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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반장일지 02화

포장기야, 내 사랑을 받을 준비를 하거라 (반장일지 2

by 파인트리


기계가 오면 사람이 바빠집니다. 오늘 아침, 새 포장기가 들어온다는 소식에 현장은 조금 들떴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기계는 들뜰 이유가 없고, 우리 마음만 덜컥했습니다. 문제가 발생 했거든요. 업체는 그들의 스케줄 때문에 낮 시간에 설치하겠다고 했고, 나는 “낮에는 생산이 진행 중인데요?” 하고 맞받았습니다. 공무팀은 “설치 일정이 빡빡해서 오늘 낮밖에 안 된다”고 고집했습니다. 나는 “오전 납기 걸린 제품이 있어서 오전에 작업을 멈출 수 없다”며 버텼습니다.서로의 입장은 분명했고, 양보할 여지도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찌 어찌해서 우리가 현장을 비우는 점심 시간에 기계를 설치 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계가 생각보다 빨리 도착해 버렸습니다. 점심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는데, 공무팀은 “왜 아직 라인을 안 비웠냐” 성화였습니다. 이유가 업체가 바쁘다는 것이었어요. 아니 우리회사 공무팀이 업체 걱정을 하는 게 맞냐구요. 우리회사를 위해서 이러시는건지 업체를 위해서 그러시는건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물론 생산에 충분한 설명을 해 준것도 아니었구요. 원래가 생산을 살짝 무시해서 설명을 제대로 해주는 적도 없지만 말입니다. 나는 “납기 걸린 거 안 보이냐” 반격했습니다.


순식간에 현장은 ‘기계파’와 ‘생산파’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한쪽에서는 연장을 들고 ‘당장 비우라’고 무언의 압박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 동료들과 나는 장갑 낀 손으로 무조건 납기를 양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마지막 박스까지 완성을 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었습니다. 현장과 공무의 성화에 중간에서 조율하던 팀장님도 한숨만 쉬고 있었습니다.


잠깐 숨을 고르며 생각했습니다. 숨막히는 긴장감속에서 작업 제대로 될 리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기계랑 생산 둘 다 망치겠는데….’ 결국 나도 공무팀도 둘 다 의견을 모았습니다.
'기계 반입 전까지 공무팀은 밖에서 공구 세팅을 하고, 우리는 점심 시작 전까지 생산을 마무리 할 것,
설치는 점심시간과 오후 첫 작업 전 공백 시간에 무조건 해결하기. 대신 첫 작업은 조금 늦더라도 어쩔 수 없으니 생산이 양보 하기로 '


다행히 기계는 점심에 무사히 들어오고, 우리도 납기를 마무리하고 편하게 밥을 먹었습니다. 오후엔 다 같이 웃으면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지요. 물론 공무팀과 아까 있었던 일촉즉발의 껄그러운 감정은 며칠 더 가겠지요.


오늘 들어온 기계는 사실 몇 달 전부터 설계하고 고민하면서 기다리던 녀석입니다. 최신식 프로그램이 내장된, 비싸고 성능 좋은 기계로 기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설계와 그림으로만 보여지던 기계가 실물은 어떨지 저도 정말 궁금 했어요. 기대하던 모양인지. 기대하던 성능일지 빨리 보고 싶었어요. 역시 기대하던 모양이더라고요. 현장을 한방에 세련되게 만들어주는 위용을 가졌더라구요. 첨단 장비도 맘에 쏙 들었어요. 분해 조립도 간편해 보여서 더욱 좋아보였지요.


새롤 들여온 기계는 아직 시동도 안 걸었지만, 내 동료들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준다면 나는 기꺼이 애정을 퍼부어 줄 생각입니다. 어느 공업사 표어처럼,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반짝이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포장기야, 내 사랑을 받을 준비를 하거라.'


글을 쓰는 이 밤, 내일은 또 어떤 일에 미친 듯이 몸을 바쳐 일하게 될까를 생각합니다. 그래도 기계보다 먼저 오늘 함께 갈등속에서 땀 흘린 동료들이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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