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병이 없습니다. 조회 준비 하느라
매주 월요일 아침 6시 58분, 새벽바람을 깨고 출근한 얼굴들이 위생복으로 갈아입고 현장에 모입니다. 대부분 아침은 걸렀을 것이고, 겨우 커피 한잔을 마신 얼굴들입니다. 눈이 부어서 눈동자가 잘 안 보이는 동료, 얼굴이 부어서 위생모자 속의 볼이 빵빵한 동료들이 서로를 보며 웃습니다. 서로서로 지난밤의 안부를 물으며 80~ 90여 명의 생산 직원들은 현장 중앙으로 모입니다. 중앙 라인을 사이에 두고 반장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 섭니다. 반장은 '좀 더 내 앞으로 와유',를 외치면서 PPT 화면을 켜고 마이크 상태를 확인합니다. 주간 조회가 시작됩니다. 주간 조회에서는 다음 주 생산계획, 지난주 불량률, 개선사항, 클레임 공유. 등 현장 운영에 관한 내용과 교육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바뀌는 정책이나 이슈, 혹은 신제품 초도생산에 대비하는 내용 등 매주 전달하는 내용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모두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사실, 제가 이 조회를 꾸준히 여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다”라는 그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제조 현장이라는 게 출근하면 퇴근할 때까지 옆 동료의 얼굴 한 번을 제대로 볼 수 없습니다. 톱니바퀴처럼 그만큼 일에 집중을 해야 하니까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동료애를 느낄 겨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기에 주부들이 많은 곳이라 퇴근시간이 되면 식구들 밥 챙겨 주려고 혹은 가족들 돌보려고 총알 퇴근을 하는 바람에 회사는 종료 5분 안에 정적에 쌓여 버립니다. 얼굴을 볼 시간이 없는 셈이지요. 그래서 아침조회 시간에라도 얼굴을 마주 보게 하고 싶어서 반장 직책을 맡은 이래 꾸준히 조회를 이끌어 오고 있습니다.
현장을 서로 이해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서로 이해하려면 서로를 알아야 하고 얼굴을 볼 기회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계획하고 회사의 허락을 받고 시작하게 된 게 주간 아침 조회입니다. 어떤 식의 조회를 할까에 대한 고민도 해 봤습니다. 어느 회사의 현장은 아침 체조로 하루를 시작하고, 어떤 현장은 힘찬 구호로 사기를 다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런 방식이 잘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우리 현장의 80%는 50대 이상. 다짜고짜 구호를 외치기보다는 하나하나 의미를 나누는 방식이 더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조회를 '소통의 자리’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지시보다 공유, 전달보다 이해가 우선되는 그런 자리요. 조회는 짧습니다. 길어야 15분 내외, 하지만 짧은 그 시간 안에,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서로를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그 감각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 하루는 분명 조금 더 따뜻하게 시작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조회를 시작하고 나니 동료들의 애환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반장님, 일하면서 혼자 투덜투덜 욕설을 내뱉는 분이 있어요. 옆에서 듣기 너무 괴로워요. 자제 좀 시켜 주세요."
"반장님, 이동데크나, 스탠바트, 바구니등을 놓을 때 살살 놓아달라고 해주세요. 매일 그런 소리에 놀래다 보니 심장이 벌렁거려요."
"반장님 우리도 스트레칭도 하고 구호도 외쳐요."
동료들의 애로사항 해결을 위해 발 벗고 나섭니다.
"여러분들 일을 하다가 화가 나서 욕하고 싶을 때 투덜거리고 싶을 때 반장을 찾으세요. 큰소리로 화풀이할 수 있게 마이크 대령해 드리겠습니다. 혼자 투덜거리면 옆사람이 놀래요. '나를 욕 하는 건가?' 걱정하고요. 그러니까 큰소리로 하세요. 아셨죠? 그리고 현장에 소음이 너무 심해서 우리 착하고 여린 동료들 심장이 벌렁거린다고 합니다. 물건 내려놓을 때 살살. 조용조용 내려놓읍시다. 우리들의 심장은 뭐다!! 소중하다!! " 조회 분위기는 점점 부드러워집니다. 이때 저는 한술 더 떠서
"우리는 소중하다"를 큰소리로 외쳐 봅시다. "라고 제안을 합니다. 동료들은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끌어안고 '우리는 소중하다'를 외칩니다. 이 소중하다는 외침은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아이들과 실천하신다는 내용의 방송을 보고 따라한것인데 평균 연령 50이 넘은 우리 현장에서도 반응이 뜨겁습니다. 시간이 부족해서 단체로 못한 스트레칭은 이동을 하면서 각자 팔을 쭈욱 뻗으면서 갑니다.
조회가 끝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는 동료들은 전날보다 더욱 다정해 보입니다. 누군가는 “아 이번 주도 생산량 장난 아니겠네” 한마디 툭 던지고, 우리가 더 잘할 거라고 라인끼리 서로 파이팅을 합니다. 정리 정돈을 이야기 한 날은 바쁜 와중에 정리를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이고 스탠바트 좀 살살 놓으라고 한날은 어쩌다 꽝! 내려놓게 되면 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큰소리로 '미안'을 외치기도 합니다. 중량 좀 잘 맞춰보자고 이야기 한 날은 여러 라인 곳곳에서 중량 점검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조회로 인해 현장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고 동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듭니다.
"반장님 오늘 조회 너무 재밌었어요. 일하는 게 신나요."
"반장님 그 내용은 우리도 알고 싶었어요." 이런 말을 듣는 날은 정말이지 감개무량합니다. 그래서 저는 월요일을 위한 조회를 열심히 준비합니다. 딱 15분, 하지만 그 시간 하나로 꽝! 소리는 줄고, '미안!'은 커졌으며, 우리 현장은 오늘도 눈치로 소통하고, 웃음으로 단합합니다. 조회 덕분에 서로 먼저 인사하고, 챙기는 모습이 늘었습니다. 묵묵히 얼굴도 모르고 일만 하던 현장이 이제 조금 사람 냄새가 납니다. 이 정도면 뭐, 거의 ‘조회 맛집’ 아닐까요? (흐흐, 혼자 자랑질하는 반장일지 입니다.용서 하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