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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날 Sep 15. 2021

별미진미 (20) 석곡「돼지고기」

시루에 쪄 맛-영양가 보존 食性(식성)따라 먹는법도 갖가지

전남 동부지방 일대의 돼지고기는 옛날부터 알아주는 고기다.

돼지가 1백근 정도 되었을때(4개월)잡기 때문에 비계가 많지않아 연하고 서근서근한 것이 특징.조리법도 다른곳에서 솥에다 물을 부어 삶지만 이곳에선 시루에 다넣고 김으로 찌기 때문에 돼지의 영양가와 맛이 그대로 보존된다.

먹는 방법도 갖가지. 깨소금 찍어먹기, 김치에 휘말아 먹기, 초장 찍어먹기 등 식성에 따라 제각기 다른맛을 즐겨 볼수 있다.

광주-여수,광주-고흥 지방을 왕래하는 버스들은 石谷(석곡)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30분씩 정차하여 버스 손님 들에게 돼지고기 먹는 편의를 제공해준다.

전라남도는 음식값이 싸기로도 유명하다. 2백원이면 한정식이 상다리가 부러지게 나오는데 石谷(석곡)에선 2백원짜리 백반상에 돼지고기 요리가 두접시 이상은 오르게 마련. 양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10월 말에 호남고속도로가 개통되면 石谷(석곡) 돼지고기는 더욱 유명해질 것이기 때문에 이지방에선 좀 더 훌륭한 조리법을 연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光州(광주)=梁會彩(양회채) 기자> 1973년 8월 18일자 조선일보.


1970년대 초의 한국 음식 문화를 알 수 있는 별미진미를 정리하다 석곡 돼지고기 요리에 흥미가 생겼다. 별미진미에 소개되는 음식들은 지금은 찾아 보기 힘들어도 나름 유명한 음식이기 마련인데 석곡의 돼지고기 요리는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곡성군 석곡리는 별미진미에 소개된 지역 중에서 가장 좁은 지역인데 그 지역을 콕 찍어서 설명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석곡 돼지고기 요리에 대한 자료를 찾다가 석곡 돼지고기 요리의 흥망성쇠에 한국 근대사가 다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별미진미 칼럼에도 나오듯 광주-여수, 광주-고흥 지방을 왕래하는 버스들이 석곡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30분씩 정차하여 손님 들에게 돼지고기 먹는 편의를 제공한다는 것이 바로 석곡 돼지고기 요리의 비밀이었다.

곡성군 석곡면은 옛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다. 순천까지 140리, 광주까지 140리 딱 중간에 위치한 석곡은 순천, 남원, 구례, 광주로 이어진 길 때문에 옛부터 사람들이 모여 장이 열렸다. 농사 짓기 여의치 않았던 석곡 주민들은 보부상, 거간, 짐바리꾼 등 장터 장꾼이 되거나 장터에서 주막을 열었다. 석곡을 대표하는 식당인 순천관이 마당집이라고 부르던 시절에는 장날에 돼지를 두 마리씩 잡고 밥을 2가마씩 해서 1000밥상을 차렸다고 할 정도였다.

석곡 돼지고기 요리의 특징은 칼럼에도 나오듯 4개월 만 키워 100kg 정도 일때 잡는 어린 돼지의 부드러운 육질이다. 실은 사료 구하기 어려운 석곡에서 적은 사료로 돼지를 키우기 위한 편법의 결과였지만 이 부드러운 육질의 돼지고기는 석곡의 명물이 되었다.

시대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차를 타고 다니게 되면서도 교통의 중심이라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석곡을 거쳐가는 화물차와 버스가 정차하면서 석곡의 돼지고기 요리는 더 유명해졌다. 광주에서 순천,여수로 오가는 버스가 딱 중간에 쉬어가기 좋은 위치였기 때문에 5,60곳이었던 석곡의 돼지고기 식당은 별미진미에 소개되던 1973년 8월 시점에서는 최전성기를 맞고 바로 몰락하게 된다.

몰락의 원인은 별미진미 칼럼에 나오는 '호남 고속도로 개통', 호남 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석곡 돼지고기 요리가 더 유명해 질 것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고속도로로 인해 광주와 순천,여수를 1시간 30분 만에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석곡에 머물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1981년 1월 30일자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석곡을 대표하던 70년 전통의 돼지고기 식당인 '순천관'이 문을 닫고 6,50곳이었던 식당도 5,6곳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호남 고속도로 개통이 1973년 10월 이었으니 10년도 걸리지 않은 것이다. 교통으로 흥한 석곡 돼지고기 요리는 교통의 발달로 인해 몰락하게 된 것이다.

1981년 기사에서 석곡 돼지고기 요리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소개되어 있는데, 별난 방식으로 키우는 '뒷간 돼지'라는 언급이 있다. 말하자면 똥돼지였던 모양인데, 당국에서 위생문제로 '뒷간돼지'의 사육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그 맛을 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언급이 있다.

1973년의 별미진미 칼럼과 1981년의 중앙일보 기사의 돼지고기 요리 묘사에도 큰 차이가 있는데, 1973년에는 찜 요리가 석곡 돼지고기 요리의 대표 메뉴였다면 1981년에는 고추장 숯불구이가 대표 메뉴로 등장한다. 고추장 숯불구이가 1970년대 초 이후에 대중화 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곡성군 석곡면이 지역 재생사업을 하면서 테마를 '석곡에서 살면 돼지 Reborn 1973'로 정했는데, 석곡이 1973년에 호남 고속도로 개통으로 얼마나 큰 것을 잃어버렸는지 실감이 난다. 지역 재생사업의 테마 중 하나로 한 때 제주도 흑돼지보다 유명했던 석곡 흑돼지 문화를 되살리는 것이 포함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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