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운 인재
3주 전에 신입직원 한 분이 입사를 했습니다. 인사팀에서 연락을 받고 반가운 마음으로 인수인계를 하러 내려갔어요. 귀한 신입이 오셨으니 무조건 반기려던 내 마음은 현장 입구에 서 계시는 신입 직원을 보고 순간 멈칫했습니다. 우리 회사의 가장 작은 사이즈의 위생복을 입었어도 위생복이 너무 커서 상의를 바지에 넣고 하의는 밑단을 몇 번 접어 입고 있었어요. "어서 오세요" 내 인사말에 개미만큼 희미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데 지켜보는 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너무나 작고 여리고 가냘픈 체구를 가진 분이라서 일을 제대로 할수 있을 것인지.
위생절차를 설명하고 현장 입실을 시키면서 나는 계속 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했어요. 30g짜리 스쿱이나 제대로 들고 일을 할 수 있을지, 혹은 하루종일 8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하는데 종일 버틸 체력은 있는 건지, 도대체가 인사팀은 무엇을 보고 채용을 하는 건지 한심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의 노동력은 일단 힘이 있어야 하고 , 체력이 있어야 하고 , 생산 벨트 위에서 작업을 하려면 기본적인 키가 있어야 하는데 신입분의 외모에는 그런 조건이 한 가지도 맞는 게 없었어요. 가녀린 외모는 안전에도 걱정이 들게 했습니다.
신입 직원을 현장에 맡기고 그날따라 검토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작업장을 둘러볼 시간이 없었어요.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현장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습니다. 아침에 배정한 신입은 어디에서 울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앞섰어요. 무조건 그분을 찾아 직진했습니다. 현장에 백여분이 같은 옷을 입고 눈만 보이는 상황이라 눈으로 찾기를 포기하고 배정된 라인의 위치를 찾아갔어요.
신입이 있는 라인을 따라 올라가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제품이 잘 나오고 있었습니다. 원래 신입이 한 명 들어갔을 때. 더구나 일을 못하는 신입이 들어갔을 때 라인의 생산 속도는 조금 떨어지거든요. 토핑의 위치가 바뀌거나 중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수정을 하느라 제품의 퀄리티도 살짝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작업 설명을 해 주느라 필요 이상의 말들이 오가기도 해요.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생산이 순탄해 보였습니다. 나는 (그사이를 못 버티고 퇴실을 하신 겐가?) 의심을 하고 조장을 찾았어요. 조장은 나를 보더니 내가 왜 왔는지 단번에 눈치채고 말을 해 줍니다.
" 반장님, 오늘 입사하신 신입분 나이가 20대 후반이래요. 그런데 저거 봐요. 왕선임 언니들한테 하나도 뒤지지 않아요. 손도 빠르고 바지런바지런 움직이고 눈치가 백 단이에요~~" 조장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신입은 중량 맞추기 어렵다는 구운 단호박을 놓고 있었습니다. 정형화된 모양이 아니고 수분의 정도가 달라 농산물 토핑은 중량을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선임 들에게도 어려운 작업 입니다. 그런데 양손을 이용하여 중량을 거의 잘 맞추고 있었어요. 양손을 활용하면서 중량을 맞추는 기술은 선임들이 하는 고급 기술인데 말이죠.
"암튼 조장님 그래도 약해 보이니 다치지 않게 조심하시고 배려를 좀 해 주세요."나는 당부를 하고 그곳을 벗어났습니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우리나라 속담은 정확했습니다. 입사한 지 3주가 되어가는 지금. 그 친구는 현장의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 내고 있습니다. 자기 키보다 높은 박스를 쌓는 일도 누구보다 영리하고 편리한 방법을 찾아서 하고 있고, 나이 든 동료들이 어려워하는 전산 작업지시서도 척척 설명을 해 줘 가면서 일을 하고 있어요. 자신의 키에 맞지 않는 벨트작업을 위해 키높이 깔창을 깔고 나타나서 일을 하고, 나이 든 동료들이 눈앞의 레시피 스크린을 확인하지 못하고 당황할 때 척척 정답을 알려 줍니다. 총명한 눈빛은 바라보기만 해도 `여기는 저 친구가 있으니 안심이다`라는 신뢰를 주었어요. 관리자들에게 조언도 서슴지 않고 합니다.
"이곳에 재활용 쓰레기통 하나만 비치해 주시면 동선이 훨씬 짦아져서 효율적일 것 같아요."
나는 어느새 관리자로 성장시켜야겠다는 욕심의 눈을 가지고 그 분을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현장에 서 있으면 여기저기서 나이 어린 그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수연님. 이거 좀 봐줘요."
"수연님 , 이 제품 생산 숫자가 맞아? 확인 좀 해줘요."
"이 날인속의 소비기한이 제대로 나오고 있어? 이것 좀 읽어봐 줘유." 그동안 대부분 중간 관리자들을 불러서 해결하던 내용들입니다. 기어이 나는 그 친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 하나 합시다. 여기 오래 다닐 생각이세요? 아니면 단기로 다닐 생각이세요?" 나를 한번 보더니
"솔직해야 하는 거죠? 저는 3개월만 다닐 계획입니다."속으로 나는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니 왜?" 놀라는 내 목소리에 미안함을 담은 미소를 띠면서
"사실은 뉴질랜드로 워킹 홀리데이 가려고 자금 마련하러 왔어요. 3개월 일해서 모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합니다.
"세상에나~~ 기특하고 예뻐라. 일을 너무 잘해서 나는 관리자로 키워볼 생각을 하고 었었어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있는 동안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쩌면 말씨도 그리 담백하고 예쁜지 나는 점점 어린 직원에게 빠져 들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직원의 부모인 양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뿌듯한 마음이 차 올랐어요. 그리고는 도움 줄게 없는지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주변을 더더욱 살피게 되었습니다.
우리 회사 생산직에도 저렇듯 명민하고 똘똘한 친구가 많이 입사해 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요. 십여년간 변하지 않는 제조에도 젊은 친구들이 새로운 바람을 넣을때가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하지만 내 맘대로 채워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인재를 붙잡지 못하다니 그 사실도 안타까웠습니다. 아뭏든 아쉬움을 뒤로 하고 크게 성장 하도록 응원하는 마음이 더욱 컸습니다. 부디 앞날에 크나큰 영광이 있기를. 노력하는 저 친구에게 크나큰 행운이 따라 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