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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Oct 11. 2024

반장 일기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반장이야기

초등학교 1.2학년때이던가?  괘종시계를 분해했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의 연장 통을 가져와 방바닥에 줄줄이 시계부속을 늘어놓았다. 분해할 때는 금방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었다. 맞출 수가 없었다. 깨알만 한 부속은 왜 그리 많은지 작고 어린 내 손 안에서도 자꾸만 흘러 떨어졌다. 엄마 아버지가 들에서 돌아오기 전에 맞춰 놓으려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안 되는 일이었다. 결국 지쳐서 방바닥에 널브러진 부속들을 바라보면서  혼자 망연히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일찍 들어오신 아버지는 늘어진 나사들을 보면서 내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그리고는 아주 쉽게 명쾌한 종소리가 나는 시계로 돌려놓으셨다. 걱정스러워하던  나를 돌아보던 아버지의 당당한 미소속에 명쾌하던 한마디.

"걱정 마! 이젠 됐지?" 요즘 내가 그때 아버지 웃음을 흘리면서 산다.


"이거 병뚜껑이 안 열려요."

소리를 듣는 즉시 내 몸은 벌써 그 앞에 가 있다.

"내가 해 줄게."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꺼낸다. 쉽게 열린다.

"아, 금방 되네요." 동료가 기뻐한다.

" 이거 봐, 됐지?" 열린 병을 전해 주고 나는 얼른 도망쳐 수돗가로 간다.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뺐더니 병이 너무 뜨겁다. 뜨거워도 너무 뜨거웠다. 손가락 끝으로 뜨거운 열기가 온몸으로 꾹꾹 밀려들었다. 찬물에 손을 담근다. 설거지를 하는 척 괜히 수세미를 만지작 거리면서 찬물 속에서 손을 식힌다. 잠시면 금방 괜찮아진다. 후후, 아무도 모르게 한 가지 해치웠다.


현장 저쪽에서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분명 기계가 안 되는 모양이다. 대충 짐작이 가는 일이다. 나를 부르는 동료만 바라보고 걷다가 스탠작업대 사각 모서리에 팔꿈치를 박았다. 온몸에 전기가 차르르 흐른다. 기운이 온몸에서 후루룩 빠져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나를 보고 있는 동료를 때문에 표정 간수를 하느라 속으로 눈물이 난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가가면서 팔꿈치의 통증을 빨리 없애려고 괜히 현장분위기를 달군다.

"거기 기운 좀 내봐!! 옆사람 등도 두들겨 주고~~ 나도 좀 두들겨 줘 봐~~" 그러는 사이 통증은 가라앉고 나는 기계를 고친다. 쉬운 고장이라 금방 고쳐 낸다.

"역시 우리 반장님은 신의 손이야!!"  좋아하는 동료들 덕분에 통증 따위는 금방 잊힌다.


동료들이 기피하는 작업 중에 하나는 기계작업이다.  어떻게든 그날 기계 앞에 서지 않으려고 한다. 할 수 없이  작업을 했다 하더라도 청소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청소가 싫어서가 아니라 기계 분해를 그냥 무서워한다. 여자 천국인 현장에 의지할 사람도 없다. 나는 무조건 틈 날 때마다 호기롭게 기계분해를 하고 청소를 돕는다.

"별거 아니지?  이거 봐봐 "

나사를 풀고 조이기를 반복하고 설명을 하면서 청소를 한다. 그런데 이놈의 기계가 무겁다. 내 힘으로 감당이 안될 때도 있다. 까딱 잘못하여 놓치면  내 손가락을 짓누른다. 설명을 하던 중이라서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이를 악물고 참는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청소를 마치고 조립을 끝내면  사람 없는 귀퉁이를 찾아 헤맨다. 그제야 짓눌린 손가락을 부여잡고 나도 모르게 안경 속으로 눈물 한 방울을 찔끔 흘린다. 나를 달랜다. 아픈 손가락도 달랜다. 너무 아파서 혼자 서럽다. 겨우 서러움을 달래고 현장으로 나오면

"반장님이 이거 조립이랑 청소 도와주셨어. 끝내 주지?" 옆사람에게 나 들으라고 말하는 동료가 고맙다. 우이씨. 언제 아팠는지 모르게 웃음이 피어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일이 반복된다. 진짜 별일 아닌데 내가 가면 해결이 되고,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고치면 잘 고쳐진다. 작업지시서를 잘 못 보고 헤매던 모니터화면도  내가 곁에 있으면 잘 된단다. 작동을 멈춰버린 기계 때문에 애를 태웠는데 내가 다가오면 작동이 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동료들이 투덜거린다.

"이 눔의 기계가 사람을 가려요. 반장님이 오면 잘 돌아간다니까." 사실은 내가 슬쩍 컴퓨터의 화면을 바꿔주고 기계의 안 되는 나사 하나쯤 돌려준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현장의 모든 기계와 설비와 작업 도구들의 유지 상태가 내 안에 모니터링되고 있어서 그날의 고장의 원인쯤을 미리 대충은 안다.  대충 감을 잡아서 손을 보면 또 대충 고쳐진다. 나의 전문성 없는 얕은 지식을 감각으로 채우고 있다는 것을 다행히 동료들은 모른다. 얕은 지식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매사에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아닌 척 대수롭지 않게 대응을 한다. 그런 나에게 '신의 손'이라 말해주는 동료가 있어  직장이 다닐 맛이 난다.


친정아버지는 팔십오 세의 나이에도 항상 드라이버를 곁에 놓고 무엇인가를 고치고 계신다. 햇볕에 다 삭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20년이나 된 경운기도 아버지의 기름칠 덕분에 잘 굴러간다. 시골에 갈 때마다

"우와! 신기해. 아빠! 이걸 어떻게 고쳤어?"  칭찬하면서 경운기로 들판을 달리곤 한다. 시원하게 경운기 질주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버지는 뿌듯하고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신다. 친정에는 버려도 시원치 않을 오래된 사각  라디오에서도 소리가 난다.

"아빠!! 이거 어떻게 고쳤어? 소리가 잘 나는데. "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웃음에 자신감이 넘친다. 잘 고쳤다고 칭찬하면  아버지의 얼굴에는 단단한 자긍심이 보인다. 칭찬을 받을 때  사람은 자기평가가 높아지는가 부다. 요즘의 내가 그렇다. 현장에서 눈에 보이게 하나씩 해결되는 것을 보면 나 또한 아버지의 웃음에서 느껴지던 기운이 생겨난다. 재밌다. 일이 참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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