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인트리 Aug 09. 2024

우연한 용기

시골 소녀의 서울 상경기


그날은 겨울이었다. 더 설명이 필요 없이 시골의 겨울은 무척 추웠다. 중3 여중생들이 교복 위에 입는 멋들어진 코트하나 장만할 형편이 못되어서 목도리 하나로 버티던 시절이었다. 나는 시내 아이들이 끼고 있던 예쁜 손가락장갑을 부러워하면서 엄마가 떠주신 벙어리장갑으로 추위에게 들키지 않으려 손을 감추고 다녔다. 어린 시절 나는 겨울마다 소설에 빠졌다. 한국문학 전집 스무 권을 빌려다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워 읽어내고, 학교 도서관 소설책을  책가방에 넣을 수 있을 만큼 빌려오곤 했다. 교과서보다 소설책이 많이 들어있어서 찢어질 듯 무거운 내 책가방을 보고, 어머니는 공부 열심히 하느라 책이 많은 줄로 착각하셔서 나는 항상 미안함을 숨겨야 했다. 겨울 방학이 다가오려던 어느 날, 소설 속에 빠져서 지내던 중3 꼬맹이 나는 갑자기 기차가 타고 싶어졌다. 기차를 타면 진짜  멋진 세상으로 데려다줄 것인지 가보고 싶었다.  아무 도시라도 좋았다.




어머니의 장바구니 심부름을 하면서  몇 백 원씩 돈을 모았다. 목표는 왕복 완행열차 값이었다. 고등어 한 마리에도 조금 비쌌다고 뻥을 치고 고깃간의 고기들도 예상보다 비쌌다고 뻥을 쳤다. 어머니는 어차피 바빠서 읍내까지 값을 확인하러 가실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지능적 거짓말을 했다. 읍내까지 시오리길, 하굣길에 장을 봐오라고 어머니는 곧잘 심부름을 시켰다. 장을 보아야 할  돈을 받고 나는 생선가게 앞의 고양이가 되어서 틈틈이 그 돈을 노리고 있었다.




드디어 원하던 돈이 모였다. 부모님께 들키지 않게 완행열차를 어떻게 타 볼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아랫동네 사는 절친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 오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외박은 안된다고 혼을 내시면서도 마지못해 허락을 해 주셨다. 시골 동네야 위 아랫동네 할 것 없이 숟가락 몇 개인지도 아는 사이였다. 나에게는 실행의 시간이 다가왔다.




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밤 열차표를 구했다. 열차는 밤새 달려서 다음날 새벽에 서울역에 도착하는 완행열차였다. 나는 중학생이 아닌 척 스무 살이던 고모의 연두색 코트를 훔쳐 입었다. 열차를 기다리던  내 눈은 긴장 속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그 당시 시골에서 듣기로는 서울에 가면 눈뜨고 코를 베어 간다고 했다. 코를 뺏기지 않으려 목도리로 얼굴을 감싸고 기대하던 완행열차에 올랐다. 사람은 많고 입석이었다. 출입문쪽에 자리를 잡고 절대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서 있으리라 다짐하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어린애가 기차를 타고 있으니 걱정하는 어른들이 자꾸 어디 가냐 물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하는 순간 코를 베어 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었다. 철커덕, 철커덕 기차소리에만 집중했다.




꼿꼿하게 선채로 새벽녘 서울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덜덜 떨면서 바로 다시 내려갈 기차표를 샀다.  누가 질문이라도 할까 봐 두어 시간 뒤에 오는 하행열차를 입을 앙다물고 기다렸다. 사람들이 무서웠다. 어른들은 더 무서웠다. 묻는 말에 대답을 하면 어딘가로 데려갈 것만 같았다. 책 속에 보이던 도시의 환상은 없었다. 낯설고 크고 무서운 건물, 무서운 어른들만 있었다.  기다리던 기차가 왔고 쏜살같이 기차에 올랐다.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눈 만 빼꼼히 내놓은 채 대 여섯 시간을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역에 내렸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나는 고모의 연두색 코트를 얼른 제자리에 두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저녁상에 앉았다. 저녁을 먹는 동안 안도의 편안함이 허기로 몰려와서 그날 집안의 모든 음식을 먹어 치운 것 같다. 집이 주는 배부름과 편안함을 만끽했다. 천정을 바라보고 방바닥에 누운 채 따끈한 아랫목이 주는 행복이 몸안을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그리고 조용히 낯선 외지를 다녀온 두려움이 뿌듯함으로 바뀌는 마음의 변화를 서서히 느끼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여행이었다. 하지만 덜덜 떨면서 다녀온 완행열차의 여행이 나에게 서서히 배짱이라는 힘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내 비밀스러운 여행은 그렇게 내 안에 우연한 용기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진급을 했다. 이번에는 책임이 더 막중한 자리다. 두려움은 없다. 회사와 동료들을 위해서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은 있다. 무엇을 줄까 고민하다 보니  45년 전 깡촌의 중3이 혼자 뿌듯해하던  내 안의 뿌리 깊은 용기를 모두에게도 나눠 주고 싶다. 내 안의 뿌리 깊은 용기는 은근한 배짱인 것 같다. 배짱은 새로운 일을 두렵지 않게 했다. 새로운 상황을 무섭지 않게 했다. 견뎌보고 배우게 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줬고 자존감을 단단하게 해 줬다.  내가 처음 일을 배울 때 생산현장이 어려웠지만 일단 배짱으로 부딪쳤다. 동료들에게도 그런 기운을 나눠주고 싶다. 우리 현장의 일을 자신 있게 할 수 있도록, 그래서 당당해지도록 만들어주고 싶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을 공유하면서 일하는 그런 직장을 만들어가고 싶다.  동료 한 사람이 너무 이상을 좇는다고 나를 나무란다. 그래도 계급장을 받고 나니  나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다짐이 생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