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회식, 메뉴는 삼겹살 (반장일지 27)

우리 회사 회식은 이렇습니다.

by 파인트리

회식날을 정했습니다. 고민도 많이 했지요. 전체 회식이 좋을까? 아니면 각 라인별 회식이 좋을까? 하는 내용으로요. 하지만 상반기 신입 동료들도 많이 생겨서 전체가 얼굴을 보는 자리도 필요할 것 같았어요. 결국 전체 회식으로 정했습니다.


전체회식은 거의 백 명 가까이 회식에 참가하기 때문에 일단 장소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큽니다. 관리자 몇 명이 모여 앉아 고민에 고민을 하지요. 먼저 우리가 가진 예산에 맞는 장소를 찾는 것이 가장 어렵습니다. 장소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또 여러 조건과 제약이 많습니다. 회사에서 너무 멀어도 안되고, 대중교통이 편리 한 곳 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음식에 대한 고민도 많습니다. 특별히 고기 싫어하는 사람, 해산물 싫어하는 사람, 식성이 다양하거든요. 그렇다고 개인의 식성을 모두 맞출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회식의 정석 삼겹살로 메뉴를 정합니다.


장소와 시간을 정하면 회식을 재밌게 하려는 생각에 몇 가지 게임을 준비합니다. 회식이 먹고 마시기만 하면 의미가 없잖아요. 회식 분위기를 달구기 위해 다 같이 참여하는 '팀장님을 이겨라 가위바위보' 게임도 준비를 하고, 현장에서 필요한 제조 상식을 넣어서 몇 가지 쉬운 문제를 만듭니다. 이도저도 상품을 못 받는 동료들을 위해서는 무작위 번호 추첨으로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준비도 합니다.


상품은 관리자들이 자발적으로 가져오기도 하고 동료들의 기부도 있습니다. 전체 회식을 한다고 공지를 하니 기부 행렬이 줄을 잇습니다. 1+1 화장품을 사게 됐다고 한 세트를 내놓은 동료가 있습니다. 지난 명절에 선물을 많이 받았다고 영양제를 내놓는 주임님도 있습니다. 시골에서 막 짜서 가져왔다고 고소한 들기름을 가져오고, 친정에서 가져왔다고 서리태 콩을 가져오는 등 그야말로 회식 에서의 상품은 다양하고 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회식이 정해진 날은 이상하게 머피의 법칙이 작용을 합니다. 작업 종료를 빨리 하려고 모두들 한 마음, 한뜻으로 열심히 달리는데도 말이지요. 예상 수량을 계획하고 퇴근시간까지 생산량 계산을 철저히 해 두어도 회식날은 변수가 많이 생겨요.

긴급으로 대량 발주가 있다거나, 기계가 고장이라거나 하는 일들이지요.


이번에는 다행히 회식날 발주 수량이 예상 수량과 비슷해서 속으로 '다행이다'를 외쳤지요. 그런데 안심을 먼저 해버린 걸 조물주가 알아챘을까요? 퇴근이 임박해서 어김없이 기계 한대가 속을 썩이고 말았어요. 다들 작업 종료를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데 기계는 천하태평으로 딱 멈춰서 버린 것이지요. 날인이 안 되는 것이었어요. 표시사항이 완벽하게 잘 찍혀 나와야 완성인데, 글자가 흐렸다가 받침이 사라졌다가를 반복했습니다. 현장의 최고 기술자들이 모두 달려들었어요. 한마음 한뜻으로 고쳐 보려고 애를 썼어요. 한 삼십 분 애를 먹이더니 기계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갑자기 날인이 잘 찍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기가 막혔지요. 기계 고장으로 작업이 멈췄던 기록을 남겨야 하는데 어떻게 해서 고쳐졌는지를 쓸 수가 없었어요. "이것저것 하다 보니 문득 고쳐졌다"이렇게 쓸 수는 없잖아요. 결국 어찌어찌 숫자 조정을 했고, 몇 번째 나사를 조여서 수리가 됐다로 구구절절 기록을 하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육백마지기의 안개 낀 날


드디어 작업을 마치고 동료들은 하나둘씩 가려졌던 얼굴을 드러냅니다. 하나같이 밝고 어여쁩니다. 대부분 목소리는 낯 익은데 얼굴은 낯선 사람들이지요. 항상 위생복으로 뒤집어쓰고 있으니 얼굴을 잘 몰라요.

"아니. 반장니이이이님~~ 얼굴이 이랬어요?"

"아니 이게 누구지? 목소리는 귀에 익은데 얼굴은 낯설어." 흐흐. 서로를 알아보면서 웃음꽃이 핍니다. 위생복으로 가려진 미모를 뽐내는 이도 있고, 목소리에서 느껴지던 분위기와는 다른 반전의 얼굴을 드러내는 이도 있습니다.


동료들로 가득 찬 회식 장소에는 평소에는 못 보던 ‘진짜 얼굴’들이 앉아 있습니다. 일할 때의 정열을 회식장소에서도 여지없이 보여주는 정열맨이 저기 있습니다. 하루 종일 라인에서 지지고 볶았는데 또 양손에 집게를 들고 삼겹살을 열심히 굽고 있는 것이지요. 안쪽에 앉은 미경 씨는 평소 무뚝뚝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소맥 제조 장인이고, 책임감 있고 얌전하기만 한 줄 알았던 희경 씨는 완전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토핑을 할 일도 없고 소비기한을 눈여겨보아야 할 책임감도 없어서 일까요. 유머러스한 말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옵니다. 희경 씨가 앉아 있는 테이블은 삼겹살 먹는 소리보다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말할 기회가 없었던 진주 씨는 알고 보니 가수에게 빠진 덕후였습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모든 음악과 활동 등을 줄줄이 읊어 댔습니다.

"우리 가수님 것인데 자작곡이야. 이 노래 한 번만 들어봐 줘요. 너~무 좋지?" 기어이 음악을 켜서 자꾸만 핸드폰을 들이대고 들어보라고 합니다. 좋기는 좋습니다. 지원 씨는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만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강쥐의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에서 제일 이쁘고 귀엽다고 자랑입니다. 여기저기서 손주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그동안 일하면서 미안했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먼발치서 듣기만 해도 정겹고 동료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누군가는 전체 회식이 괴로울 수도 있습니다. 조용하고 오붓하게 지내고 정을 쌓고 싶어 할 수도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이번 기회로 그동안 어느 동료와 쌓인 오해를 풀고 싶어 하는 맘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현장은 바쁘고 시끄러워서 대화를 할 수가 없어요. 또 누군가는 서로에게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지는 직장 분위기가 불편 할 수도 있습니다.친해지려면 시작되는 호구조사를 싫어하는 분도 있거든요. "몇 살이냐? 어디 사시냐? 등등".


하지만 땀으로 맺은 우정을 한 번씩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회식 바로 다음날 분명히 평소보다 인사하는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회식자리에서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증거이지요.. 라인이 달라서 얼굴도 몰랐던 동료와도 회식자리에서 안면을 텄으니 서로 안부를 물으면서 반가워하지요. 그리고 서로 한 번이라도 더 도와주려고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서로 챙기는 마음이 생겨나는 직장, 이만하면 괜찮은 직장 아닌가요?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전체 회식이라면 준비는 힘들지만 해 볼만 하지 않습니까? 반장이 아니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할 뿌듯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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