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철학자 이야기입니다.
휴가라서 온 가족이 시골집에 모였습니다. 85세 넘으신 부모님의 기억력 테스트를 한다고 동생들은 고스톱 판을 열었지요. 안방 고스톱 경력 60년 차가 넘으신 부모님은 아직도 동생들쯤은 거뜬히 이겨 버립니다. 친정아버지의 몇 수를 내다보는 실력에 동생들은 번번이 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친정어머니의 자잘한 패의 계산에 밀려 동생들은 맥을 못 추더라고요. 나는 그 고스톱 판에서는 빠져 있었습니다. 양반다리가 힘들거든요. 퇴행성 관절염은 그 재밌는 고스톱 판에 오래 앉아 있질 못하게 아픕니다. 다리가 아파서 끼지 못하고 비스듬히 기대어 옆에서 구경만 하는데도 부모님과 동생들의 고스톱 판은 어쩜 그리 유쾌하던지요. 아마도 사랑이 배경이라서 더 재밌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랑 같이 어른들의 고스톱 판을 구경하던 10살짜리 남자 조카가 있습니다. 이 친구는 원래가 애 늙은이라는 별명이 있어요. 어른들을 깍듯이 존대하고 동생에게는 양보하고 고모, 할머니, 엄마는 자신이 먼저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매너남입니다. 조카는 구경만 하는 내가 안돼 보였던지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그리고는 잽싸게 빨갛고 조그만 통을 들고 왔습니다.
"고모! 이거 할리갈리라는 보드 게임인데 저랑 같이 해 보실래요?" 나는 귀염둥이 조카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고모가 금방 배울 수 있어?" 조카에게 물으니
"네, 제가 설명을 잘해 드릴게요. 쉬워요. 요즘 초등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아는 게임이에요." 합니다. 조카는 먼저 카드와 벨을 꺼내 놓고 게임의 규칙을 설명했습니다.
1. 서로 카드를 반씩 나눠 가져요.
2. 둘이 동시에 카드를 한 장씩 오픈하는 거예요.
3. 카드에 그려있는 과일의 개수가 5일 때 벨을 먼저 누른 사람이 이기는 거예요. 고모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4. 과일은 같은 과일 이어야 하고 상대와 나의 카드에서 동일 과일이 나왔을 때도 5개일 때만 벨을 누른다는 게임이에요.
5. 둘을 합하지 않고 단독으로 5개가 있을 때도 상대든 내 것이든 무조건 5일 때 벨을 먼저 눌러요.
6. 먼저 벨을 눌러서 이긴 사람은 상대가 그동안 내려놓은 카드를 몽땅 가져올 수 있어요.
7. 상대의 카드를 몽땅 뺏어오면 너무 서운하니까 보너스 한게임을 더 하게 돼요. 진사람은 카드 없이 머리에 손을 얹고 이긴 사람 혼자 카드를 오픈하게 돼요. 하지만 벨을 누를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벨을 먼저 눌러 이기면 부활을 하고 다시 카드를 반으로 나누게 돼요.
8. 그런데 보너스게임까지 지면 게임은 끝이 나게 돼요. 어때요 고모? 이해되시죠?
열 살짜리 꼬맹이가 게임 규칙을 어찌나 조리 있게 설명하는지 나는 금방 알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두 번 숙련도 미숙으로 나는 조카에게 카드를 뺏겼어요. 이내 승부욕이 발동한 나는 과일개수 5와 함께 벨을 누르는 순발력이 조카보다 빨랐습니다. 첫 번째 게임을 졌을 때 조카는
"고모, 진짜 잘하시네요."
두 번째 게임에 졌을 때 조카의 반응은
"와~~ 진짜~ 고모 잘하신다."
세 번째 게임에서 졌을 때 조카의 반응은
"와~ 우리 고모 게임 천재이신가 봐요. 정말 잘하시네요."라며 한결같이 나를 칭찬했습니다.
사실 조카는 지면서도 내가 게임을 잘할 수 있게 벨을 내 가까이 놓아주었습니다. 할리갈리게임은 벨이 가까운 사람이 빨리 누르게 되어 있는 게임이었습니다. 내가 벨을 조카 앞으로 가까이 슬쩍 밀어 놓아도 조카는 다시 내 앞으로 조금 더 가깝게 밀어줬습니다. 벨을 우리 둘 사이의 정 중앙에 놓아도 조카는 조금이라도 내 앞으로 가까이 밀어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조카는 자꾸 게임에 졌습니다. 게임에 지고 있으니 민망했는지 조카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그럼에도
"고모는 처음이니까~"라고 말을 하면서 벨을 자꾸 내 앞으로 밀어줬어요.
나는 속으로 이 꼬맹이에게 감동하고 있었습니다. 게임 규칙도 기가 막히게 설명을 잘했지만, 게임하는 도중에도 배려가 몸 안에서 나오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판마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죠. 조카의 그런 반응이 귀여워서 나는 점점 더 게임을 극한으로 몰아갔습니다. 결국 조카는 한 판도 이 기지를 못했습니다. 게임을 끝내고 조카는 카드 정리를 하면서도 계속 고모인 나를 칭찬합니다.
"우리 고모는 진짜 머리가 좋으신 가 봅니다. 게임을 정말 잘하셔요."
이 꼬맹이가 나이답지 않게 박식하고 너그럽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성격까지 이렇게 신사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게임이 끝날 때까지 매너 좋은 얼굴을 유지하는 걸 보니, 감정 기복이라는 건 사전에나 있는 단어인 듯했어요. 조카는 마음속에 커다란 항아리라도 있는지, 그 안에 여유와 현명함을 가득 담아 놓은 모양입니다. 반면 나는 작은 일에도 표정과 말투가 하루에 수백 번 바뀌는 62세 고모입니다. 게임을 끝내고 평온하게 잠든 조카를 보니, ‘내가 고모인가, 조카가 고모인가’ 싶었어요. 이 아이가 내 조카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함이 마음을 뻐근하게 했지요. 그리고 그 순간, 부끄러움이 밀려왔습니다.
말은 억지로라도 배려를 담을 수 있습니다. 입만 열면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행동 속에 배려가 배어 있으려면 오랜 습관이 필요합니다. 그건 거의 본능처럼 움직이는 거니까요. 감정이 없는 말은 얼마든지 친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격한 감정이 섞이면, 그 친절은 순식간에 무너집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내는 열 살짜리 꼬맹이가 있더군요. 본능처럼 움직이는 배려, 감정을 절제한 친절을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철학자는 깊은 산속에만 사는 줄 알았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고 학식이 높아야만 되는 줄 알았어요. 아니더군요. 몸으로 느낌을 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삶의 철학자였습니다. 그날, 저는 조카에게 크게 한 수 배웠습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조카야 미안, 다음 게임에서는 고모가 조카 몰래 져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