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비계관리(근육일지 2)

일도 운동도 집중이 안 돼요.

by 파인트리

"자자, 회원님 날갯짓하지 마시고요. 상완근으로 들어 올립니다. 배의 코어에 힘주시구요. 발바닥은 땅에 착 붙이십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계속됩니다. 무거운 팔은 올라가질 않구요. 용을 써보지만 후들후들 온몸이 바람에 흩날리는 아카시아 이파리같이 힘이 없습니다.


식단을 하지 않으니 내 몸을 호위하던 비계들은 아직 건재합니다. 열심히 먹고 운동을 했더니 심지어 비계가 비계 아닌 듯 단단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힘이 조금 좋아진 느낌까지 들어요. 팔뚝살의 팔랑거리던 나비살도 단단해졌고 파도치던 배 둘레의 비계도 조금 단단한 햄으로 변하는 느낌이에요.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선생님은 나의 동작을 분석 하십니다.

"회원님. 팔꿈치를 구부리시지 마시고 겨드랑이를 벌려보세요. 자. 겨드랑이를 벌린다 생각하시고 팔을 쭉 옆으로 올립니다." 흐흐 그런데 말입니다. 잘 안 돼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웃겨서 픽 웃고 말았습니다. 바람이 빠져서 기운이 후딱 저 멀리로 달아나 버렸지요. 호흡을 잡고 집중을 해야 하는데 집중을 못하는 거지요. 집중을 못하는 이유는 잡생각이 많아요.


요즘 살짝 우울이 왔어요. 이제 진짜 나이 먹은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진지하게 상상하기 시작했거든요. 길을 가다가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분들을 따라가요. 몇 연후의 나를 상상하면서 말이죠. 일이 없는 노후의 많은 시간을 무엇을 할까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앞이 깜깜해요. 그래서 시작한 운동인데 운동에도 집중을 못하네요. 쳇지피티에 나는 지금 노후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우울하다고 했더니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하라네요. 도와주겠다고.

1. 예전에 가장 좋아하거나 몰입했던 일은 뭐였나요?

2. 사람들이 당신을 어떤 성향/특징으로 기억하나요?

3. 지금 하루 중 가장 활력 있는 시간대는 언제인가요?

4. 수입이 어느 정도 중요하신가요? (예: 생계 필수 / 있으면 좋음 / 상관없음)

5. 혼자 일하는 걸 더 좋아하시나요, 팀이나 사람과 어울리는 게 좋으신가요?


그런데 별로 답을 하고 싶지 않아요. 내놓을 패가 없어서인가 봐요. 가장 몰입하면서 살아온 것은 아이들과 행복하기에 집중했고 사람들은 나를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하기는 하지요. 활력 있는 시간은 회사에 있을 때이고, 수입도 있으면 좋겠고, 어느 때는 사람들과 있을 때가 좋고, 어느 때는 혼자가 좋으니 나를 더 종잡을 수가 없어요. 90세까지 산다고 가정할 때 30년이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계획을 수십 번도 더 세워 봤는데 요즘 그 계획들이 흔들려요.


누군가처럼 젊은 시절 커리어를 단단히 쌓아서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된 것도 아니고, 가업을 이어갈 기술력을 가진 것도 아니고, 특별한 정신 승리를 기록할 만한 것도 없어서 인가 싶어요. 어느 순간 그동안 살아온 내 인생이 몸에 붙어있는 쓸모없는 비계 같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금방 사라져 버릴 흙먼지 같기도 하여 불안하답니다. 62세를 맞이한 순간부터 찾아온 이 노후의 시간에 대한 걱정이 우울로 연결되어 좀처럼 나아지질 않네요.


그나마 요즘 PT를 하면서 달아나는 의욕을 조금씩 살려내고 있기는 하지만, 굳은 다짐과는 달리 내 몸에 붙어있는 비계처럼 우울이 금방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와 있어요. 마음의 항아리 밑바닥에도 우울이라는 비계가 묵직하게 채우고 있는 듯해요. 하지만 비계도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우울이라는 감정도 내 생각의 일부라고 여겨져요. 늙어가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나이의 무게라고나 할까요?



안타깝지만 일단 비계들을 멀리 보내 봐야겠어요. 우울과 함께 동지라고 내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아 불편하거든요. 그래서 일단 식단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제가 또 샐러드회사를 다니고 있잖아요. 진짜 맘만 먹으면 식단관리 자료들이 회사에 널렸는데 그걸 안보네요. 하지만 제가 식단을 결심하면 이제 큰일 났어요. 나를 기다리던 술친구들은 모두 강제 금주를 하게 생겼으니 말입니다. PT선생님께 비계도 쓸모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이제 보내려고요. 비계 때문에 우울한 것인지도 모르거든요. 요즘 건뚱이가 (건강하고 뚱뚱한 사람이래요.)되어 몸이 무겁다고 무릎이 다시 아프고 자고 나면 컨디션도 안 좋고, 이래서 우울이 찾아온 것일 수도 있어요. 다음 주쯤에는 쳇 지피티가 했던 질문에 진지하게 답을 해 보고 마음 정리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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