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은 시작되었습니다.
오전 7시. 백여 명의 사람들이 제 위치에서 일사불란하게 작업시작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7시 정각을 알리는 시곗바늘. 시작과 동시에 기계들이 작동하는 소리가 현장을 감싸고 돕니다. 신선한 온도 유지를 위해 죽어라 돌아가는 대형 쿨러 소리와 기계소리가 맞물립니다. 웬 간 해서 소곤거리는 대화는 쉽지 않습니다. 큰소리로 말해야 마스크 뒤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00님이 아직 출근을 안 했어요!"
인원 점검을 하던 조장님 한분이 말했습니다.
"누구라고요?"
"000님요!" 조장님이 다시 소리칩니다.
"아무 연락도 없으셨어요? " 내 질문에
"네. 그분 오늘 출근이세요. 저는 아무 연락도 못 받았어요." 무슨 일일까? 평소에 성실이 이름인 것처럼 부지런 한 사람입니다. 출근길에 사고가 난 것일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부랴부랴 전화기를 꺼내듭니다.
따르릉. 따르, 신호음이 두 번도 가기 전에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들립니다.
"반장님, 죄송해요. 늦잠 잤어요. 지금 탈의실이에요. 옷 갈아입어요. 금방 올라갈게요." 아주 조심스럽고 멋쩍은 목소리가 들려 옵니다.
"에구 이 사람아 걱정했잖아. 알았으니 이따 봐요." 하하. 다행입니다. 늦잠이래요.
단 몇 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부랴부랴 작업장 입구로 들어서는 지각한 동료가 보입니다. 얼른 마중을 갔지요.
"어디 아픈 것은 아녀? 뭔 일로 늦잠을 잔거여?" 내 질문에 동료가 나를 툭 건드립니다.
"반장님 쉿!! 부끄러워요. 사실은 출근을 서두르며 챙겼어요. 그런데 출근 준비를 끝내고 보니 버스 시간이 많이 남았더라고요. 5분만 편히 앉아 있다가 나오려고 했는데 그만 잠이 푹 들어 버렸어요. 꿈도 꾸면서 어찌나 달달하고 깊은 잠에 빠졌는지 몰라요. 화들짝 깨고 보니 늦었지 뭐예요."
"에구 꿀잠 잤구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꿀잠!" 내 농담에
"맞아요. 덕분에 몸이 너무 개운해요. 히히. 죄송해요." 라며 웃습니다. 아이고 사랑스러운 동료입니다. 나는 어깨를 툭 치면서
"잘했어. 몸이 좋아하면 됐어. 이따가 늦은 시간만큼 일은 더하고 가기? 알았지?" 동료는 제자리로 바로 들어갑니다.
늦으면 '연차 처리 해주세요 '하고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정해진 휴무와 상관없이 출근하기 싫으면 하루 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장은 계획인원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갑자기 결원이 생겨서 보충이 안되면 다른 인원을 투입해야 하지요. 다행히 채울 인원이 있으면 손발이 안 맞아도 그런대로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채워 넣을 인원이 없을 때는 빈자리 옆의 동료가 두 배는 힘들어요. 혼자서 1.5배 혹은 2배로 일을 해야 하니까요. 이런 동료의 고충을 서로 이해해서 가능하면 결근은 하지 않는 게 우리끼리의 매너 입니다. 늦어도 허겁지겁 달려오는 게 다 그런 예쁜 마음이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꿀잠으로 지각이라니 얼마나 귀여운지요. 작업용 장갑을 끼는 동료를 보면서 잠시 내 위치가 조장이었어도 웃으면서 편히 맞이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아마도 "어쩌다 늦었냐"라고 다그쳤을것 같아요. 당장 내가 운영해야 할 조의 인원이 부족하니 날카로와 져 있었을것 같습니다.그런데 반장이 되고 보니 지각에도 관대한 너그러움이 생겨났습니다.
그렇게 동료가 자리를 잡고 일을 시작하자, 옆에서 작업하던 동료들이 슬쩍 농담을 던졌습니다.
"그러니까! 꿈이 너무 좋아서 못 깼다니, 혹시 꿈에서 샐러드 만들고 온 거 아니야?"
다들 피식피식 웃습니다.
"나는 진짜로 자면서 샐러드를 만든다니까, 어떨 때는 꿈에서 일을 많이 해서 아침에 일어나면 힘들어."
동료 한 사람이 진지하게 말합니다. 그러자 옆에서
"나도"
"나도" 그 말에 다들 공감을 합니다.
우리 동료들은 꿈에서도 일을 한다고 합니다. 세상에, 우리 회사는 대박 나겠구먼. 히히. 어쩌면 누구나 한 번씩은 일하는 꿈을 꾸게 되나 봅니다. 나도 사실 일하는 꿈을 꾼 적이 많습니다.
현장은 다시 바쁘게 돌아갑니다.
누구는 늦잠으로 지각하고, 누구는 아슬아슬하게 출근하고, 누구는 “나는 아직 잠이 덜 깼어. 꿈속에서 일하는 거 같아” 라며 푸념을 하기도 합니다.
사실 다들 피곤하지요. 그래도 자신의 할 몫이 있다는 책임감에 달려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오늘도 다들 무사히 출근했습니다. 안도의 긴 숨을 쉬게 됩니다.
때론 알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여 일어나고, 연차보다 양심이 먼저 반응하는 우리. 소문내고 싶은 우리 동료들의 고오급 매너입니다. 어디에도 이런 매너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