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인트리 Jun 29. 2024

우리 회사 대표님을 덕질합니다.

직원이 그럴 수 있어?

한때 가수를 덕질한 적이 있다. 난생처음 내 가족이 아닌 남의 이름을 듣고 설레고  어딘가에 그의 이름이 나와있는지 찾아서 챙겼다. 컴맹이던 나는  팬클럽 가입을 위해서 컴퓨터 사용 공부를 했다. 매일 음원을 듣기도 하고 들어주고 싶기도 해서  스트리밍을 배웠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음악을 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요. 밥이 나오고 떡이 나오는 일도 아닌 덕질이라는 일에 노력과 시간을 바쳤다. 참으로 자발적 노력이었다.


집안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내 가수의 노래를 틀어 놓았다. 질린다고 식구들이 싫어하면 음소거로 계속 음악이 흐르게 했다. 난생처음 이어폰을 구입해서 길을 다니면서도 들었다. 길에서 음악 듣고 다니면 주변을 못 본다고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던 내가 더더욱 열심히 이어폰을 찾아 듣고 다녔다.  나이 먹으니 가사가 외워지지 않아서 고등학교 영어시험 이후로 몇십 년 만에 새삼스럽게 깜지공부를 했다.  젊어서 이런 열정으로 공부를 했더라면 말로만 듣던 명문대를 거뜬히 갔을 것 같았다. 조금만 일찍 이런 열정이 있었다면 무엇이라도  큰 획을 긋는 일을 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소유욕도 생겨났다.  음반과 굿즈를 하나라도 더 가지고 있고 싶어서 딸들 몰래 슬금슬금 구입했다. 쌓여있는 굿즈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면 내 가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입술이 근질거렸다. 결국 이 노래 한 번만 들어봐 하면서 말을 뱉고야 말았다. 나이 60이 다 되어가면서  '뭔 일이랴' 속으로 나를 나무라면서도 멈춰지지 않는 덕질이었다.



취직을 하고 직장을 다니다 보니 시간이 없어서 덕질하던 가수에게 소홀해졌다. 스트리밍 하던  곡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만큼 아는 곡도 줄어들었다. 당신의 스타라고 알고리즘이 물어다 주던 정보도 점점 안 보게 되었다. 일이 너무 늦게 끝났다. 일이 항상 많았다. 아니 일을 완벽하게 하려는 욕심이 많았다. 집에서도 일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동료들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시키는 일과 정해진 일만 하면 되지 생산이 무슨 일을 배우냐고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일을 완벽하게 할 줄 알아야 마음이 편했다. 누구보다 잘해서 느긋하게 가르쳐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직장 다닐 맛이 났다.  그래야 내 일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느낌이 들었다. 일에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고 재밌게 일을 하고 싶은 과정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일 공부를 했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일을 어느 정도  정복하고 나니 내 일의 끝에 대표님이 있었다. 문득 나 자신을 위해서 일을 하지만 존경하는 대표를 위해서도 무슨 일이든 하고 싶어졌다. 회사를 위해 고뇌하는 대표님이 자랑스러웠다. 어떤 질문이든 진중하고 정중하게 대답하는 자세가 무한 신뢰를 주었다. 대표님이  반제품 걱정을 하면 그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해 주고 싶었고, 생산공정 걱정을 하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에 안달을 했다. 대표님이 걱정하는 자동화를 이뤄 보려고 기계로 작업하는 곳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멀리 있는 노포를 찾아 구경을 갔다. 직장에 도움 되는 일이라면 검색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뒤지고 다녔다.  제조에 관해서 공부하고 자동화에 대해서 공부했다. 보는 책들이 예전에는 감성적 에세이나 소설이었는데 요즘은  스마트팩토리에 관련된 책들이다.



새로운 덕질이 시작된 건가. 그런데 이번 덕질은 조금 이상하다. 연예인을 덕질하던 마음과는 다른 존경이 배경이었다.  마음 가득 무엇인가를 내 안에 채워 놓고 싶어지는 덕질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지식을 쌓아놓고만 싶고 , 자료조사를 많이 해서 지식들을 모아 놓고만 싶다. 앞산의 지저귀는 새들처럼 떠들고 싶은 게 아니라 보름달처럼 비춰주고만 싶다. 나는 당신을 덕질하고 있노라고 표시를 내고 싶은 게 아니라 조용조용 실력을 채워놓고 싶다. 언제든 필요할 때  쓰임당해주고 싶다. 언제든 나를 써먹어라 준비해놓고 싶다.


나는 대표인 그가 힘들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대표인 그가 너무 어려운 길을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는 대표인 그가 행복하기만을 바란다. 나는 대표인 그가 너무 멋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대표인 그가  건강하고 분명하게 우리 회사를 차근차근 성장시켜 주기를 바란다.


시간이 나면 나도 모르게 검색창에 두들기는 이름이 있다. "이운성" 우리 회사 대표이름이다. 기사가 있으면 기사를 캡처해서 모으고 동영상이 있으면 나만 보는게 아니라 원망을 들으면서 가족들에게도 뿌린다. 우리 대표는  아직은 기사가 많지 않다. 간신히  모은 기사와 인터뷰에서 대표님은 ' 1조 회사를 만들어 구성원과 함께 성장하고 나누는 조직사회, 올해의 목표 연매출 400억, 고객이 감동하는 건강한 샐러드 만들기, '라는 내용을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다. 생산직일을 하고 있는 우리는 대표가 무슨 생각으로 회사를 꾸려가고 있는지 몰라도 된다. 그저 우리 회사가 직원들 월급이나 잘 주고 매년 임금이나 올려주고 회사 복지나 좋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끝날수도 있다. 그런데 일개 직원인 나는 대표님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어서 안달을 한다. 몇 안 되는 기사와 인터뷰를 화면에 펼쳐놓고 자꾸만 곱씹어 읽어보는 이유이다.


우리 집 모니터 바탕화면에 깔린 우리 회사 대표의 영상 모음집을 본  가족들이 내게 말한다.

"대표를 존경한다더니 이제는  대표를 덕질하는가?" 남편의 한마디에 이어 아이들은 

"엄마, 어떻게 하면 다니는 회사의 대표를 덕질해?"

" 하다 하다 대표를 덕질하는 사람은 처음 봐요"


나는 애원한다.

" 바탕화면에서  우리 대표님 영상 지우지 마라 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