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는 마음
오늘도 반장의 오지랖 일기 입니다.
누군가는 비누빨대가 끊어졌다고 두고 갑니다.
누군가는 이동데크의 바퀴가 빠졌다고 귀퉁이로 밀어놓습니다.
누군가는 박스를 색깔별로 구분해 놓지 않고 마구 뒤섞어 놓습니다.
누군가는 또 출입문을 밀다가 부서져도 그냥 갑니다.
다들 말합니다.
"바빠서요."
" 벨트가 돌아가고 있어서요."
" 잠시도 자릴 비울 수 없어서요."
근데요, 저는 반장이라 그냥 못 갑니다. 비누 빨대가 빠졌다고요? 비누빨대는 손세척을 위해 물비누에 꽂아놓은 빨대입니다. 겉에서는 깔끔하게 펌프만 보이지만 손 세척대 속에는 물비누 통과 비누 빨대가 연결되어 있지요. 식품회사는 하루에도 수십 번 손을 씻어야 하거든요. 손 세척대를 열어 구조를 확인하고, 왜 빠졌는지 원인을 찾습니다. 혼자 못 고치겠으면 도움을 요청해서라도 해결하고 갑니다. 이동데크 바퀴가 빠졌다고요? 연장통을 들고 나사 풀고, 바퀴 상태를 점검합니다. 새 구멍을 뚫어서라도 튼튼하게 고정시킵니다. 여러 색이 뒤섞인 박스요? 해당 라인 조장님께 말합니다.
"색이 엉망이잖아~ 구분해서 보관합시다!"
출입문이 부서졌다고요? 누가 다칠까 봐 임시 안전조치 해두고 공무팀에 요청 넣습니다.
반장은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새벽 6시에 출근해서부터 퇴근할 때까지 현장을 몇 바퀴를 도는 건지 모르겠어요. 만보기는 하루 만이천~만 삼천 걸음. 8~9시간을 이렇게 움직이죠. 동료들이 종종 묻습니다.
"반장님은 체력 어디서 나와요?"
"반장님은 감기도 안 걸리잖아요."
"넘사벽 체력이에요!"
그런데요. 사실은 약해보이기 싫어서 엄청 노력 중입니다. 저는 어느 유명 연예인이 하던 말을 항상 생각해요. 그 연예인께서 촬영이 길어지면 피곤하고 힘드니까 자신도 모르게 옆사람에게 짜증을 내더래요. 옆사람에게 짜증을 내는 자신에게 무척 놀랐고 그래서 지치지 않으려고 체력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저도 생각했어요.
"지치지 말아야겠구나. 내가 힘들면 우리 동료들을 피곤하게 할 수도 있어." 그런 다짐을 하고 아주 잘 먹고 잘 자려고 합니다. 덕분에 너무 잘먹어서 그런지 제 또래보다 뱃살을 많이 가지게 되었어요. 뱃살은요, 힘의 원천입니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릴 때 의지가 됩니다. 물건을 들어 올릴 때 허리 각도가 중요하네 뭐네 하면서 현장에서는 안전교육을 받습니다. 그런 안전교육이 무색하게 뱃살에 턱 하니 물건을 올리고 나르면 진짜 도움이 되거든요. 뱃살 없는 사람은 절대 모르는 숨겨진 힘입니다. 또 한 가지 기본 체력을 지키려는 노력은 계속합니다. 유난히 피곤한 날일수록 운동은 반드시 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약간 강제성이 있어요. 왜냐하면 딸들이 감시를 해요.
"엄마. 운동하고 주무세요. 자자 운동 갑시다."
"치료보다 건강관리가 우선입니다."라는 딸들 말에 어찌 됐든 운동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계속 진행 중입니다.
사실,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우리회사의 현장에는 ‘숨은 미래의 반장’들이 참 많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기계 옆에 다소곳이 무릎 꿇고 맨바닥에서 기계를 고치는 설비담당 주임님은 매일 파스 냄새가 납니다. 목 디스크에 어깨 통증으로 항상 고생을 하지요. 일할 때는 아픈 것을 모르신다고 합니다. 그만큼 열중하시는 것이지요. 말은 없지만 늘 제일 먼저 나와 재고관리부터 인원을 체크하는 계장님은 젊은 나이에 허리 복대를 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합니다. 큰 키에 성큼성큼 라인 사이를 넘나들면서 챙기는 것을 보면 불안해 죽겠어요. 어디에 부딪힐까 봐, 넘어질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종일 지켜보게 됩니다.
또 한 분 우리 꼼꼼히 주임님은 예민보스입니다. 작업이 계획과 맞지 않으면 반드시 원인분석을 해 내고, 모든 작업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하루 종일 점검에 점검을 하고 다닙니다. 때문에 퇴근이 가까워지면 체력배터리가 방전이 되어 버리지요. 다크서클이 생기고 모니터를 보기도 싫다고 합니다. 동글이 주임님은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문제가 생길 것 같아 논의를 하고 있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해결을 해 놓아요. 손도 어찌나 빠른지 감히 손으로 하는 일에는 아무도 대적을 못합니다. 아이큐가 150은 되나봐요. 문제의 내용을 정확히 알아내고 해결하는데 천재 같아요. 매일매일 현장 점검에 전력질주를 하셔서 한 달에 한 번씩 몸살을 앓아요. 또 있습니다. 귀요미 주임님은 현장 모든 곳에 예쁜말로 향기를 뿌리고 다녀요. 타고난 예쁜 태도를 가졌어요.
그리고 또 많은 동료들이 현장을 지킵니다. 자라나는 반장 들이지요. 꼼꼼하게 출고 시간 정리를 하면서 일하시는 조장님. 작업 방법을 이리저리 바꿔볼까 고민하고 얘기해 주는 동료들, '누구누구가 요즘 힘들어해요, ' 격려해 주라고 따뜻한 조언을 주는 동료들, 하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도 속으로는 고질병 하나쯤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몸으로 하는 일이라서 일까요? 그렇게 다들 자기 몸이 성하지 않아도, 누구 하나 쉽게 ‘안 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자기 자리를 성실하게 지켜 줍니다. 제조는 자리를 지켜주는 게 일의 절반은 한 것이다라고 성실을 강조하는데 그 말이 맞아요. 자기 몸은 적당히 달래 가면서 책임을 다 하려는 성실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제조 현장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짐하며 출근합니다. 비누빨대요? 얼마든지 빠져도 됩니다. 반장이 있잖아요. 서둘러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작업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 금방 씻은 손이라 물기가 남아 있어서 손가락 끝까지 장갑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손가락이 닿지않은 장갑의 끄트머리는 1센티미터쯤 바람 빠진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료가 한마디 건넵니다.
“와~ 반장님 손가락 끝에 지느러미 달렸어요?” 그 한마디에 웃음이 피어나고, 그 웃음 하나가 또 하루를 버틸 힘이 되지요. 식품 제조 현장은 여름에는 더 춥습니다. 신선식품의 온도를 유지해야 하거든요. 현장은 10도 내외를 유지합니다. 동료들은 항상 춥다고 하지요. 장시간 일하는 장소라서 실제로 현장은 추워요. 손을 비비며 서 있는 동료가 보이면 오늘도 말없이 핫팩 하나, 슬쩍 전해줄 겁니다.
누군가는 챙겨야 하니까요. 그리고 우리 현장에 체력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에너지를 나눠줄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게 저라면, 오늘도 기꺼이, 그렇게 일해보렵니다. 지금까지 오지라퍼 반장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