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반장이야기
초등학교 1.2학년때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괘종시계를 분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방바닥에 줄줄이 시계부속을 늘어놓았지요. 시계를 분해할 때는 금방 맞출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었어요.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깨알만 한 부속은 왜 그리 많은지 작고 어린 내 손 안에서도 자꾸만 흘러 떨어졌어요. 부모님께서 들에서 돌아오기 전에 맞춰 놓으려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지쳐서 방바닥에 널브러진 부속들을 바라보면서 혼자 망연히 앉아 있었어요. 그날따라 일찍 들어오신 아버지는 늘어진 나사들을 보면서 내 머리를 콩 쥐어박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쉽게 맑은 종소리가 나는 시계로 돌려놓으셨어요. 걱정스러워하며 움츠려있던 나에게
"걱정 마! 이젠 됐지?" 하시면서 벽에 시계를 걸어 두셨습니다. 시계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초침 분침이제 할 일을 하기 시작 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아버지의 '걱정마 이젠 됐지?' 라는 말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내가 그 말을 가장 많이 하고 다녀요.
"반장님, 이거 병뚜껑이 안 열려요."
소리를 듣는 즉시 내 몸은 벌써 그 앞에 가 있습니다.
"내가 해 줄게." 뜨거운 물에 넣었다가 꺼내요. 물론 쉽게 열리지요.
"아, 금방 되네요." 동료가 기뻐합니다.
" 걱정마, 이젠 됐지?"
현장 저쪽에서 손짓으로 나를 부르는게 보입니다. 분명히 기계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대충 짐작이 가는 몇가지 이유로 기계는 작동을 안할 것입니다. 역시나 필름을 끼우는 순서를 잘못 했거나, 아이마크의 위치를 흔들었거나 하는 간단한 이유 입니다. 금방 몇 번 움직여 보다가 바로 잡아 줍니다.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라인 전체 열두명의 시선이 환해 집니다.
"걱정마,이젠 됐지? 작업합시다." 내 말에 모두들
"우리 반장님 최고!!"를 외쳐 줍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같은 일이 반복됩니다. 진짜 별일 아닌데 내가 가면 해결이 되고, 진짜 아무것도 아닌데 내가 고치면 잘 고쳐집니다. 작업지시서를 잘 못 보고 헤매던 모니터화면도 내가 곁에 있으면 잘 된다고 하고 작동을 멈춰버린 기계 때문에 애를 태웠는데 내가 다가오면 작동이 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내가 옆에 서 있으면 동료들이 투덜거립니다.
"이 눔의 기계가 사람을 가려요. 반장님이 오면 잘 돌아간다니까."
사실은 내가 슬쩍 컴퓨터의 화면을 바꿔주고 기계의 안 되는 나사 하나쯤 돌려 준 사실을 그들은 모릅니다. 현장의 모든 기계와 설비들의 유지 상태가 내 안에 모니터링되고 있어서 그날의 고장의 원인쯤을 미리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어느때는 진짜 대충 감을 잡아서 손을 보면 또 대충 고쳐지기도 해요. 나의 전문성 없는 얕은 지식을 감각으로 채우고 있다는 것을 다행히 동료들은 모르는듯 합니다. 얕은 지식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매사에 괜찮은 척, 아무 일도 아닌 척 대수롭지 않게 대응을 하지요. 그리고는 돌아서서 죽어라 설비작동법과 고장이력을 찾아보고 어떻게 고치고 해결 했는지를 찾아 본답니다. 그래도 모를때는 공무팀을 찾아가 질문 폭탄을 퍼붓기도 하고요. 죽어라 공부해서 알아내는 사실들을 동료들에게 아직은 들키지 않았어요. 어려움이 닥치면 나는 또 태연하게 고쳐주고 '걱정마. 이젠됐지?'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몇년전까지만 해도 친정아버지는 항상 드라이버를 곁에 놓고 무엇인가를 고치고 계셨어요. 햇볕에 다 삭아서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20년이나 된 경운기도 아버지의 기름칠 덕분에 잘 굴러갑니다.기가막혀요. 고물상에서도 싫어할 것 같은데 굴러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시골에 갈 때마다
"우와! 신기해. 아빠! 이걸 어떻게 고쳤어?" 칭찬하면 아버지는 신이 나셔서 경운기로 들판을 드라이브시켜 주셨어요. 시원하게 경운기 질주를 마치고 돌아오면 아버지는 무척 뿌듯하고 흐뭇해 하셨지요.
지금은 아버지가 너무나 연로 하셔서 아버지의 경운기는 젊은 막내 동생이 타고 다닙니다. 걱정스런 눈으로 마흔이나 된 막내를 바라보시고 출발하기 전에 경운기의 여기저기를 살펴 보십니다. 그런 아버지의 서글픈 눈빛이 마음 아파요. 동시에 시원하게 들판을 질주해주시고 '어때 시원하지?' 라고 말해주던 건강한 아버지가 그리워요. 그래도 아직 우리곁에 계셔주는게 어디예요. 충분히 감사하지요. 그리고 제가 아버지의 피를 이어가면 되지요. 생각해 보니 흩어진 부속들을 모아서 간단하게 벽시계를 고쳐 주시고 '걱정마 이젠됐지?' 말해주던 아버지가 내 안에 있는게 분명합니다. 현장에서 뭔일이 나면 해결을 해 주지 못해서 안달이 나고 있거든요. 말끔하게 해결해주고 '이젠됐지?' 이 말을 해주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