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제 짝꿍은 학교 옆에 살았습니다. 집이 얼마나 가까운지, 늦잠을 자도 5분이면 등교가 가능했죠. 어느 날 그 친구가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아서 짝꿍인 저랑 손을 잡고 같이 친구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네 집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날, 저는 말 그대로 ‘신세계’를 경험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세상이더라고요. 마당은 흙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반듯하게 포장돼 있었어요. 미끄러지겠더라고요. 제가 그때까지 알던 마당은 비 오는 날은 진흙탕, 날 좋은 날은 곡식을 널어야 하는 멍석이 깔린 먼지 날리는 마당뿐이었는데 말이죠. 현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이름 모를 예쁜 꽃들이 줄지어 있었고, 집 안으로 들어서니 더 놀라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소설책에서나 보면서 상상하던 외국의 어느 집을 보는 것 같았어요.
친구방은 또 어땠게요? 친구 방 한가운데에는 레이스 덮개가 살짝 걸친 책상이 있었고, 책꽂이엔 책이 가지런히 서 있었습니다. 방 한쪽에는 윤이 반짝반짝 나는 장롱까지 있어서 그 장면은 어느 소설책에서 본 것인지를 자꾸만 생각하게 만들었지요. 그때까지 나는 시골 흙투성이 우리 동네 말고는 남의 집을 가 본 적이 없었어요. 더구나 읍내의 가정집은 처음으로 가 본 것이었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 친구의 집은 인근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이었어요. 70년대 그 시절에 대학생 오빠가 두 분이나 있었다고 해요. 암튼 열네 살 시골 소녀였던 저는 그 자리에서 ‘아, 저런 책상에서 공부하면 공부가 무지 잘되겠다’라고 굳게 믿어버렸죠. 그때부터 공부도 장비빨이라고 믿은 거예요. 실제로 그 친구가 공부를 잘했거든요.
책 읽기를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방구석에서 책을 보는 날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엄마는 편하게 공부하라고 밥상을 펴 주셨어요. 엎드려 공부하면 몸 아프다고 하면서요. 엄마가 펴주신 밥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면 기특하다고 궁둥이 토닥거림은 엄마의 애정이요. 정성이 담긴 간식은 보너스로 항상 따라왔지요. 그런데 항상 미안했어요. 공부하는 게 아니라 소설책을 보는 거였거든요. 춘향전은 왜 그리 재밌는지. 레미제라블도 호롱불 밑에서 잠을 못 자게 했어요. 소공녀는 어땠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책을 볼 때는 할아버지의 앉은뱅이 탁자나 밥상을 펴고 하는 줄 알았어요. 책상은 학교에만 있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가정집에 책상이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 했어요. 그러니 신문물을 보지 못하던 촌뜨기에게 친구의 책상은 너무나 놀랍고 부러운 물건이었어요.
세월이 흘러 저는 어른이 되었고, 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자 그때 그 친구의 책상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래, 우리 애는 시작부터 다르게 가야지!’ 그래서 저는 어린아이에겐 지나치게 크고 튼튼한 책상을 골랐습니다. 어른이 팔을 벌려야 끝이 닿았고 의자에 앉으면 방석을 두 개는 깔아야 높이가 맞는 것이었어요. 레이스 덮개까지 준비하며 속으로 중얼거렸죠.
'이 책상에 앉으면 너는 최소 하버드 다.' 그런데 문제는 제 딸의 취향이었습니다. 우드톤의 크고 튼튼한 원목 책상은 전혀 아이의 취향이 아니었어요.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그 당시에 유행하던 조그만 미미인형 책상이었어요. 딸아이는 틈만 나면 미미책상에 앉아 조잘조잘 동화책이야기를 하고 학교 숙제도 하더라고요. 정성 들여 정리하고 닦아놓는 등 미미책상에 대한 애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나중에 둘째 셋째 아이도 그 미미책상만 좋아했어요. 제 로망은 아이에게 철저히 외면당했고, 입학 선물로 준 책상은 쓰임새를 잃은 채 구석으로 자꾸만 밀려났습니다. 어느 날 찾아보니 빨래걸이, 옷걸이, 이불 받침대등으로 책상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쓰이고 있더라고요.
결국 그 책상은 제 책상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일곱 살 때 샀으니, 이제 25년이 넘었네요.
얼마 전 제가 좋아하는 유명한 강사님이 그러더군요. “주부도 자기만의 책상이 있어야 한다. 거기에서 자신을 챙겨야 한다.” 저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선생님, 저는 원래 제 책상을 가질 계획이 없었는데요. 딸이 안 쓰는 걸 물려받았습니다.’
그 책상에서 저는 아이 숙제 대신 원고를 쓰고, 레이스 덮개 대신 커피 얼룩을 남겼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처음엔 딸의 미래를 위해 샀지만, 알고 보니 제 인생의 최애템이 되었어요. 아이가 어릴 때는 육아일기를 쓰고 지금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반장 일지를 쓰게 됐습니다. 틈틈이 공부도 하고, 가끔은 버킷리스트를 정비하고 책 읽고 필사를 하기에는 가장 편한 곳이 되었습니다. 이 책상은 하버드 생은 못 키웠지만, 대신 자신을 위해 글을 쓰는 엄마를 키웠습니다. 어쩌면 중학교 친구네 집에서 봤던 그 책상보다 더 멋진 이야기를 가진 책상일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퇴근 후 집안 정리를 대충 끝내고 책상에 앉으면 가장 행복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