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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Sep 04. 2024

작은 고추는 진짜 맵다

아까운 인재

3주 전에 신입직원이 입사했다. 인사팀에서 연락을 받고 반가운 마음으로 인수인계를 하러 내려갔다. 귀한 신입이 오셨으니 무조건 반기려던 내 마음은 현장 입구에 서 계시는 신입 직원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우리 회사의 가장 작은 사이즈의 위생복을 입었어도 위생복이 너무 커서 상의를 바지에 넣고 하의는 밑단을 몇 번 접어 입고 있었다. 150CM가 안 되는 키였다. "어서 오세요" 내 인사말에 개미만큼 희미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숙여 인사하는데 지켜보는 나는 걱정이 앞섰다. 위생절차를 설명하고 현장 입실을 시키면서 나는 계속 안전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너무나 작고 여리고 가냘픈 체구를 가진 분이라서  다칠까 봐 걱정이 되었다. 30g짜리 스쿱이나 제대로 들고 일을 할 수 있을지, 혹은 하루종일 8시간 이상  서 있어야 하는데 종일 버틸 체력은 있는 건지, 도대체가 인사팀은 무엇을 보고 채용을 하는 건지 한심한 생각까지 들었다. 우리 회사의 노동력은 일단 힘이 있어야 하고 , 체력이 있어야 하고 , 생산 벨트 위에서 작업을 하려면 기본적인 키가 있어야 하는데 신입분의 외모에는 그런 조건이 한 가지도 맞는 게 없었다. 좀 쉽고 단순한 일에 배정을 하고 옆의 동료들에게 다치지 않게 잘 좀 챙겨 주라 전하고 나는 현장을 나왔다. 


그날따라 검토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작업 현장을 둘러볼 시간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현장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아침에 배정한 신입은 어디에서 울고 있지나 않은지 걱정이 앞섰다. 무조건 그분을 찾아 직진했다. 현장에 백여분이 같은 옷을 입고 눈만 보이는 상황이라 눈으로 찾기를 포기하고 배정된 라인의 위치를 찾아갔다. 신입이 있는 라인을 따라 올라가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제품이 잘 나오고 있었다. 원래 신입이 한 명 들어갔을 때. 더구나 일을 못하는 신입이 들어갔을 때 라인의 생산 속도는 조금 떨어진다.  토핑의 위치가 바뀌거나 중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여 수정을 하느라 제품의 퀄리티도 살짝 떨어질 때도 있다. 혹은 작업 설명을 해 주느라 필요 이상의 말들이 오가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조용하고 생산이 순탄해 보였다. 나는  (그사이를 못 버티고 퇴실을 하신 겐가?) 의심을 하고 조장을 찾았다. 조장은 나를 보더니 내가 왜 왔는지 단번에 눈치채고 말을 해 준다.



" 오늘 입사하신 신입분 나이가 20대 후반이래요. 그런데 저거 봐요. 왕선임 언니들한테 하나도 뒤지지 않아요. 손도 빠르고 바지런바지런 움직이고 눈치가 백 단이에요~~" 조장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신입은 중량 맞추기 어렵다는 구운 단호박을 놓고 있다. 정확한 단위개체가 아니라 불규칙한 모양이고 수분의 정도가 달라 농산물 토핑은 중량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런데 양손을 이용하여 중량을 거의 잘 맞추고 있었다. 양손을 활용하면서 중량을 맞추는 기술은 선임들이 하는 고급 기술이다. 앞에서 대충 놓아주고 뒤에서 중량을 확인하는데 정확하고 빠르게 놓기가 어려워 선임들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암튼 조장님 그래도 약해 보이니 다치지 않게 조심하시고 배려를 좀 해 주세요."나는 당부를 하고 그곳을 벗어났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우리나라 속담은 정확했다. 입사한 지 3주가 되어가는 지금. 그 친구는 현장의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 내고 있다. 자기 키보다 높은 박스를 쌓는 일도 누구보다 영리하고 편리한 방법을 찾아서 하고 있고, 나이 든 동료들이 어려워하는 전산 작업지시서도 척척 설명을 해 줘 가면서 일을 하고 있다. 자신의 키에 맞지 않는 벨트작업을 위해 키높이 깔창을 깔고 나타나서 일을 하고, 나이 든 동료들이 눈앞의 레시피 스크린을 확인하지 못하고 당황할 때 척척 정답을 알려 준다. 총명한 눈빛은 바라보기만 해도 `여기는 저 친구가 있으니 안심이다`라는 신뢰를 주었다. 내게도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이곳에 재활용 쓰레기통 하나만 비치해 주시면 동선이 훨씬 짦아져서 효율적일 것 같아요."

나는 어느새 관리자로 성장시켜야겠다는 욕심의 눈을 가지고 그분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현장에 서 있으면 여기저기서 나이 어린 그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이거 좀 봐줘."

"이 제품 생산  숫자가 맞아? 확인 좀 해줘."

"이 날인속의 소비기한이 제대로 나오고 있어? 이것 좀 읽어봐 줘." 그동안 대부분 중간 관리자들을 불러서 해결하던 내용들이다. 기어이 나는 그 친구에게 질문을 했다.

"질문 하나 합시다. 여기 오래 다닐 생각이세요? 아니면 단기로 다닐 생각이세요?" 나를 한번 보더니

"솔직해야 하는 거죠? 저는 3개월만 다닐 계획입니다."속으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니 왜?" 놀라는 내 목소리에 미안함을 담은 미소를 띠면서

"사실은 뉴질랜드로 워킹 홀리데이 가려고 자금 마련하러 왔어요. 3개월 일해서 모으면 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세상에나~~ 기특하고 예뻐라.  일을 너무 잘해서 나는 관리자로 키워볼 생각을 하고 었었어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있는 동안 열심히 하겠습니다."

 어쩌면 말씨도 그리 담백하고 예쁜지 나는 점점 어린 직원에게 빠져 들고 있었다. 너무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내가 그 직원의 부모인 양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뿌듯한 마음이 차 올랐다.  그리고는 도움 줄게 없는지 나도 모르게 그 친구의 주변을 더더욱 살피게 되었다.


안타까웠다. 우리 회사 생산직에도 저렇듯 명민하고 똘똘한 친구가 많이 입사해 주면 좋으련만~~ 엄마맘으로 보면 크게 성장해야 하는 아까운 인재였다.  내 맘대로 채워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인재를 붙잡지 못하다니 아깝고 아쉬운 마음에 매일매일 인사하고 아껴주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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