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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Oct 24. 2024

사람의 마음에도 마침표를 찍게 해 주오.(반장일지 3)

사람 마음은 어렵다.

몇 달 전 시작한 영어학습지에 답글이 달려 있다. 그런데 무엇인지 잔뜩 틀렸단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혼자서 일단 열심히 찾아본다. 온라인으로  정답을 확인해 봐도 딱히 내가 쓴  정답이 틀린 것 같지 않다. 도대체 어디를 틀렸단 말인가? 단어가 틀린 것도 아니고, 철자가 틀린 것도 아니다. 나는 정답을 찾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결국 담당 선생님에게 질문을 하고 만다.

"선생님 아무리 봐도 어디 틀린 곳이 없는데요?" 내 질문에 학습지 선생님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간단명료한 대답을 한다.

"어머니!! 마침표를 안 찍으셨어요."

" 뭐 이런 것도 틀렸다고 하시는 거예요?"

"당연하죠. 문법인데. 마침표, 물음표  중요하죠."


치. 그래 중요하긴 중요하지. 하지만,  틀린 단어 찾아보느라 애쓰고 골머리 앓던 시간들이 아깝다. 뭐 이리 허망하게 답이 나온단 말이냐.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렇게 머릴 싸매도 찾아지지 않던 이번 문제의 오답이 이렇게 쉽게 풀리는  마침표였다니, 학습지에게 배신을 당하는 기분이다.  큰 문제로 틀린 게 아니어서 안심을 하기도 하지만 틀린 것은 명백히 틀린 것이니 기분이 별로다. 급히 나를 반성한다. 도대체가 아직도 덜렁대고 깊은 생각을 하지 않으며 섬세하지 못한 나의 단점이 표면으로 드러나고 있다. be동사에  주어, 목적어 정도로 만들어지는 기본 문장을 익히면서 마침표 하나를 빠뜨려 틀리고 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며칠 전 동료 한 사람이 질문을 했다.

"새로 오신 분께 이 일을 가르쳐 주라는 것은 저에게는 회사를 그만두라는 말씀 이신 거예요?" 눈에는 눈물이 그렁하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혼자 하시기에는 너무나 힘든 일이라서 일을 나눠 드리려는 것입니다." 내 대답에 동료는

"저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는데 사람을 충원하시는 것은 저에게 나가라는 소리인가 해서 고민했어요." 한다.

나는 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직원 채용을 하면서 기존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미처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힘들다고 했고 어렵다고도 했으며  혼자 하기 어려운 스케줄과 작업량이기도 해서 인원을 채워 주려고 했다. 그런데 동료들은 생각보다 자리에 대한 욕심이 강했던 모양이다.  제조는 자동화된 시스템이 아니고서야  같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언제 어느 때고 사람은 빠져나갈 수 있고 누군가는 그 자리를 갑작스럽게 대신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기술이 필요한 일들을 여러 사람에게 배우고 익히게 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힘들다던 당사자들은 자신의  일을 뺏긴다는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과 자긍심이 있는 것은 좋으나 그 일을 뺏길까 봐 속 상해 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는 당황했다.


"아니  지난번에 힘들다고 했잖아~~.

휴무 때마다 교대해 줄 사람도 필요하고~~" 내가 다소 놀란 눈빛을 보냈는지

"아니 그건 그때만 잠시 그랬다는 거지요. 사람을 채워 달라는 얘기는 아니었어요. 여기 일이 둘이 할 일은 아니거든요."

이젠, 둘이 할 일도 아니란다. 힘들다고 투덜거릴 때는 언제고 사람을 채워 주겠다니 이번에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 한다.  사람 마음을 참 알 수가 없다.


사람의 마음도 마침표를 찍어서 정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마음은 문법책의 한 문장도 아니어서 헤아리기는 더더욱 어렵다. 여기에서 거기까지 마음이 보였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은 이렇게 정리를 하고라고 딱 잡아 마음의 맺음을 했으면 좋겠다. 그 마음이 보였으면 더더욱 좋겠다.


 동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내 마음의 용량에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내 생각으로 상대  마음까지 정리해  주려하고 내 결정으로 그 사람의 마음도 결정을 하라고 한다. 어리버리 방황 할 때는 대의를 따르라고 강요한다.  몇 발자국씩, 몇 걸음씩 차이나는 마음들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있다. 마음을 살피기는 너무 어렵다. 휴~나의 행동에 서운했을 사람들과, 나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았을 사람들과, 나의 결정에 배신감을 느꼈을 사람들에게 나는 무엇이라도 하기는 해야겠다. 끝없는 사람의 마음을 공부하는 학습지는 없는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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