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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Sep 08. 2024

고얀 참깨!! 고소할 테다.

지금은 참깨를 느낄 때


기력이 달리는 어머니는 참깨가 노릇이 익어 간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곡식의 수확은 다 때 가 있는 법이여. 당장 베어야 쓰겄는디~~"

오 남매가 나섰다. 어머니 참깨 수확은 우리가 해 드리자. 어머니의 교육이 시작되었다.

"큰 아야, 참깨는 가만가만, 어째도 가만가만 베어야 하능겨. 조금만 드세게 나가면 한 톨도 안 남고 모두 떨어져 버려."

참깨를 베러 가려고 준비를 하는 동안 어머니의 교육은 계속되었다.

"어찌도 가만가만해야 된다잉~~"

어머니는 '가만가만'이란 단어를 수십 번 말씀하셨다. 오 남매는 독수리 오 형제처럼 낫을 들고 경운기에 탑승했다.

막내 동생이 프로농부처럼 몰아대는 경운기는 시원하게 논밭을 가르며 달린다. 처서 지난 바람이 시원하다. 들 길을 쿵쾅거리며 달리는 경운기의 쇳바닥에 엉덩이를 맡기고  적당한 아픔을 즐긴다.


참깨밭에 도착하여 우리는 어머니의 '가만가만'을 실감했다. 잘 익은 참깨는 스치기만 해도 스르륵 쏟아져 버렸다. 꼬투리가 노르스름하게 익은 참깨들을 베기 시작했다. 한 그루씩 조심스레 베어도 베어지는 충격으로 참깨가 몇 알씩은 떨어져 나갔다.  참깨를 벨 때는 뿌리를 발로 밟고 충격을 최소화해야 했다.  참깨밭고랑을 지날 때는 숨을 들이마셔서 배를 집어넣고  참깨를 스칠까 봐 조심조심 다녀야 했다. 어느 해인가 참깨를 같이 수확하던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다.

"참깨는 익으면 익을수록 입을 벌리고 있어. '농부 니들이 빨리 안 오면 다 뱉어 버릴거여' 하믄서 배짱이 이만저만이 아녀.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지켜보면서 익는 대로 수확해야 참깨 농사가 마무리 되는겨." 그때도 지금도  어이없게 맞는 말이라 반박할  말이 없다. 당당하고 완벽하면 배짱을 부려도 되는 것일까? 무더운 한여름을 견디고 한 톨한 톨 정성스레 여물었으면서 이리도 아까운 것을 쏟아버리다니, 조금만 기다려 주면 안 되는 것이고? 고얀 참깨. 고소하면 전부인가? 참을성은 눈곱만큼도 없는 참깨가 얄밉다. 기다리지 않고 자꾸 쏟아버리면 정말 고소할 테다.


그만 벌어지기



 생산직장에 많은 사람들은 몸으로 부대끼며 일을 한다. 옆사람보다 조금 힘이 드는 일을 하기도 하고 옆사람보다 편한 일을 하기도 한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옆사람이 힘들어하면 너나없이 도와주려고 했다. 무엇이라도 챙겨 주려고 하고 말이라도 다독 거려주곤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참을성이 없다. 내가 왜 참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일은 흔하디 흔한 감정 표현이다. 공간침해에 대한 스트레스도 상당하다. 조금만 스쳐서 몸이 부딪쳐도 짜증을 낸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한 라인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특성상 통솔과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이를 반박하고 부정하는 사람도 많다. 한마디로 참깨보다 더 참을성이 없다. 참깨는 잘 익힌 당당함이라도 있지만 사람들은 일에 대한 당당한 실력이 갖춰지기도 전에 자신들이 요구할 것을  먼저 내세운다. 시대가 변하면서 현장에서의 작업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아는 게 많아져서 관리는 더더욱 어렵다. 관리는 점점 인정과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조직적 시스템에 의존하게 된다. 방향은 맞는 것 같은데 인정은 아쉽다.


조금 힘든 일에 배정을 하면 '같은 시급을 받으면서 왜 이 일을 내가 해야 하냐'라고 거부하는 사례는 흔하다. 옆사람의 휴식시간이 5분이라도 더 지체되면 자신도 그만큼 쉬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관리자가 생각보다 큰 목소리로 작업지시를 하면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줬다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한다. 그놈의 '고소'라는 단어!! 단체생활에서 지켜야 할 개인의 명예가 그렇게 많은지 예전에는 몰랐다. 어쩌다  지시가 급해서 반말이라도 하면  인격모독이라고 노무팀에 신고를 한다. 스케줄 근무라서 공휴일에만 쉴 수 없는 환경임에도 굳이 공휴일에만 쉬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사람도 있다. 휴무는 필요한 날을 서로서로 양보하면서 맞춰가야 하는데 양보가 없어서 퇴사를 하겠다고 한다. 진짜 눈곱만큼만 양보하고 콩알만큼만 배려하고, 손해 보면 아무 문제없을 내용들이다. 하지만 손해라도 보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


그래도 현장이 버티는 힘은  다수의 사람들이 풍기는 선한 영향력 때문이다. 힘이 들수록 배려하는 사람이 많다. 어려울수록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다. 안타까운 일일수록 감싸주려는 사람이 많다. 작은 박스하나를 옮기려고 해도 도와주려는 사람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래서 전체가 가진 힘은 크다. 불가능은 거의 없다. 단합하여 납기시간을 맞추고 생산을 마무리할 때마다 우리가 가진 스스로의 능력에 감동하는 날도 많다. 이게 생산의 매력이다. 이게 생산의 커다란 재미다. 그놈의 나쁜 단어 '고소'만 없다면 항상 현장에는 진짜 고소함과 통쾌함이 넘쳐난다. 우리 직장에도 참깨를 한 됫박 뿌려서 진짜로 고소하게 만들어야 하나?  조금만 양보하면 진짜 고소해지는데, 조금만 참아주면 진짜로 고소해지는데~~.  어머니의 참깨 밭은 고소함 천지인데 이 고소함이 아깝다.  무더위 속에서도 코끝을 간지럽히는 이 고소를 우리 현장으로 옮겨갈 방법은 없는겐가? 


참깨야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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