닙니다. 유명한 작품으로 '오스틴 파워스'가 있고 얼마 전에 리메이크 된 OSS 117이 있지요. OSS 117은 프랑스의 007이라고 할 수 있는 옛날 작품인데 무성영화 '아티스트'로 유명한 미셸 아자나비슈스 감독이 찍은 영화입니다. 배경만 60년대가 아니라 영화 화면까지 60년대를 재현했다는 점에서 '맨 프롬 엉클'을 닮았습니다.
하지만 OSS117은 60년대 첩보물이 21세기에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 보여주는 그런 코미디 작품입니다. 오스틴 파워스도 화장실 개그를 걷어내면 60년대 첩보물의 허무맹랑함을 주제로 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맨 프롬 엉클은 진지한 첩보물입니다.
그 진지함이 맨 프롬 엉클의 가장 큰 단점입니다. 요즘은 007도 제이슨 본처럼 몸을 던져서 액션을 하는 세상인데 동그란 안테나를 세운 전파 탐지기로 도청장치를 찾는 이런 영화를 요즘 누가 재밌다고 보겠습니까. 미국에서 흥행을 죽쑨 것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에는 정중앙을 찌르는 작품이었습니다. 정교한 60년대 디테일에... 막... 진짜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네요. 하지만 스펙터 개봉 할 때까지 극장에 걸려있을지나 걱정입니다.
킹스맨에서 비밀기지 입구가 양복점인 것은 맨 프롬 엉클 시리즈의 오마주입니다. 원래 엉클이 하는 일이나 분위기가 킹스맨하고 닮았죠. 그래서 한국에서도 '킹스맨'하고 연관성을 살려 광고를 하는 막상 이 영화는 '엉클 비긴즈'라서 양복점이 입구인 비밀기지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마지막 장면에서 후속작을 암시하지만..... 이 흥행성적으로 후속작 보기는 어렵겠네요.
덧. 2015년에 아이맥스로 개봉한 영화 중에 아이맥스가 가장 무의미한 작품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