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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Oct 23. 2024

시킨다고 할 수 있는 것이냐? (반장일지 2)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

오늘은 새로운 기계가 들어왔다. 아침부터 공사 시간을 조율하고 작업 시간을 조율했다. 공사가 시작되면 어수선 해지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사고를 내기 십상이다. 현장 공사는 그래서 작업 이 끝난 다음에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이번 포장기 공사를 위해 업체가 방문을 원하는 시간은  하필 작업 시간이었다. 제품생산 중에는 공사를 할 수가 없어서 생산을 중단하든가, 공사를 잠시 뒤로 미루던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굳이 낮에 공사를 하겠다면  점심시간을 활용해 달라고 조율을 부탁했다.


그런데 기계는 예상보다 빨리 현장에 도착했다. 한참 작업 중이었다. 점심시간이 되려면 아직 이십 분이나 남았다. 업체를 데리고 들어온 공무팀은 자신들의 일이 먼저라고 왜 일을 끝내지 않았냐고 성화였다. 생산을 담당하는 나로서는 지금 생산이 더 중요한 거 아니냐고 맞받아 쳤다. 오전 시간을 마감으로 납기가 걸려 있는 제품이 있어서 생산을 중단할 수가 없었다. 공무팀의 사정도 있었겠지만. 내 판단은 납기가 우선이었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이 제품은 12시 안으로 출고가 되어야 하는 제품입니다." 업체와 공무팀에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이미 공무팀은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납기가 중요한 나는 공사를 못하게 하고 생산을 계속 진행했다.

"자자. 이거 마무리 먼저 하고 자리를 비워 줍시다." 동료들을 재촉했다.

공무팀의 일그러진 표정과 우리 생산팀장님의 난감한 표정이 내 양쪽 옆에서 따갑게 느껴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생산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눈치챈 동료들은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급하면 실수가 따르는 법.


토핑의 위치를 바꿔서  아무 곳에나 집어넣고 반제품 중량을 헷갈려해서 무게도 엉망이다. 공무팀과 나의 팽팽한 신경전이 괜히 동료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잠시 작업을 멈추고 정돈을 한 다음 다시 진행시켰다. 생산은 평소보다 훨씬 시간이  지연되고 있었고, 제품의 완성도도 낮았다. 화가 버럭 났다. 순간 나는 나를 자제하지 못하고 큰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신 안 리지!!!

조장은 지금 뭐 하는 것이야? 조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지켜봐야 할거 아니야!!"

현장이 조용해지고 손과 눈빛만 조용히 움직인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내가 미쳤구나. 금방 후회가 되었다.


어쩜 그리 못 참는가. 착한 동료들이 뭘 잘 못했다고 큰소리를 냈을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속담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책상머리 결론이 결국은 작업시간에 기계 설치를 하러 오게 만들었다니, 그 탁상공론에 화가 났다. 현장 분위기만 어수선하게 만들고 작업시간을 지연시키고 괜한 긴장감을 주어 동료들을 실수하게 만든 상황에 화가 나 있던 참이다.  내 사람들이 무엇을 잘못했다고 잠시를 못 참고 큰소리를 냈을까, 한심하다. 천천히 바로 잡아서 생산하면 될 일을 울컥 화를 못 참은 내가 후회됐다.


작업이 끝나고 동료들은 퇴근을 하고 없다. 현장에 널브러진 작업대와 기계들이 눈에 밟힌다. 내일 작업하기 좋은 위치로 라인 배치를 다시 하고 중량 선별기 조정도 다시 해 뒀다. 낮에 일하면서 작업대가 삐걱거린다고 불안하다고 했던 곳도 수리를 하고 소비기한 표시를 하는 히타치 날인기도 이동시켜서 작업하기 좋은 상태로 만들어 뒀다. 생산이 끝나도 손에서 연장이 떠나질 않는다. 만보기는 만 삼천 몇 보라고 기록하고 있다. 지쳐간다. 며칠 전 다쳤던 손가락이 욱신 거린다. 곁에서 나를 돕던 동료들의 표정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회사에 출근한 지 열두 시간이 다 되어 간다.


동료들과 퇴근하면서 배를 채운다. 역시 퇴근길에는 삼겹살이다.

"와. 오늘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르겠어요. 일도 많은데 기계까지 들여오고, 라인은 흐트러지고. 인원 관리도 계속 재배치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어요." 동료가 한숨을 쉬며 말한다.

"그러게요. 아까는 정말 화가 막 나더라니까요. 반장님이 화내지 않았으면 제가 화를 냈을 것 같아요. 저희는 생산이 바빠 죽겠는데 뭐 하자는 거예요. 정말. "다른 동료도 한마디 한다.

"그러게 또 하루 마감을 잘했네. 잘했어.

그러고도  늦게까지 남아서 내일 일을 잘해 보려고 현장 정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이게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게요. 서운하고 화가 날 때는 어차피 회사 일인데 내버려두어 버려야지 하면서도 작업지시가 떨어지면 또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해치우는 걸 보면 참, 하하하"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 자신들이 어이없어 그냥 웃고 만다.   


오늘 들어온 기계는 몇 달 전부터  설계하고 고민했던  기계다. 최신식 프로그램이 내장된 비싸고 성능 좋은 기계다. 아직 사용 전이기는 하다. 내 동료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준다면 그것으로도 나는 얼마든지 예뻐하려고 한다. 어느 공업사 표어처럼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빛나게 해 줄 터이다. 포장기야 내 사랑을 기다려라. 내일은 또 어떤 일에 미친 듯이 몸을 바쳐 일을 할 것인지 내일의 현장이 궁금해진다. 글을 쓰는 이 밤에 동료들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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