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영화 '암살'이 표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가 그 대상인데 소설을 쓴 최종림 씨는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에서 저격조를 만들어 엄선된 요원들을 조선으로 보내는 구성이 내 소설 설정과 같다”며 “여주인공을 내세워 일본 요인과 친일파를 암살해 가는 내용도 영화 속에서 여주인공 이름이 안옥윤(전지현)으로 바뀌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코리안 메모리즈'의 내용을 살펴보면 '암살'하고 전혀 닮지 않은 소설입니다. 무엇보다 코리안 메모리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광복군의 투쟁으로 스스로 광복을 쟁취한다는 내용의 가상역사 소설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광복을 쟁취하는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와 결국 반민특위까지 질질 끌고 가는 영화 '암살'이 표절했다고 하니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최종림 씨는 코리안 메모리즈가 '김구, 임시정부 요인 결정에 의하여 저격 암살조 조직 구성 및 조선 파견'으로 암살과 같다고 주장하는데, 백범 김구 선생의 지시로 의거를 일으킨 것은 허구가 아닌 역사적 사실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쓰신 '도왜실기'는 윤봉길 의거, 이봉창 의거, 유상근, 최흥식 의거 미수, 유진식, 이덕주 의거 미수에 대한 보고서 형식으로 쓰여진 책인데, 이 책은 의사들의 의거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시를 받은 일제에 대한 투쟁 임을 밝히는 책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표절'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암살에서 의열단을 조직한 약산 김원봉 선생이 비중 있게 등장합니다. 그래서 영화 암살은 의열단의 이야기를 다룬 장동건 주연의 영화 아나키스트와 많이 닮았습니다. 하지만 독립 운동과 의거를 영화의 소재로 삼는다면 닮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법이죠.
'코리안 메모리즈'의 저자 최종림 씨는 영화 암살과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가 겹치는 공간으로 '종로 경찰서'를 들었습니다. 일제 시대 경성을 다루면서 종로 경찰서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할 것 같습니다.
코리아 메모리즈에서 친일파와 일본 요인 다수 저격 장소로 등장하는 '일본 천황 생일날 총독부 연회 파티장'이 영화 암살의 '결혼식 연회장'과 겹치고. 요인 납치와 암살 장소로 소설에 등장하는 '한적한 소나무 숲 속 길'과 영화의 '주유소'가 겹친다고 주장하십니다. 심지어 소설과 영화의 유사 등장인물로 백범 김구 선생을 꼽는데 말문이 막힙니다.
인물의 유사성이라고 하면 여자 저격수인 영화 암살의 '안옥윤'과 소설에 등장하는 '황보린'이 있습니다. 아마 소송에서도 가장 큰 쟁점이 될 부분이지만 출판사의 인물 소개를 옮겨보면.
황보린 : 백범의 비서로 있다가 특수저격대 임무를 띠고 김현두와 함께 국내에 침투해 거사를 벌이지만 독립자금 운반을 위해 김현두와 별개의 임무를 수행하게 됨으로써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전사했다고 믿게 되는 비극의 실마리가 된다. 나라를 되찾으려 전장에 나선 젊은이들 사이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렇지만 황보린은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되고·····
황보린이라는 캐릭터가 친일파의 딸이라던가 쌍둥이라면 모를까 출판사의 인물 소개만 보고는 안옥윤과 황보린의 유사점을 찾기 쉽지 않습니다. 결국 여자 저격수라는 인물 설정만이 남는데, 독립군 중에 여성 저격수가 없을지는 모르지만 현실에서 여성 저격수 자체는 낯설지 않습니다. 소련은 2차 대전 당시 다수의 여성 저격병을 운용했는데 최전선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활약했던 유일한 병과가 저격병이었으니까요.
최종림 씨는 영화 암살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과 소설 코리안 메모리즈의 심산 김창숙 선생을 조선에 암살 침투조로 보내기 위해 김구 선생과 상의하는 '같은 위치의 인물'이라고 하셨는데, 약산 김원봉 선생은 의열단을 조직한 무장투쟁을 주도한 인물이었지만 심산 김창숙 선생은 유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빈말로도 약산 김원봉 선생과 심산 김창숙 선생이 닮았다고는 못하겠네요.
우연이 아니라 진위를 밝히기 위해서 오래전에 절판된 '코리안 메모리즈'는 이번에 다시 복간되었습니다. 복간에 대한 평은 노코멘트입니다.
'코리안 메모리즈'라는 제목과 역사를 바꾼다는 내용을 듣고 제일 먼저 떠오른 영화는 암살이 아니라 이거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