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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 예쁘게 하기" (반장일지 23)

사람의 말

by 파인트리



"맞는 말 예쁘게 하기"

현장 출입구에 제가 써 붙여 놓은 말입니다. 현장에서 잘못된 일의 지적을 하다 보면 목소리가 쓸데없이 높아지고 감정이 실립니다. 바로 잡아야 하고 수정해야 하는 내용이 맞습니다. 틀린 얘기는 하나도 없는데 대화를 끝내고 나면 말을 한 사람이나 들은 사람이나 기분이 아주 나쁩니다.


저도 간혹 실수를 한 사람에게

"그렇게 하고 싶어요?"

"몇 번을 말했어요?" 이런 말 튀어나오면 정말 안되는데 현장에선 튀어나옵니다. 이런 말을 들은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다쳤을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모멸감, 자존감하락. 이런 상처는 다시 회복하고 올라오기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것을 아니까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뱉어 낸 날은 상처받은 동료의 주변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깎듯이 존댓말을 쓰는 게 우리 현장의 규칙입니다. 하지만 사적으로는 사랑하는 후배이고 동료라서 친근한 반말을 하게 되지요.

"아까는 미안하다."

"용서해 주라"

"내가 인간이 덜 됐다." 아무리 사과를 해도 이미 가시 박힌 말을 들은 사람과 뱉어버린 사람의 사이는 어색해져 버립니다.


다른 팀과 회의를 하다 보면 상대팀의 어디를 깨 부술 것처럼 이야기를 하고, 기가 막히게 돌려 깎기를 하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찌나 바른말을 또박또박 해 대는지 그 자리에서는 반박을 할 수가 없어요. 분명 변명을 해야 할 구석이 많은데도 어찌나 맞는 말을 바르게 쏟아내는지 입을 쩍 벌리고 쳐다만 보게 됩니다. 심지어 "와~ 똑똑하다." 속으로 감동까지 해 버립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차근차근당한 것이지요. 순간적인 재치가 부족한 저는 당장 그 자리에서는 대응할 말을 찾지 못하고 나중에 혼자 분노합니다. 생각해 볼수록 당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며칠 동안 혼자 삐지지요. 속으로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저 똑똑이는 가까이하지 말아야지~" 이러면서 슬슬 피하기도 해요.


우리는 왜 당연하게 바로 잡아야 하는 말을 거칠게 성을 내면서 하게 될까요? 같은 말을 해도 상대의 심장을 후벼 파는 말을 골라서 하기도 하고요. 물론 '바빠서'라고 변명을 합니다. '아무리 얘길 해도 안 들으니까'라고도 합니다. 기분 나쁜 게 참 별게 아니에요. 내용은 따박따박 맞는 말인데 어감 때문에 어투 때문에 기분이 나쁘거든요.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직장 동료들인데 이왕이면 부드럽게, 다정하게, 예쁘게 말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직장에서 8시간 이상 같이 있는데 이보다 긴 시간을 보내는 사이가 있을까요? 그러니 이왕이면 맞는 말을 좀 더 정확하고 설득력 있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게 또 왜 그리 어려울까요?


30년이나 제조현장 생산 관리를 해 오신 노련한 선배 한분이 제가 처음 관리자가 되는 날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1. 제조 현장은 항상 확인해야 한다.

2. 작업이 확실히 완료될 때까지 관리자는 아무것도 믿으면 안 된다.

3. 무엇이 잘 못 되었다면 그건 관리자 탓이다. 작업자 탓이 아니다. 감독과 교육을 소홀히 했으니까.

4. 제조관리 70%는 사람이다. 나머지는 지식이다.

5. 제조현장 관리자는 그래서 힘든 거다.


반장이 되고 나니 그 말이 절절히 느껴집니다. 잠시 한눈팔면 이 구멍이 터지고, 안심하고 돌아서면 저 구멍이 터집니다. 그런데 일이 터질 때마다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남깁니다. 서로 남의 탓을 하다가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어느 날 집에서 항상 같은 내용의 잔소리를 하는 저에게 둘째가 정색을 하고

"엄마! 하시는 말씀이 모두 맞는 말인데 예쁘게 해 주시면 안 되겠어요? "라고 했습니다. 뜨끔 했지요. 그날부터 내 책상과 내 시선이 닿는 곳에 "맞는 말 예쁘게 하기"를 써 붙였습니다. 팀장님과 언쟁이 높아지던 날 팀장님 책상에도 붙여 드리고, 현장에 고약한 말만 골라서 하는 동료의 자리에도 붙여 두었지요. 그러면서 여기저기 하나씩 늘어나게 되어서 지금은 현장 출입구부터 여러 곳에 붙어 있습니다.


이마트의 과장님께서 우리 회사에 이마트에 납품하는 제품의 제조점검을 오셨던 날, 현장에 붙여있는 "맞는 말 예쁘게 하기"를 보시고는 너무 훌륭한 생각을 하는 현장이라고 칭찬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잘 지키고 있지 못해서 뜨끔하기도 했지만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 맞는말 예쁘게 하기에 제가 당합니다. 어쩌다 큰소리로 작업을 전달하고 있으면 재치 있는 동료가 표어 써 붙여 놓은 곳을 가리킵니다.

"반장님!! 저기요." 그곳에는 커다란 글씨로

"맞는 말 예쁘게 하기"가 쓰여 있습니다. 뱉은 말도 못 지키고, 써 놓은 글귀도 못 지키고, 반장이란 직책은 어렵습니다.


출처: 인스타 냠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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