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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Sep 14. 2024

폭염에는 식품 회사로 오세요.

이 여름을 사는 법

친정 시골 농수로에는  우렁이들이 많이 산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크기가 그대로다. 폭염 때문에 자라기를 멈춘 것인지 젊은 농부에게 물었다. 환경에 적응을 한 것이라고 한다. 농수로를 시멘트로 막아놓으니까 자신이 살아갈 장소의 크기를 가늠하고 더 이상 몸집을 불리지 않는단다. 현명한 우렁이다. 다들 환경에 적응을 하는 모양이다.  크기에 적응을 하고, 추위에 적응을 하고, 더위에 적응을 하고.


십수 년을 식품회사에 다니면서 무더운 여름을 느끼지 못했다. 밖에서 연일 사상 초유의 더위라고 각종 매체가 소식을 쏟아내도 작업장에서 우리는 하나같이 서늘하다 못해 추워서 고생을 했다.  어떻게 하면 발이 시리지 않을까 인터넷을 뒤져보고. 어떻게 하면 손이 덜 시릴까 해결책을 찾아본다. 문 밖은 30도를 훌쩍 넘는 폭염에도 일하는 작업장에서는 핫팩 한두 개쯤은 몸에 지니고 있다. 발바닥에는 핫 파스를 붙여보기도 하고 상의 안쪽에는 보온 조끼를 입고 일하기도 한다. 추위에 떨다 보면 허리가 아파져서 허리 복대 하나쯤은 액세서리로  차고 있다.


작업장의 온도는 사계절 변함없이 15도 아래다. 제품의 안전을 위해서 직원들이 몸으로 감당해야 하는 온도이다. 일에 빠져서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면 낮은 온도를 느끼기는커녕 땀이 줄줄 흐를 때도 있다. 하지만 꼼짝없이 고정된 자리에서 토핑만 얹어주는 일을 하고 있노라면  추위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손도 시리다. 손가락이 아리게 시리다. 식품은 10도 아래로 관리가 되어있는 상태라서 항상 차갑다. 기준이  10도라고 하지만  사실 냉장고 온도는 항상 5도를 유지한다. 안전성을 위해서다.  종일 그 차가운 식품을 만지고 있어야 하니 고역이다. 손과 팔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동안 가만히 드러내고 있어야 하는 등짝도 시리다. 움직이지 않고 한 곳에 서 있으니 발바닥도 시리다. 웬만한 보온재도 8시간 이상  일정한 온도에 노출되어 있는 상태를 이겨주지는 못한다. 현장 온도를 관리하는  유니트 쿨러는 사람들이 추워하거나 말거나 사시사철  제 몫을 다 하느라 팽팽 돌아간다.


즉석식품을 다루는 우리 회사는 온도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식품이 이동하는 곳의  모든 온도가 중요하다. 품질관리팀과 공무팀이 아침마다 점검 관리하는 1번 항목도 온도 체크다. 작업을 하는 우리도 조금이라도 변화를 느끼면 곧바로 알아채는 게 현장의 온도 변화이다. 우리 몸도 어느새 이 현장 온도에 익숙해 있다. 작업장에 들어서면 공기로도 몇 도인지 알 수가 있다. 마스크를 끼고 있음에도 콧속으로 스며드는 냉기가 안전한 온도인지 아닌지를 바로 가늠한다.

버거파티팩

냉기만을  느낌으로 아는 것뿐이랴, 우리는 온기도 바로 느낄 수 있다. 몸이 안다. 싸늘한 현장이 아닌 폭염의 바깥세상과 마주하는 순간 온몸이 찌르르 묘한 교감을 이룬다. 얼었던 볼은 녹아내리느라  상기되고, 손끝 발끝은 찌릿찌릿 전율이 느껴진다. 헛둘헛둘 몸 안으로 바깥의 온기를 훅 집어넣어야 비로소 내 몸 안의 냉기가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한다. 폭염 속에서도 좋은 점은 몸 안에  냉기가 남아있어서 퇴근길도 더운 줄 모르고 퇴근을 한다. 웬만한 열대야에도 몸 안에 남아있는 냉기로 거뜬히 수면에 빠질 수 있었다. 현장의 온도가 낮으니 피부가 늘어지지 는다는 이야기로 웃음을 만들어 '피부 좋다'라고 서로에게 위로를 하기도 한다. 서늘한 현장의 고마움이다.


 그런데 올해는 다르다. 밖이 너무 더워서 빠르게 움직이기도 싫어한다. 원하는 온도를 유지하려고 현장의 온갖 냉방기들은 숨도 못 쉬고 돌아간다. 작년까지만 해도 퇴근길에 냉기를 안고 갔었다면 올해는 더위를 현장으로 데려오는 기분이다. 출근을 해도 몸 안의 더위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동료들도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말이 있다. 덥다! 덥다! 유난히 덥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 심지어 휴무에 밖이 너무 더우니까 차라리 현장으로 출근하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고 한다. 그만큼 올해의 더위가 견디기 힘들다.  강렬하고 뜨거운 더위는 현장에서 품었던 냉기를 한방에 훅 날려 버린다. 숨고를 틈도 없이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한다. 퇴근길에 올라서기가 망설여진다.  우리 현장의 온도를 어디에 담아서 시원하게 느끼면서 가고 싶어 진다.


나는  며칠 전부터 인터넷을 뒤지고 다닌다. 연일 폭염이라는 일기예보를 보면서 최대한 얇은 경량 패딩을 한벌 사려고 한다. 아직까지 잘 입고 있던 패딩점퍼가 건조기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초등학생 사이즈로 줄어 버려서 입기 어렵다. 팔 한쪽을  집어넣기도 어렵다. 이 폭염에 추위를 견디는 자, 경량 패딩을 사려고 애쓰는 자, 복 받은 자가 아닐는지  흐흐흐.  여러분, 더위를 견디기 힘드시거든 식품회사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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