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참깨를 느낄 때
기력이 달리는 어머니는 참깨가 노릇이 익어 간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셨습니다.
"곡식의 수확은 다 때 가 있는 법이여. 당장 베어야 쓰겄는디~~"
결국 오 남매가 나섰습니다. '어머니 참깨 수확은 우리가 해 드리자.' 어머니의 교육이 시작되었습니다.
"큰 아야, 참깨는 가만가만, 어째도 가만가만 베어야 하능겨. 조금만 드세게 나가면 한 톨도 안 남고 모두 떨어져 버려."
참깨를 베러 가려고 준비를 하는 동안 어머니의 교육은 계속되었습니다.
"어찌도 가만가만해야 된다잉~~"
어머니는 '가만가만'이란 단어를 수십 번 말씀하셨습니다. 오 남매는 독수리 오 형제처럼 낫을 들고 경운기에 용감하게 탑승했지요. 막내 동생이 프로농부처럼 몰아대는 경운기는 시원하게 논밭을 가르며 달렸습니다.들 길을 쿵쾅거리며 달리는 경운기의 쇳바닥에 엉덩이를 맡기고 적당한 아픔을 즐기면서 참깨밭에 도착 했습니다.
우선 꼬투리가 노르스름하게 익은 참깨들을 베기 시작했어요. 한 그루씩 조심스레 베어도 베어지는 충격으로 참깨가 몇 알씩은 떨어져 나갔습니다. 참깨를 벨 때는 뿌리를 발로 밟고 충격을 최소화해야 했어요. 참깨밭고랑을 지날 때는 숨을 들이마셔서 배를 쑥 집어넣고 참깨를 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다녀야 했습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가만가만'을 실감했습니다. 잘 익은 참깨는 스치기만 해도 스르륵 쏟아져 버렸어요.
곁에서 지켜보던 어머님께서 한마디 하십니다. "참깨는 익으면 익을수록 입을 벌리고 있어. '농부 니들이 빨리 안 오면 다 뱉어 버릴거여' 하믄서 배짱이 이만저만이 아녀.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지켜보면서 익는 대로 수확해야 참깨 농사가 마무리 되는겨." 어이없게도 모두 맞는 말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습니다. 당당하고 완벽하면 배짱을 부려도 되는 것일까? 무더운 한여름을 견디고 한 톨한 톨 정성스레 여물었으면서 이리도 아까운 것을 쏟아버리다니, 조금만 기다려 주면 안 되는 것이고? 고얀 참깨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어요. 고소하면 전부인가? 참을성은 눈곱만큼도 없는 참깨가 얄미워 지기도 했고요. 참다못해 한마디 했습니다 " 기다리지 않고 자꾸 쏟아버리면 정말 고소할 테다.알겠니? 참깨야!!"
생산직장에 많은 사람들은 몸으로 부대끼며 일을 합니다. 옆사람보다 조금 힘이 드는 일을 하기도 하고 옆사람보다 편한 일을 하기도 하지요. 십여 년 전만 해도 옆사람이 힘들어하면 너나없이 도와주려고 했어요. 무엇이라도 챙겨 주려고 하고 말이라도 다독 거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참을성이 없어졌다고 할까요? 내가 왜 참아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일은 흔합니다.
한마디로 참깨보다 더 참을성이 없어요. 참깨는 잘 익힌 당당함이라도 있지만 사람들은 일에 대한 당당한 실력이 갖춰지기도 전에 자신들이 요구할 것을 먼저 내세웁니다. 관리자가 생각보다 큰 목소리로 작업지시를 하면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줬다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합니다. 그놈의 '고소'라는 단어!! 단체생활에서 지켜야 할 개인의 명예가 그렇게 많은지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진짜 눈곱만큼만 양보하고 콩알만큼만 배려하고, 손해 보면 아무 문제없을 내용들입니다. 하지만 손해라도 보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분위기예요.
그래도 현장이 버티는 힘은 다수의 사람들이 풍기는 선한 영향력 때문입니다. 아직은 힘이 들수록 배려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어려울수록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고요. 안타까운 일일수록 감싸주려는 사람이 많지요. 그래서 전체가 가진 힘은 큽니다. 사실 현장에서 불가능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단합하면 되거든요.이게 생산의 매력입니다. 그놈의 나쁜 단어 '고소'만 없다면 항상 현장에는 진짜 고소함과 통쾌함이 넘쳐나요.
우리 직장에도 참깨를 한 됫박 뿌려서 진짜로 고소하게 만들고 싶어집니다. 조금만 양보하면 진짜 고소해지는데, 조금만 참아주면 진짜로 고소해지는데~~. 어머니의 참깨 밭은 떨어진 참깨로 고소함 천지인데 이 고소함이 아깝습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코끝을 간지럽히는 이 고소를 우리 현장으로 옮겨갈 방법은 없는건지 머리를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