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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Mar 15. 2024

칼 갈아요.

진짜~

연락처에서 전화번호를 뒤져봐도 어디 있는지 찾기가 어렵다. 내가 뭐라고 저장을 해뒀을까 고민해 봐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할 수 없이 회사에 보관하고 있는 명함 목록을 찾아서 전화를 드렸다.     

“사장님 여기 0000입니다. 내일 칼 좀 갈러 와 주세요.”     

우리 회사는 식품 회사여서 주방 칼을 사용하는 일이 많다. 칼 사용이 많으니 칼 관리도 주기적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칼이 무뎌지면 이바리가 발생하고 그 이바리는 자칫 이물이 될 수도 있어서 칼 관리에 예민하다. 재사용이 불가한 칼들은 폐기하고, 사용이 가능하지만 무뎌진 칼들은 모았다가 숯돌이나 연마기로 갈아준다. 문제는 칼을 갈아주러 오는 분을  뭐라고 저장을 해야 할지 나는 그게 고민이었다.

    

 광고스티커에도 칼갈이 아저씨라고 되어있다. 그렇게 하는 게 맞나 싶다가도 무언가 미안한 호칭이라서 그렇게는 저장을 못하고 있었다. 하는 일 만으로는 저장을 해도 될 것 같은데 일을 하시는 사장님을 생각하면 그렇게는 입력을 못하겠다는 죄송함이 있었다. 결국 칼갈이라는 이름은 무언가 석연치 않고 마땅한 네이밍을 짓지도 못하여 연락처에 저장을 해놓지 못했다. 그나마 칼을 가는 장소가 회사 외부 주차장이어서 추운 겨울 3 개월을 건너뛰었다. 내 짐작으로는 영하의 추위에 밖에서 칼을 간다는 게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칼을 못갈은 공백이 길어서 갈아야 할 칼들이 많아졌고 새 칼은 재고가 소진되었다. 할 수 없이 아직 쌀쌀해도 칼 가는 것을 미룰 수는 없었다.  

    

사장님은 약속했던 시간에 맞춰서 회사로 오셨다. 무뎌진 칼들이 40여 개가 넘었다. 칼을 갈러 오신 사장님은 쌓인 칼을 보고 놀라며 말한다.

"왜 안 부르시나 했어요?"

"추운 겨울 지나고 부탁하려고 했더니 이렇게 쌓였네요. 너무 많아서 힘들까 봐 죄송해요." 내 말에 사장님은 껄껄 웃으시며

“저야 돈 벌어서 좋지요. 겨울에도 괜찮아요. 자주 부르세요." 한다. 나는

"그런데 다른 분들은 사장님을 뭐라고 부르세요? 저는 전화번호부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저장을 못하고 있어요."

"제가 드린 스티커에 칼갈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저장하세요. “사장님은 쿨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동안 연락처에 저장을 할 때 이름 뒤에 '님'이나 직함을 붙여서 저장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 같은 경우는 명함에 이름도 없이 칼갈이라고 되어 있으니 필요에 의해 전화를 하기는 할 텐데  그렇게 저장하기는 싫었다.

"에이~ 그게 뭐예요. 칼갈이라고 못 부르겠어서 저장을 못했어요. 차라리 사장님 명함을 바꾸세요. 칼도사! 어때요?" 내 말에 사장님은 또 껄껄 웃으신다.

"좋네요. 그럼 그렇게 저장하세요. 칼 도사."

칼도사님은  정성껏 칼을 갈아 주셨고 나는 그날로 기분 좋게 '칼 도사님'이라고 연락처에 저장을 했다.     



칼 도사님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니  얼마 전 일이 생각났다. 나에게 갑자기 명단 작성을 해야 할 일이 생겼었다. 출입자 명단이었다. 명단 작성을 하던 친구가 퇴직을 해서 방치되고 있던 일 중의 하나였다. 항상 그 친구가 했던 터라 나는 어떻게 하는지 관심도 없었고 주의 깊게 살펴보지도 않았었다. 막상 명단을 작성하려고 예전의 자료를 보게 되었을 때, 퇴직하고 없는 친구의 값진 마음이 자료에서 보였다. '이름'이라고 표기해야 할 곳에 모두 '성함'이라고 되어 있었다. 대부분 '성명'이나 '이름'으로 구분을 하는데 그 친구는 모두 '성함'이라고 구분을 해 놓았다.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붙이는 것이어서 사람과 사물이 다 함께 쓸 수 있다. 성명은 그대로 성과 명이라서 사람에게만 쓸 수 있다. 성함은 성명을 그대로 높여주는 말이다. 나도 잠시 망설여졌다. 공식 자료인데, 성함이라고 해야 하는 게 맞는지 빈칸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성명'으로 쓰고 말았다. 나보다 직책이 높은 분도 있고 나이 많은 분도 있기는 하지만 공식 자료이니 많이 망설이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그 칸에 '성함'이라고 채우던지 '성명'이라고 썼던지 '이름이라고 기록했던지 간에  아무도 관심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칸을 채워 써야 하는 나는 고민이 되었다. '성함'이라고 쓴 그 젊은 친구의 고뇌가 헤아려졌다. 말은 뱉으면 그만인데 기록은 남아 있으니 단어하나의 선택에도 신중해야 했다. 전화번호부에 저장을 하는 것도 사람을 저장하는 것이라서 차마 칼갈이라고 하지 못한 내 마음과 비슷한 고뇌를 했으리라 짐작했다. 퇴직 후에 자신이 남긴 서류를 보고 나처럼 고뇌하면서 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그 친구 인들 생각이나 했겠는가. 오늘은 전화번호부 속에서 퇴직한 그 친구를 찾아내 안부 문자를 보내야겠다. '잘 지내고 계시는지. 아직도 우리에게 자신의 아름다운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음을 알고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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