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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반장일지 10화

저 청년은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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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트리

회사 창립 초기였어요. 일을 시작 한지 며칠 되지 않은 현장이라 진짜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지요. 저는 조장이었어요. 퇴근이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자자! 한 시간만 더 하면 다 할 수 있어요." 어딘가에서 외침이 들려왔어요. 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다시 또

"정말 한 시간만 더 하면 끝낼 수 있어요." 또 후딱 한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정말 끝났겠지. 하면서 정리를 시작하려는데

"진짜 한 시간만 더 하면 끝나요.!!"관리자 외침에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이거 봐요. 애들 장난하는 겁니까? 한 시간 , 한 시간 벌써 몇 시간이 지난 줄을 알고는 있어요? "

"밖에서 지금 퇴근 기다리는 가족들이 몇 시간째 기다려요."

"한 시간씩 미루다 보니 화장실도 못 간 지 몇 시간 째라고요. 이렇게도 계획이 없습니까?" 일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원성을 쏟아냈습니다.


벌써 밤 열 시를 넘어가고 있었어요. 정상 퇴근이면 오후 다섯 시였어야 했고요. 조원들과 나는 계획성 없고 무질서한 운영에 점점 지쳐가는 중이었습니다.

관리 감독자는 우리 조로 찾아와서 윽박질렀어요.

"이걸 끝내고 가셔야지 그냥 퇴근하면 어떻게 합니까?"

조원들 중에 몇 명은 너무 지쳐서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이거 봐요. 계획 없이 한 시간만, 그리고 또 한 시간만 벌써 몇 시간째 약을 올리신 건 생각 안 하시나요?" 나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생산 현장이니 하라면 하는 거죠!!" 감독자는 어이없는 소리를 했습니다. 그 말에 동료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어요. 금방이라도 모두 때려치우고 나갈 분위기였습니다. 나는 일단 분위기를 잠재우려 동료들을 모두 화장실로 보냈습니다.


갑자기 현장이 비어 버리자 1층 사무실의 근무자들이 2층현장으로 올라왔습니다. 아마도 이대로 생산이 진행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보고가 들어간 모양이었어요. 올라온 사람 중에 젊어 보이는 청년이

"현장에서 큰소리 내시면 안 됩니다. " 무지하게 차분한 말투였습니다. 그 목소리가 더욱 분노를 일으켰어요.

"우리를 약 올리는 것처럼 일을 시켰다고요. 처음부터 앞으로 몇 시간 작업해야 하는 수량이 남았다라고 했으면 더 열심히 더 빠르게 해 냈을 분량인데 , 한 시간만, 한 시간만. 뭐 하자는 겁니까?"

"그 한 시간만 더 때문에 다섯 시간째 화장실도 못 갔어요"

동료들 중에는 당장이라도 집어치우고 나갈 기세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은 마무리 지어야 했고 지친 동료들도 달래야 했습니다.


" 일도 일이지만 이 사람들은 쓰러질 것 같으니 몇 사람은 퇴근시켜 줍시다." 내 말에 젊은 청년이 동조했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몇 사람을 퇴근시켰더니 라인의 구성이 맞질 않았습니다. 11명이 세팅되어야 작업이 진행되는 구조였거든요. 처음 말을 꺼낸 청년이 무엇을 도와 드리면 되겠냐고 물었습니다.

"할 줄 아는 건 있으시고요?" 쏘아대는 내 질문에

"시켜만 주면 뭐든지 잘합니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나는 젊은 청년에게 야채를 담아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생산을 마무리해 나갔어요. 얼마 남지 않은 인원으로 생산을 마무리하다 보니 쉽지는 않았습니다. 그 상황에 젊은 청년은 뜻밖에 일을 잘했어요. 두 번 손이 가지 않도록 마무리도 야무졌고, 정량을 지켜야 하는 저울을 보는 것에도 능숙했습니다. 점점 생산 속도가 빨라지는 우리 팀의 속도에 전혀 밀리지 않게 일을 해냈어요. 덕분에 예상보다는 빠르게 일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은 신규입점을 위 대청소를 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생산을 마치고 대청소를 실시했습니다. 마지막 점검을 하는데 청소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나는 여기저기 마음에 안 드는 곳을 챙겨가며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진땀을 흘리며 애를 써도 갈무리가 되지 않는 상태였어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애석해하고 있는데 어젯밤의 젊은 청년이 등장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 제가 봤을 때 이번 점검에 떨어집니다. 청소가 엉망이에요." 나는 아주 냉소적으로 말했습니다.

"어디가 엉망이지요?"

"눈에 보이는 천장 후드, 눈에 보이지 않는 모서리 기름때 이런 건 위생상태가 엉망이라고 보일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젊은 청년이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이미 저녁 8시, 나는 더 이상 청소 보완을 포기하고 퇴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아까 그 젊은 청년이 다시 돌아왔어요.


"청소 좀 같이 하시죠. 제가 청소를 아주 잘합니다." 하고는 수세미와 각종 청소 용품을 쏟아 냈습니다. 아마도 청소 장비를 구매해 온 모양이었어요. 그때부터 청소는 시작되었습니다. 당장 내일 아침이 점검이니 중도에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남아있는 세 명과 젊은 청년. 넷이서 청소가 시작되었습니다. 각자의 영역을 정했어요. 나는 스스로 식품회사 청소의 달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찌든 때가 잔뜩 끼어 있는 후드 부분을 맡았지요. 한참을 열심히 청소하다가 돌아보니 내 곁에 바짝 쫓아오고 있는 사람은 뜻밖에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이 청소를 하면서 지나 온 후드가 반짝반짝 빛이 났습니다. 천장에 매달려 청소를 하는 알 수 없는 진중함에 후광이 비쳤습니다. 나는 속으로 `저 청년은 뭐를 해도 해내는 사람이겠구나`라고 감동했습니다. 새벽 세시가 되어서야 청소가 끝이 났습니다. 너무 열심히 청소를 한 탓에 4명은 거의 탈진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점검 날 아침 분주한 사람들 틈으로 젊은 청년 한 사람이 전체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주 익숙했습니다. 식품회사 생산 현장에서는 꽁꽁 싸매고 있으니 얼굴 자체를 알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겨우 눈동자만 보이게 모든 곳을 감싸고 일을 거든요. 그나마 목소리를 들어야 조금 알 수 있습니다. '어라, 야채 놓아주던 사람이네. 다시 보니 어젯밤 청소를 같이 한 사람이네.' 그제야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동안은 그냥 본사 관리자 중에 한 사람이겠거니 생각하고 전혀 궁금해하지도 않았었거든요.

관리 팀장님에게 물었습니다.

"저기 저 앞에 있는 젊은 청년은 누구세요? 그제는 현장에서 야채 담아주었고 어제는 나랑 청소를 같이 했는데~~" 내 시선을 따라가던 팀장님이. 시선을 멈추면서

" 아~~ 저기 저분요? 대표님요.!!" 합니다.

대표님 이랍니다. 대표님!!

아~나는 망한 건가? 대표님께 바른말을 그토록 얄밉게 쏟아부어 버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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