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을 세 개를 꼽으라면 스시와 라멘은 꼭 들어가고 나머지 한 자리를 두고 다른 일본 음식들이 다툴 정도로 라멘은 일본을 대표하는 음식이지만, 일본 사람들은 라멘을 중국요리라고 생각한다. 실제로는 중국에는 없는 중국요리, 우리의 짜장면하고 비슷한 음식이다.
라멘의 역사를 찾다 보면 일본에서 최초로 라멘을 먹은 사람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인 도쿠가와 미츠쿠니를 꼽는데, 막상 역사를 찾아보면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중국식 면요리를 먹었다는 기록뿐이고, 지금의 라멘 하고 같은 음식은 아니었다. 라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망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음식이다.
만주 개척을 위해 일본에서 넘어갔던 일본인들이 일제가 전쟁에서 패망하자 일본으로 귀국했고 그 숫자가 105만 명에 달했다. 대부분 재산도 기반을 중국과 조선에 두고 목숨만 겨우 건져서 돌아온 사람들이었지만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에 그들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그런 중국 귀국자 사이에서 중국에서 팔던 중화면 노점을 떠올린 사람들이 있었고, 중국식 국수 노점을 차리기 시작한 것이 라멘의 진정한 탄생에 가깝다.
태평양 전쟁 이후로 일본에 중국식 국수 노점이 늘어나기 시작한 더 큰 이유는 일본이 전쟁에서 미국에 졌기 때문이다. 2차 대전과 태평양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 본토에서 오히려 농산물의 대량생산에 돌입한 미국은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연이는 풍년으로 대량의 밀가루를 처치 곤란해하고 있었다. 반대로 해방된 대한민국과 전쟁에서 패배한 일본에서는 극심한 식량부족을 겪고 있었다. 미국은 잉여 농산물을 소비하며 대한민국과 일본을 안정시키기 위한 일석이조의 수단으로 밀가루 원조를 시작하게 된다.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밀은 습도가 높은 일본에서 기르기에는 까다로운 작물이었다. 특히 수확시기와 장마철이 겹치기 때문에 밀가루는 구하기 쉽지 않은 귀한 식재료였지만 전쟁이 끝나고 일본의 원조 물자로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제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가 되었다. 그렇게 밀가루를 손에 넣은 중국 귀국자들이 중국에서 보았던 국수 노점을 흉내내기 시작했고, 그 국수 노점이 지금의 라멘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만약 라멘의 역사를 묻는다면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아니라 1945년 일본 패망과 미국의 도움으로 태어난 요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